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 이방원-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 정몽주-
잘 알고 있듯이 이 두시조는 어쩌면 우리나라 최초 랩배틀이다.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한 일등공신 이방원
하지만, 가족이라는 이유로 개국공신에서 제외되었다.
끝까지 고려를 버리지 않았던 정몽주는 이방원에 의해 살해당하고 지금은 모두가 정몽주를 충신으로 기억한다.
제목을 달았지만, 사실, 이 얘기를 잘할 자신은 없다.
이유는 나도 이 사회 속에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릴 적 위인전을 읽고 나도 그런 위대한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했던 그 순수했던 마음과 용기를 갖고 시작해 본다.
우선, 이방원과 함께 정몽주에 맞선던 또 하나의 인물 정도전이 있다. 그는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명성을 떨치지만 결국 이방원의 세력에게 살해당한다.
이방원 ==> 충신 X
정몽주 ==> 충신 O
정도전==>??
생각해 보자, 충신이란 말 그대로 충성스러운 신하이다.
정몽주는 이러한 관점에서 진정으로 충신이다. 본인이 모시는 임금에게 충성을 다해 끝까지 목숨을 다한 진정한 신하였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정몽주는 이방원과 정도전을 막지 못했다. 지조와 절개를 지켰다지만, 고려를 조선에게 내준 신하이고 그저 고려임금에만 충성스러운 신하였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그를 충신이라고 부르고 그의 위에 시조를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한편 조선의 이성계가 충신으로 인정한 정도전은 가장 혁명적이고 급진적인 젊은 사대부였다. 고려를 버리고 조선을 택했지만, 그에겐 진정으로 드림왕국이라는 꿈이 있었다. 이방원을 개국공신으로 두지 않은 것도, 어쩌면 정도전의 혁명정신이 반영된 결정이었을 수 있다. 시대를 앞서가려 했고, 누구보다 진심으로 살기 좋은 나라를 건국하려 했지만, 고려의 마지막을 지킨 정몽주처럼 정도전은 충신으로 보지는 않는다.
가망 없는 고려를 뒤엎고 드림컨츄리 조선을 건국하고 또다시 고려와 같은 반복을 원하지 않기 위해 이방원에게까지도 반대한 정도전. 충신이란 국가를 대표하기엔 벅찬 허약한 임금에게 충성스러운 신하가 아니라, 임금의 안위를 떠나 국가와 백성을 위하여 충의로운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신하라고 여긴다면, 정도전은 충신으로 불려 마땅하다고 생각 든다.
여기서 추가로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인물을 보자, 신숙주.
아침에 버무려 저녁에 상하는 변절의 대명사, 숙주, 사실 그는 새로운 임금을 위해 뭐 특별히 한건 없다. 집현전 동기들 6명이 죽어 충신이 되면서 졸지에 그는 변절자가 되었다. 사육신, 결국 그들은 죽음으로 맞섰지만, 한 명, 수양대군을 막지 못했다.
난 가끔 회사생활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 회사를 위해, 이 사회를 위해, 진정으로 국가를 위해 임금에게 바른 소리를 하는 충성스러운 신하 역할을 하는지 생각해 본다.
정몽주는 정말 임금에게 진정으로 미래가 없는 고려를 얘기하며, 또 얼마나 공민왕이 나라를 망쳐놓았는지, 그래서 현재 대세인 이성계가 적극적으로 전국적 기반으로 일어나고 있는데, 그가 왕으로도 가능성이 높은지, 어쩌면 정말 훌륭한 리더인지... 뭐 이런 얘기를 왕에게 전달했을까
진정 왕 앞에서는 머리를 굽히고, 왕을 반대하는 자들에게 핏발을 세우고 죽는 것이 충신이랄 수 있을까? 고려의 마지막 공민왕은 정몽주를 충신으로 여겼을 것이라 확신한다, 자신을 지극히 섬기고, 최후에 죽음을 택할 만큼 뚜렷한 신념을 보인 정몽주. 혁명을 일으키려 했던 정도전은 고려를 버리고 진정한 조선을 세우고도 만족스럽지 않아 추가로 이방원을 반대하며 임금에게 바른 소리를 했지만, 드림국가를 위해 진심으로 충정을 다한 신하였지만, 그냥 우리가 쓰는 역사에서 조선 최초 신하, 고려를 버린 신하 정도로만 여기지 충신으로 기록하고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오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면서 정말 위대한 진정한 지도자가 잘 없었다는 문제를 갖고 있다. 단순하게 그러한 지도자가 운이 없어 안 나왔고, 언젠가는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기엔 지금까지 말한 충신에 대한 우리의 사고적 구조적 문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게는 집에서, 더 나아가 직장에서, 크게는 국가에서, 세계에서 내가 있는 집단을 위해 리더에게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어야 그 리더는 훌륭한 리더가 되고, 조직이 혁신되고 사회가 밝아진다. 하지만, 우리는 할 말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하는 말, 또는 자기가 뱉은 말을 지키는, 말의 내용과 의도와 상관없는 그저 신념처럼 보이는 한 말에 대한 고집을 갖은 사람을 충신으로 여기고 존경까지 한다
혁명적 생각을 하는 사람, 리더가 잘못됐으면 바꿔야 한다고 지적하는 사람은 변절로 매도하기에 국가를 위해 리더에게 바른 소리를 하는 충성스러운 신하도 없고, 있어도 그런 사람을 충신으로 여기지 않기에 훌륭한 리더는 나오기 어렵고, 그저 충견 같은 신하를 거느린 카리스마 넘친다는 리더들만 나온다.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그런 리더들...
미래를 위해서라도 우선 빨리 충신을 다르게 인정해야 한다
북에 있어 갈 수는 없지만 아직도 정몽주의 핏자국이 선명하다는 선죽교, 반면 똑같이 살해당한 정도전은 이러한 유적을 찾을 수 없다
123 이후 많이 혼란한 요즘, 왕의 충견이었던 신하들이 스스로 충신이라 앞세워 선동하고 한편, 새로운 왕을 추대한 신하들은 민초들을 위한 새 시대가 왔다며 왁자지껄 떠들썩하다. 솔직히 우리가 관심 있는 것은 충신도 새로운 세상도 아니다. 그저 바른 리더가 이끄는 바른 세상에서 억울함 없이 사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