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달밤 : 첫번째 이야기
내가 잠시 시골 언니네 머물렀을 때일.
어느 날 오솔길에 있었다. 바람이 몹시 불었다. 늘 지나치는 숲길로 이어진 안쪽길로 걸어갔다. 길 밖은 바람에 잔가지와 붙은 잎사귀들이 심하게 흔들렸지만 안쪽길은 고요했다. 나는 햇살이 비치락 감 치락 하는 조용한 안길 아래를 걷다 구름에 가려지는 어둑어둑한 길이 무서워 다시금 바깥길로 나섰다.
오솔길 옆을 나와 숲길로 이어지는 입구에 서있는 큰 나무. 바닥에 돌출된 뿌리들 위에 웬 흑인이 맨발로 서서 나무에 기대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못 본 척하기도 그래서 또 왠지 검은 외국인이 무서워 일단 턱을 살짝 들어 올려 미소를 보내봤다. 그는 내가 가까워져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아니했다.
"··· ···."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그냥 지나치려는 데,
"바람이 많이 부네요." 하며 아주 친숙한 한국말로 말을 건네왔다.
"아... 네~~" 하며 놀라지 않은 척 지나치려는데,
그는 내가 피하려는 것이 자신보다 검은 피부색이라는 것을 눈치챈 듯, 바로 한마디 다시 건네왔다.
"제가 한국말해서 놀랬죠?"
하고 물었다.
"아, 아뇨, 그냥 바람이 많이 불어서······."
"네~ 바람이 참 많이 부네요."
미소 짓는 검은 눈망울과 새하얀 이빨이 뒤편 숲길나무들과 참 잘 어울렸다. 두 사람은 각각 말이 없었다. 어둑한 구름은 이따금씩 햇살을 품고, 부는 바람은 한차례 씩 거세게 들녘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흑인이 허리를 굽히더니 벗은 신발 뒷챙을 펴신고 접은 웃옷소매를 내리고 셔츠의 허리춤을 팍팍 내리친 후 제자리걸음을 한두 발씩 내딛는 동작을 했다.
"아래로 가시는 거죠? 저도 그쪽입니다."
하고 먼저 앞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바람은 여전히 앞에 세차게 불어왔다.
모를 때는 무섭기까지 했던 그가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불고 해가 뉘엿뉘엿할 때 앞에서 먼저 걸으니 참 든든했다.
이윽고,
"들어가세요."
하고 검은 외국인의 인사를 들으며 내 집 앞길로 꺾어졌다.
들어와 담벼락 너머로 다시 보니, 심하게 흔들리는 갈대옆길 오솔길을 그는 정말 편안히 바람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