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알아주세요 "선생님" 한말씀에 우리 아이들 큰 마음이 자랍니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2-2반 담임입니다."
순간 누군가 했었다. 우리 아이가 중2란 사실을 자꾸 잊는다. 잊는다기보다 실감을 못하는거 같다.
아직도 엊그제 중학교에 입학시킨 노심초사 1학년 같은 느낌이 지워지지 않아서 인가보다.
담임 노이로제가 있는지라, 학교에서 전화가 오면 염통이 쫄깃해진다.
"예, 선생님 잠시만요~"
허리를 굽신거리며 비굴한 자세로 사무실에서 밖으로 나갔다. 중학교 담임이 전화를 했다는건 뭔가 문제가 생겼음을 암시한다. 대단히 자랑스러운 무언가로 전화올 리가 없다는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 전화를 사무실에서 받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째 얌전하다 했지 내가....
친.구.와 싸.웠.습.니.다.
한.차.례.씩.의.주.먹.질
학.교.폭.력;;;;;
내 이자식을 정녕!!!!!!!!!!!!!!!!!!!!!!!!!!!!!!!!!!!!!!!!!!!!
얌전히 학교다니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공부 안해도 좋으니 말썽부리지 말라고 타이르고 때리고 소리지르고 그만큼 지랄발광을 했으면
알아들어야지 이자식이!!!!!!!!!!!!!!!!!!!!!!!!!!!!!!!!!!!!
"그런데 어머니, 아이가 맘이 많이 상했을겁니다."
엥?
마치 수화기 너머로 코뿔소처럼 씩씩거리고 있는 내가 보이기라도 한것처럼 선생님은 살풋 웃음을 머금고 말을 이어가셨다.
"아이가 맘이 많이 상했을겁니다."
"아이는 영어를 참 좋아합니다. 우리 반에서 영어 잘하는 아이 하면 우리 아이 이름이 제일 먼저 나오는거 알고 계셨어요? 그런데 오늘 영어 프린트물을 버리려고 앞친구한테 버려달라 했다가, 영어 선생님께서 가지고는 있으라고 하셔서 다시 달랬는데 이 친구가 프린트물을 찢었더라구요. 다시 붙여줬음 좋았을텐데 그걸 밥풀가지고 붙여줄까? 하며 얄밉게 말을 했어요. 영어 좋아하는 아이니 속이 상했을거예요. 그런데 우리 아이가 먼저 주먹질을 하는 바람에 그 친구도 한대 때리고 같이... 아시겠지만 이렇게 되면 학교는 바로 학교 폭력으로 입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둘이 화해도 했고...제가 아이 불러다 뭐든 속상하면 선생님한테 다 얘기하라고 했습니다.
주먹이 먼저 나가면 정말 억울해도 널 보호할수 없다고... 절대 선생님이 이번일로 널 편애하거나 미워하거나 하지 않을거라고, 나아진 모습 기대한다고 했더니 아이가 자기도 꼭 고치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수업시간에 열심히 듣고, 청소한번 게을리 하지 않아요. 공부...점수가 하루아침에 올라가나요 그런걸로 아이 평가하고 싶지 않습니다. 2학년와서 시험을 한번 본것도 아니고....잘 하고 있는데 더 잘하게 어머님께서 오늘 얼굴보시고 혼내지 마시구 혼은 학교에서 났으니 어머님은 가셔서 다독여주세요"
처음이었다. 아이가 싸웠는데 아이 칭찬을 들어보기도 처음이었지만, 우리 아이가 뭘 잘해요 뭘 잘해요 말해주는 담임이 아들 아이 학교보낸 이래 단 한차례도 없었다. 우리 아이 단점만 보기로 작정한듯 그렇게 나에겐 우리 아이 단점만 말해주던 세월이었다. 한번도 이런 싸움의 절차를 설명해주는 교사도 없었다.
그러니 집에가서 애꿎은 아이만 잡아댔다.
처음이었다. 싸운 아이 다독이세요 라고 말해준 교사는....
그리고 처음이었다. 자신의 눈으로 귀로 보고 듣지 않은 그 어떤것도 아이의 평가에 기준삼지 않겠다는 교사는.. 목소리는 앳된 여선생님이셨다.
고개가 한없이 숙여졌다. 너무 고맙고 감사했다. 싸웠든 어쨌든 아이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 게 너무너무 고마웠다. 적어도 아이가 억울하지 않게 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우리 아이 이야기 끝까지 들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자꾸 눈물이 나서 그 말 말곤 아무 말도 할수가 없었다.
나쁜 녀석이라고 낙인찍지 않아서 감사하고, 아이에게 더 나아질수 있단 희망을 주셔서 감사하고, 우리 아이 어여쁜 모습 보아주셔서 감사하고, 제게 아이를 죄인만들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학교폭력을 여러차례 경험하고, 거기에 부모의 권력과 사회적 계층도 개입되고, 심지어 그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누명도 쓰고, 교사의 폭행도 견뎠다. 그러니 나와 아이에게 공교육에 대한 믿음이 있을리가 없다.
하지만 나는 부모보다 교사를 더 믿고 컸다. 그렇기에 난 분명히 안다.
온전히 나를 믿어주는 한사람만 있으면 아이는 절대 삐뚤어지지 않는다.
부모와 애착관계가 원만치 않았던 나는 무슨 이유에선지 늘 멘토같은 교사가 해마다 같이 했다.
담임이 아닌데도 이상하게 그런 선생님이 못해도 한분씩은 꼭 곁에서 눈길을 주셨다.
선생복도 선생복도 그렇게 없었을까 나의 고등학교 3년은 내내 최악의 담임을 만났다.
