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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뽕 May 31. 2016

우뢰매, 슈퍼홍길동 그리고 브라보콘

우뢰매와 슈퍼홍길동보다도 영웅이었던 아버지


어린시절, 시골의 읍내에 딱 하나 있던 "중앙극장"

검자줏빛이 도는 벨벳같은 소재의 시트가 씌워진 1,2층 극장간판에는 누군가가 손수 그렸을 영화간판이 걸렸고, 그 당시 슬랩스틱의 대가라는 심형래씨의 우뢰매와 슈퍼홍길동은 그야말로 영구와 땡칠이에 버금가는 호황을 누렸다.

학교앞에서 나누어주던 할인권을 꼬깃꼬깃 접어 주머니에 넣고 돌아서서, 극장앞에서 일찍 가야 나눠주는걸 받을수 있을 책받침을 가슴두근거리며 기다렸던 시절... 몸이 약한 엄마는(그 당시 우리 엄마 허리는 20인치도 안됐으니까;;;;;; 비비안리 허리가 18인치라던데 난 그 허리 눈으로 보고 큼;;; 근데 내 허린 왜이래 ㅠㅠ) 우릴 데리고 미어터질게 자명한 극장에 가줄수 없었다. 그 당시 예산농업전문대학(현 공주대학교) 에 근무하고 계셨던 월급쟁이 공무원인 우리 아빠는 낮에 잠시 짬을 내어 일하다말고 집으로 달려왔다.

동생과 나를 다 데려가서는 그 미어터지는 극장 뒷편에서 둘다 영화를 없었으리라. 그렇다고 일하는 아빠가 일찍부터 극장에서 줄을 서 앞자리를 차지할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우뢰매가 개봉할때마다 남동생은 눈물을 철철 흘리며 집에 남겨졌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따라가고 싶었을까? 그런데도 늘 아빠의 선택을 받는건 나였다.

"넌 아기니까 아직 못봐. 그러니 엄마랑 집에 있어."

그런 아빠를 야속하게 바라보며 엄마는 곱게 눈을 흘겼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아빠는 망설임없는 손길로 자전거 뒷편에 나를 태우고 극장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극장 입구는 발디딜 틈도 없었다. 압사당하지 않는것이 이상할만큼 극장은 인산인해였다. 그 와중에도 못온 동생꺼까지 책받침을 챙겨받고(나올때 받던가...그게 내내 아빠는 얼마나 짐이 됐을까...) 극장에 들어섰지만 뒷자리에서 작은 내 키로는 스크린이 보일리 없었다.

눈물이 날거 같아서 입술을 꽉 물었다. 여기까지 와서 라디오처럼 소리만 듣고 갈 우뢰매가 날 서럽게 했다.

그때였다. 내 몸이 슝~ 하고 위로 솟구치더니 턱 하고 어딘가에 앉혀졌다.

"우와!! 잘보인다!!! 아빠 잘보여!!!!"

내가 앉혀진것은 아빠의 어깨였다. 아무리 짧아도 한시간 이상은 무등을 태운채로 꼼짝 못하고 서있어야 하는 시간은 결코 쉬운게 아니다. 철없이 아빠 어깨에서 신나게 발을 동동 구르며 영화를 보았던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였지만, 아 우리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아빠가 아니었을까?

아빠에게는 1분이 억겁의 세월같고, 내게는 1시간이 1분같았던 지나고 인해전술을 방불케하는 사람들의 물결에 등떠밀려 상영관을 나오면 바로 앞에 작은 매점이 하나 있었다. 매점 앞에 턱하니 자리잡은 아이스크림 냉장고가 어린 내 시야에 들어왔다. 엄마는 이 썩는다고 사주지 않는 시원한 얼음과자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평소에도 말이 없고 엄하던 아빠에게 엄마한테도 안쓰던 떼를 쓸순 없었다. 사실 우뢰매만도 성은이 망극할 일이었다.

그때였다.

아빠가 내손을 끌고 가서 날 아이스크림 냉장고앞에 세웠다. 무얼 먹을지 고르라는 하명이 떨어졌다!!!!!

아 천상의 소리가 이보다 더 아름다울까?

저 많은 얼음과자들중 무엇을 집어야 잘 먹었다고 천지사방 소문이 날까...

도무지 내겐 고를수 없는 너무 어려운 과제였다. 그때 아빠의 커다란 손이 슝 하고 내앞을 가로지르더니 날밤 새도 못고를 거 딸에게 무언가를 턱 내민다.

