기부론

by 마리폴네르

우선 내가 갖은 게 많다는 것은 내가 얼마나 많이 가질 수 있는데 그 안에 얼마큼 채워진 양에 대해 이 정도면 많다 또는 적다고 느끼는 사람마다 매우 주관적인 부분이다.

즉, 작은 그릇에 넘치게 갖은것과 큰 그릇에 모자라게 갖은것의 양의 차이는 비록 큰 그릇에 모자라게 갖은것이 작은 그릇에 넘치게 갖은것보다 많다 하여도 소유한 개인의 주관에 따라 모자라고 부족하다고 판단된다.

돈이 많다의 기준도 이러한 이치로 사람마다 각자의 기준에서 남의 부를 판단하게 되고 부자가 스스로는 그것이 많다고 생각되지 않을 수 있다.

즉, 자신의 기준보다 넘쳐야 많다는 기준 그것은 내가 세운 기준으로 돈을 생각하면 자신이 갖은 또는 관리범위의 기준에 넘어서야 남이든 자신이든 부자라고 할 것이다.

이제 내가 만약 돈이 많다 부자라고 한다면 그건 내가 세운 기준에 넘친다는 것이고 넘친다는 건, 갖은 기준, 그릇보다 여유 있게 갖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기준보다 넘치게 있어 만족할 때는 자신이 아는 기준 그 이상, 가령 돈으로 말하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는 경우가 많다.

이제 예를 들면 주머니가 5리터인데 6리터를 넣으면? 당연히 넘친다. 남는 1리터를 어떻게 될까? 당연히 그릇이 작으니 그냥 넘쳐날 것이다. 결국에는 그냥 버려질 수밖에 없다 그걸 우리는 많다고 한다.

얼마나 넘치는지 모르고 내가 셀 수 있는 한계를 넘어가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제 여기서 넘치는 것을 미리 누구를 준다면?

맞다 준만큼은 더 내가 가질 수 있으므로 버릴 필요가 없다.

항상 이론은 간단하다. 내가 갖은 게 얼마인지 모르게 많다면 모르는 그만큼은 갖고 있으면 버려지기에

누굴 준다면 버리지도 않고 줬지만 갖은 게 된다.

쉽게 말해 주는 것도 내 소유를 통해 발생되어 내 것이 되어 사실상 내 주머니는 커진 셈이다.

이제 돈이 아닌 다른 지식과 같은 것도 같은 원리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내가 아는 게 많고 정말 어디까지 인지 가늠이 안되면 누구한테 알려주고 전달해야 할 것이다.

다시 돈 얘기를 하면 마찬가지이다 내가 지금 통장에 정확하게 얼마가 있는지 모른다면, 그건 여유가 있고 남는다는 얘기이고 버리느니 누구한테든 주어 내 소유를 늘리는 게 낫다.

3억 5천7백6십2만 4천3백2십1원이 있는 사람은 통장에 한 3억 5천 있다고 한다

7백6십2만 4천3백2십1원은 관리가 안 되는 것이다.

이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로 온 듯하다 언급한 돈은 기부하는 게 낫다.

기부를 7백6십2만 4천3백2십1 원하면 난 그 금액을 기부했다는 것을 알고 내가 가진 정확한 3억 5천을 안다.

한마디로 관리가 되고 갖은것 보다 더 많은 관리도 가능해지며 결국 더 부자가 된다

결국,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단순하다.

버리는 대신 주면, 가진 것은 줄지 않는다.

그것이 ‘기부론’의 본질이다.

다시 생활로 돌아와 보면, 어느 순간 카드가 생기고 대출을 받으면서, 빚이 얼마인지 내가 얼마를 써야 적자가 안 되는지 참 무뎌졌다.

한마디로 빚이 관리가 안되기 시작하면서 차라리 작게든 크게든 기부를 소비화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매달 전전긍긍하며 다달이 메꾸기에 바쁜 나날이 참 편해졌다.

이유는 아는 게 곧 나의 능력이 되었고 모르는 건 과감히 버리면서 자본계획이 세워져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애매한 얘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직도 백만 원이 필요한데 90만 원밖에 없는데 어떻게 소비는커녕 기부를 생각할 수 있냐고 할지 모른다

다시, 생각은 정말 간단하다

어차피 모자란다 그렇다고 더 쓰라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준다면, 좀 전에 90만 원에서 10만 원을 누굴 주면 백만 원이 필요했던 난 이제 20이 모자란다

하지만 생각하면 10이 모자라는 게 더 낫다는 것이 여전히 반론일 것이다. 여기서 10만 원을 줬다기보다는 기부를 했다면, 20이 모자라는 게 10만 원을 모자란 것보다 그렇게 기분이 니 쁘지는 않다.

이유는 더 많이 모자라지만 이제는 그 안에 기부라는 좋은 일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돈이 없으면 힘들다 불평할게 아니라 모자란 만큼 벌 계획을 짜야하는 것이다. 그래도 답이 없다고 얘기하면 더더욱 아이러니컬하게 이유는 쓰지 않기 때문이라고, 궤변처럼 들릴 말을 하고 싶다.

당연히 모자라기에 쓸 수가 없고 그러니까 더 벌 계획은 세울 수 조차가 없지 않은가~

있는 것에 대한 사용계획 그리고 절약계획 그건 당연하다. 하지만 부족한 것에 대한 늘리는 계획은 사실상 투자 개념의 소비가 예상되지 않으면 세우기가 쉽지 않다.

이 이론은 정말 쉽게 실천가능하다.

버스로 3 정거장 거리

타지 않고 걸어간다 그러면 버스요금을 안 썼기에 여유가 생겼다.

물론 시간의 소비와 체력의 소진은 논외이다.

문제는 안 쓴 이 돈을 벌었거나 아꼈기에 모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쓰냐의 계획이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저축도 미래를 위한 소비라면 할 말이 없지만, 번돈을 기부를 한다면 분명 난 소비한 것이 된다.

내가 얻은 아무것도 없이 단지 마음의 뿌듯함만 얻는 기부 여기서 소비의 생각이 파괴된다. 일반적인 사고파는 경제관념과는 다르게 되고 마침내 정신의 부를 갖으며 참신하고 창조적인 더 벌 계획이 나올 수 있다는 지론이다.

예를 들었던 버스요금 절약이 택시를 안타든 버스를 타든 걸어가든 뭐든 간에 시작은 생활의 절약을 갖고 오고 그게 소비의 기부로 된다면, 더 창의적인 계획을 세우고 또한 진행했던 기부는 커지고 그릇이 커지면서 부는 더 쌓인다.

얘기가 매우 길고 복잡해진 느낌이지만 소비는 비축에 앞서고 지금 보다 더 쓸 계획이 있어야 지금보다 더 벌 수 있다.

돈은 모으는 게 아니라 버는 것이라는 나와 같은 공감만 있다면, 소비의 계획이 세워지고 그 안에 기부가 있으면 재산의 양은 더욱이 넉넉해지고 부는 쌓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내가 말하는 기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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