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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찬 Aug 06. 2024

흑석 스님

두 개의 선 중심에 누가 옆에 와도 항상 침잠하게 외할머니 집에 살던 눈 큰 부엉이처럼, 알을 낳으려는 암탉처럼 가만히 돌떡이 되어 턱 하니 가부좌로 앉아 있다.


내 피부는 온통 검은데 온통 하얀 피부를 가진 돌이 옆에 앉으면 내가 공중부양으로 올라가 바닥으로 내던져버리고 그 자리가 공석이 되는 경우가 있다. 돌마다 다르지만 나는 이 부드럽고 조용한 나무판 위에 계속 끝까지 앉아 있는 것이 좋다. 나랑 피부 색깔이 같은 돌들만 내 둘레에 앉아 나만 보좌했으면 한다.


전봇대 위의 새들은 아무 선이나 앉는데 왜 우리들은 반드시 두 개의 선이 교차하는 지점에만 앉아야만 하나!

그리고 많은 인간들이 왜 그렇게 우리들을 뚫어지게 보는지 민망해 죽겠다. 아무런 감정 표현도 없이 포커페이스로 진중하게 바라보고 있어 말 걸기도 힘들다.


그래도 답답한 통에 온종일 구겨져 있는 것보다는 마당에 고추 말리듯이 이렇게 형광등에 일광욕하면서 스포트라이트 받으면서 도를 닦듯이 정좌 자세로 있는 게 낫지. 200여 개의 돌들인 우리들은 인간은 모르지만 이름이 있다. 그리고 생김새도 제각기 다르다. 하지만 쿨한 건지 모르지만 우리 서로가 누구인지 이름이 뭔지 모른다. 관심도 없다. 오로지 인간의 선택에 의해 노란 나무판에 올라가 어느 자리이든 놓여서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싶을 뿐이다. 바둑판 위에 우리 검은 색깔 돌들이 많으면 그 경기에서 이긴 거 같다. 우리를 선택하는 인간 아니 주인님의 얼굴을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한바탕 바둑 시합이 끝나면 마음이 공허해지고 슬퍼진다.


이제 다시 통 안에 들어가야 한다. 그 개폐식 돔구장 안에서는 경기장에서의 부처가 되기 전의 고요함과 달리 서로 무용담을 자랑하기에, 인간들이 좌판을 깐 시장처럼 시끌시끌하다. 돔이 닫히면 그 소음들이 인간의 귀까지는 들리지 않고 진동과 함께 울린다.


그리고 항상 그들은 해탈의 경지를 위해 바둑판을 장악하는 날만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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