그 순간에도 나를 가르치지도 않았던 일면식도 없는 선생님 눈에 띄어 힘든 시간을 손잡아 주신 고마운 은사도 계신다. 1학년때 학교를 자퇴하겠다고 생각지도 못했던 실업계를 다니게 된 나는 울고 불고 난리를 쳤었다.
우리 담임은 내가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는데 그때 주산을 가르쳤던 선생님께서 주말이면 자격증 시험장에도 데리고 가시고 시험 끝나면 시원한 냉면도 사주시고, 마치 무서운 아빠같았는데 낮술 거하게 드신 얼굴로 냉면을
달게 먹는 나를 흐뭇하게도 보셨다. 시험 잘 보면 또 맛난거 사주마 하시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그 토닥임이 또 일년 학교를 다니게 했다.
고2때는 학교에서 무섭기로 소문난 학생부장 선생님 덕에 학교를 다녔다. 나의 방황의 시작이자 끝이고 절정이던 고2....남들 10년놀거 1년에 다 놀기로 작정한 년 마냥 해 볼수 있는 그 모든것을 해본 시간....
그러면서도 소심해서 학교는 꼬박꼬박 나갔던...성적은 그야말로 눈을 뜨고 볼수가 없던 시간....
그날도 호프집에 가서 맥주를 홀짝거리던 밤...(그때 우리한테 술팔던 어른들은 우리가 학생인거 다 알았을텐데....나쁜 어른들이었음..;;;) 그만 단속에 딱걸리고 말았다. 하필 선도로 나온 선생님은 우리 학교 학생부장...헐 오죽하면 별명이 에이즈였을까..ㅠㅠ 걸리면 죽는다고....징계가 눈앞에 선했다....나는 죽었구나....
그런데 다 다른 선생님들께 잡혀갔는데 나만...왜 나만.....학생부장 손에 떨어진건가 ㅠㅠ
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인가 싶던 순간 학생부장 선생님이 말했다.
"지금 제일 하고 싶은거 하나만 말해봐"
난 그때 무슨 배짱이었을까....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따위 대답을 했는지 지금도 미스테리다.
"소주 한잔 사주실래요?"
날 한참 뚫어지게 보던 선생님은 아주 같잖다는 웃음을 지으며 따라오라고 했다. 들어간 곳은 감자탕집.
"밥은 처먹고 술을 처마시고 다니는거냐?"
거친 말과는 달리 선생님은 투박한 손길로 뜨거운 김이 나는 밥을 내앞에 밀어주셨다.
그러더니 갑자기 들어오는 엄청난 양의 소주병;;; 난 분명 한.잔.만 사달라고 했다!!!!!!!!!!!!!!!!!!!!!!!
"다 못먹기만 못먹어봐라! 이것도 못마시면서 술처먹는다고 깝죽대고 다닌거면 넌 내손에 죽는다!"
oh my god!!!!!!!!!!!!!
그날 이후 내 방황은 깨끗하게 종지부를 찍었다. 그때 선생님이 밀어주신 뜨신 밥한공기와 내 등을 퍽퍽
두들겨준 투박한 손길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더 긴시간을 방황했을까....
참 선생복 있던 학생이었다. 뭐 그리 이쁜 성격도 아니고, 이쁜 얼굴도 아니고, 애살스런 아이도 아니었는데 감사하게도 나보다 날 더 믿어주는 선생님이 계셨다.
나를 온전히 믿는 사람을 실망시킨다는건 생각보다 쉬운일이 아니다.
그 든든한 울타리에서 쑥쑥 자라났다.
어떤 좌절이 와도 일어설수 있었다. 할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믿음을 든든한 눈빛으로 지켜봐주고 소리없이 응원해주는 스승에게서 느끼는 아이는 태산같이 든든하게 학교를 다닐수 있다.
그런 스승을 만나지 못한 아이가 너무너무 안쓰러웠다.
학생이 학교에 상처를 교사로부터 받아야 했던 시간이 가슴 에이게 아팠다.
그런데 처음으로 아이의 어여쁨을 보려 노력하는 선생님을 만났다.
감사하고도 감사하다.
집에 가서 아이 얼굴을 보았다.
눈밑이 빨갛게 부어 설핏 든 멍이 보였다.
혼날거라 생각했는지 이불을 뒤짚어 쓰고 나오지도 않는다.
알면 싸우지 말든가!!!!!!!!!!!!!!!!!!!
"너랑 싸운 친구는 많이 다쳤어?"
"아니 걘 괜찮아"
"제대로 화해했어?"
"응"
"왜 먼저 주먹질 하믄 안되는지 더 설명안해도 알지?"
"알아요"
"선생님이 너 영어 잘한다고 칭찬 많이 하셨어. 너 힘든거 속상한거 백마디면 백마디 다 들어주신대.
그러니 절대 주먹질 하지마. 엄마나 선생님이 그 이후는 도와줄수가 없어."
"네"
"나와서 밥먹어"
펑퍼짐한 궁둥짝을 한대 툭 때려주고 나왔다.
무언가 가슴에 자꾸 출렁거린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우리 아이 칭찬해주시고 어여뻐해주시고 못난걸로 편견갖지 않아 주셔 감사합니다.
칭찬해주시면 감사할줄 알고, 선생님께 불손하지 않고, 청소도 잘하고 제 녀석 어여쁘게 봐주시면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심성 보드라운 아이랍니다.
못난 엄마가 상처 많이 주고 아프게 많이 하고 키운 아이의 예쁜 면을 보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아마 내색치 않아도 아이가 많이 감사드릴겁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