하드 아이스크림도 아니고 이것이 무엇인가 하얀포장지에 알록달록 하트가 늘어진 "브라보콘"이 아니던가..

그 당시만 해도 비싼 고급 아이스크림에 속하던 브라보콘....

아빠가 포장지를 벗겨서 내게 그것을 내밀었다. 한입 베어물자 바닐라향이 가득 입안으로 녹아들었다. 입안에서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것 같았다. 난 금새 녹기 시작하는 그것의 가장자리를 혀로 싹싹 핥아가며 먹었지만 야속하게도 속절없이 손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행복한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갔다. 어느새 비어져버린 손은 끈적해졌지만 입안에 남은 달콤함은 어제 산수 문제 잘 못푼다고 한대 기어코 쥐어박은 아빠를 미워하던 마음마저도 다 녹여놓았다.


나의 행복과, 동생의 서러움은 우뢰매와 슈퍼홍길동이 개봉할때마다 반복됐다. 아빠의 고난의 행군도 반복이었다. 아빠는 어쩌면 우뢰매가 다시 개봉하지 않길 성당에 갈때마다 기도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빠의 무등과 달콤한 브라보콘을 떠올리며, 난 문득 한번도 아빠손에 들려지지 않았던 브라보콘을 떠올린다.

철없이 아빠도 먹어 한마디 할줄도 모르는 철부지 딸은 손에 흐르는 것까지 살뜰하게 쪽쪽 다 빨아먹고서야 끈적한 손과 입으로 아빠를 바라보았고, 아빠는 그런 딸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크는 내내 아빠는 무섭고 말이 없었다. 그저 신문을 보거나 뉴스를 보거나 학자답게 점잖고 과묵했다.

아빠한테 용돈한번 졸라본적 없고, 내가 고3때 돌아가실때까지 난 아빠랑 별 정도 없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날 떠올린 나의 아빠는 늘 내 손을 잡고 성당에 다녔고, 아빠는 내 등교길을 내내 자전거에 태워서 데려다 주었고(내동생은 자전거 앞좌석 난 뒷좌석, 덕분에 아빠는 자전거를 끌고 가심....;;;;;) 우린 그 재미로 발을 동동 구르며 등교했었다. 내가 아프면 중학생이 되서도 나를 품에 안아 궁댕이에 주사를 맞게 해주었고, 초경을 하고 생리통이 상상을 초월해 매달 앓아눕는 딸의 배를 밤새 쓸어준 것도 아빠였다. 외가집으로 전학가서 아빠랑 떨어져 살던 중3 아빠가 써주었던 편지가 지금도 생각난다. 하고싶은것도 많을거고 유혹도 많겠지만 잘 해내리라 믿는다던 아빠.....고1때는 생일선물로 만년필을 소포로 보냈다. 글이라는것에 취미를 붙이면서부터 한번도 흔들리지 않았던 작가라는 꿈을 서른일곱먹고도 버리지 못하면서 엉뚱한 일을 하리라는걸 아빤 알았을까? 고입에 실패한 내게 이 아픔이 네가 쓰는 글에 좋은 거름이 될거라며 좋은 만년필로 좋은 글을 쓰라던 아빠.. 학교 축제마다 늘 작품을 내던 내게 칭찬한번 없던 아빠가 미웠다. 돌아가시고 장례치를때 큰고모가 그랬다. 아빠가 네 자랑을 얼마나 했는지 아니.....걸어가는 뒷꿈치까지도 문인집안 규수같아 어여쁘다고....

상상할수가 없다. 우리 아빠에게 그런 팔불출의 모습이 있었다니.....




SK텔레콤 광고영상중 누군가의 영웅을 주제로 한 영상이 있었다.

어린날의 내게 아빠는 모르는게 없는 척척박사였고, 필체는 한석봉이었고, 그림은 김홍도 신윤복이 울고갔다. 실로 아빠는 서화에 능한 그야말로 문인중에 문인이셨다.

무섭고 엄한 아빠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른일곱의 딸은...업무중에 농땡이 치며 이글을 쓰는 지금....

우리 아빠는 우뢰매의 에스퍼맨 보다, 슈퍼홍길동보다 훨씬 영웅이었으며 브라보콘보다 달콤한 신사였음을 알았다. 그리고 찌릉찌릉 울리던 아빠의 자전거 차임벨소리가 너무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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