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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뽕 Dec 14. 2016

산다는 건 그런게 아니겠니..

우리가 세상에 길들기 시작한 후부터..

열여섯부터 열여덟에 만나서 우린 단발머리를 늘어뜨리고 한 교정에서 꿈을 키웠다.

별거 아닌일에도 까르르 웃음이 꽈리꽃처럼 터지고,

별거 아닌일에도 서로 부둥켜안고 세상이 무너진듯 울었다.

수업시간에 책사이에 끼워놓은 만화책을 보며 킬킬 거렸고,

아침 보충수업이 끝나면 삼삼오오 모여 조례시간 전까지 미친듯이 도시락을 퍼먹었다.

기어코 선생님이 냄새난다고 한 소리 하셔도, 든든한 우리 뱃속처럼 우린 넉넉한 웃음을 웃었다.


하교길에 떡볶이 한접시를 먹을때, 누군 돈이 있고 누군 없고가 중요하지 않았다.

다 부족한 용돈이었지만, 오늘은 내가 사고 내일은 네가 사면 되지

너 안먹으면 나도 안먹을래....그렇게 우린 서로가 있어서 행복했고 아깝지 않았다.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며 가슴 설레였다.

사랑이라고 말하기도 어린 우리에게 "사랑"은 참으로 절대적이었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다시는 사랑하지 않으리라는 어줍잖은 다짐을 하는 서로의 등을 쓸어주며

밤새 그 나쁜놈을 욕하며 위로 했었다.


그런 우리가 이제 다 결혼을 하고, 아이 엄마가 되었다.

그렇게 엄마 말 안듣고 뺀질거리던 우리가, 엄마와 똑같은 잔소리를 하고, 엄마랑 똑같이 화를 내며

아이에게 왜 공부 안하냐고 닥달하고 아이들은 우리랑 똑같이 말을 안듣는다.

우린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서로 전화해서 말안듣는 자식놈, 속썩이는 남편, 시댁 욕을 하며 서로를 위로한다.

한바탕 퍼붓고 나면 그래도 속이 풀리는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우린 안도한다.

아무에게도 말할수 없는 이야기를 나눌수 있는 가슴이 있다는건 참 든든한 일이다.


나는 공감에 능한 친구다.

말하자면 함께 울어주고 함께 웃어주고 함께 욕해주는 감정의 동요가 잘 되는 친구다.

그래서 주로 속상하고 서러운 일 담당이다.

M이라는 친구는 객관적이다.

이성적 판단이 잘 되는 친구다. 그래서 속상할때 잘못 전화하면 더 속상할수 있다. 하지만 이친구의 강점은

어려운 일이 있을때 나는 잘 판단되지 않는 전후좌우를 잘 정리하여 상황을 명확하게 볼수 있게 해주는 친구다.

그리고 꼭 그렇게 마무리한다.

"니만 그런거 아이다. 다 그래 산다...."

그래 나만 힘든건 아니야....세상 사 다 마찬가지야....그 말에 또 위로를 얻는다.

S는 자상하다. 카운셀러와 같은 S는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면 자분자분 설명을 해준다.

여러가지 솔루션을 제시하며 이런경우 저런경우를 두루두루 살펴준다.

한결같이 편파적 내편이 되어주는 친구이기 때문에 S는 늘 큰언니 같다.



생김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취향도 다른 세 소녀가 20년을 만나며....

닮아지고 있다.

아직도 떡볶이를 좋아하고, 학교얘기를 하면 그때가 환히 떠오르는 우리는....

아이돌 1세대를 거치며, 삐삐와 PCS 그리고 전자수첩까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두루 거친 우리는...

라디오를 들으며 손편지를 쓰고 눈물로 하얗게 밤을 지새웠던 우리는....

오늘도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며

세상에 길들어가는 중이다.

우리를 닮은 아이들을 보며.....

오늘도 우린.... 아직 충분히 "소녀"인 우린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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