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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뽕 Jul 03. 2017

엄마의 모든날은 "상"이었어요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날이 눈부신 나.

저는 늦깍이 대학생입니다.

하는 업무상 필요한 공부를 하기 위해 방송통신대를 등록했고, 그것이 얼마나 만만한 일이 아니었나 통감하며 이제 4학년 1학기를 끝냈습니다.

얼마전 기말고사를 보려고 경북대학교에 갔을때, 학교안을 돌아다니는 대학생들을 보며 느꼈습니다.

"예쁘기도 해라...."

정말이었어요, 염색한 친구는 염색해서 이쁘고, 커플은 커플이라 이쁘고, 혼자 걷는 친구는 혼자라서 이쁜..

아 저것이 청춘이구나....정말 어여쁘고 눈부시구나...

이제 아무리 젊게 옷을 입어도, 아무리 화장을 해도, 결국 내 나이만큼은 보이는 서른 여덟....

물론 제 나이가 아주 많다고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스무살 남짓을 넘긴 그 청춘의 빛은 눈부시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습니다.

열세살 딸아이가 생각났습니다.

한창 멋부리기 좋아하는 그 사춘기 초입의 예비숙녀께서 짧은 치마, 짧은 반바지를 선호할때마다 안돼 라고 말하고 싶지만 입고 나온걸 보면 이쁘기도 하지 하며 웃음이 걸리는건 또 어쩔수가 없습니다.


청춘,

푸르고 푸른 가을 쪽빛같은 그것은 스치는 봄처럼 짧고 아쉽다는걸 아마 그들은 아직 모를겁니다.

물론 저보다 나이가 많은 인생의 선배님들은 또 저를 보며 청춘 이라고 말하실지도 모르구요.

그런데 참 이상도 합니다.

내 나이는 서른의 후반을 넘어 이제 곧 불혹을 바라보는데, 내 마음은 아직도 스무살 언저리에서 따라오질

못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꼭 내 몸만 열심히 달려오느라, 어느 시간즈음에 내 마음은 두고 와버린것 같은 기분이랄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한창 청춘의 푸름이 가득한 시간을 나는 "엄마"로 살고 있었습니다.

엄마로 살아온 것이 어떻길래? 라고 의아하실수도 있으실 겁니다.

엄마는 분명히 내 삶의 한부분인데, 저는 엄마라는 큰 집합의 부분집합으로 "나"를 놓고 살아온거죠.

나라는 큰 집합안에 엄마, 딸, 며느리 이런 역할들을 주어야 하는데 저는 그 분배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자꾸 엄마는 내가 아닌것, 며느리는 내가 아닌것, 그런 역할들이 나의 삶의 한부분이 되지 못해 자꾸 그 역할들 위로 기름처럼 "내"가 떠오르고 섞이지 못하는 나는 그 역할들이 안맞는 옷처럼 불편하고, 억울하고 공허해지는 것이더라는 것입니다.

그 생각이 미치자 외로웠습니다. 아직도 스물넷 그 시간에서 그토록 하고싶었던 연극무대의 캐스팅을 출산과 겹친 공연으로 인해 고사하고, 쓸쓸히 뒤돌아서서 집으로 돌아오던 그 어린 아가씨가 자꾸 손에 잡힐것 같습니다.


입에 발린 말처럼 친구들한테는 네 상처 네가 토닥이고 안아주어야지 라고 했는데...

정작 나는 그 쓸쓸한 스물네살의 어깨를 한번도 토닥이지 못했고, 나에게는 마치 이십대가 없었던 것처럼

아니 스물셋 이후의 십오년이 싹둑 잘려나간것처럼 기억나지도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마음이 함께 따라오지 못한 길을 꽃보다 더 어여쁜 청춘들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그 길 끝에 엄마인 나도 있고, 딸인 나도 있고, 며느리인 나도 있습니다.

슬픈건 그 어느 나도 행복해보이질 않더라는 것입니다.

업을줄도 모르는 포대기에 아이를 둘둘 감아 업고 어린이집으로 뛰는 엄마인 나는 출근준비에 양말을 짝짝이로 신은줄도 모르고, 퇴근후에 부랴부랴 달려가서 제사를 지내는 나는 피곤에 지쳐 보였습니다.

힘들다고 엄마한테 전화를 할까 말까 망설이는 나는 가슴이 아립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가장 힘들었던 엄마인 나에게 말했습니다.

"잘했어... 양말도 바꿔신은줄 모르고 얼마나 바빴을까... 아침도 못먹고, 배고팠겠다.

 금방 아기가 클거야. 정말 잠깐 사이에 아기가 훌쩍 커버릴거야. 아마 무진장 속썩이는 놈 될거야 ㅎㅎ

 내가 그 아이 십오년 키웠는데, 말 진짜 안듣더라. 그래도 지금 이렇게 많이 못업어준거

 나 무지무지 후회하고 있어.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사랑해줄걸 하고 후회하고 있어.

 그러니 지금 이 천사같은 아이, 비록 사춘기에 엄마한테 씨발이라고 욕하는 호로아들이 될지라도..ㅎㅎ

 많이 사랑해주자. 대신 너 힘든거 너 눈물나는거 그건 내가 들어주고 닦아줄께. 약속할께....."

스물네살 엄마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다가 눈시울이 빨개진채 말갛게 웃습니다.

차마 떨구지 못한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다시 한번 힘을 내겠다는듯 아이를 업은 포대기를 들춰메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말했습니다.

"고마워, 진짜 많이 고생했어. 네가 포기하지 않아서, 네가 엄마임을 부정하지 않아서 지금 내가 여기에 있어.

내가 더 일찍 찾아오지 못해서 미안해. 다시는 너는 내가 아니라고 부정하지 않을께. 다시는 너를 내 기억

저편에 밀어놓고 내가 아니라고 하지 않을께. 네가 나를 부정하지 않은것처럼 네 시간덕에 내가 있음을

잊지 않을께"

이제 스물네살의 나는, 어린아기를 업고 짝짝이 양말을 신은 나는 더이상 슬퍼보이지 않습니다.

그 등뒤에 15년후 드럽게 말안듣고, 속썩일 그럼에도 가슴아리게 사랑하는 나의 아들이 궁둥이를 들썩이며

좋다고 발을 구릅니다. 그 엉덩이를 한번만 더 두드려주고 싶습니다.

스물넷의 현이 엄마, 내가 아니라 아파했던 나는.. 충분히 어여쁜 "청춘"이 되었습니다.


나는 아직 딸인 나를 다독이지 못합니다.

온전히 그 안에 다가설 용기가 아직은 부족합니다. 너무 어린 나부터 마주해야하는데 아직은 두려움이 큽니다.

그저 불쑥불쑥 나오는 어느날의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다 안아주거나 손을 잡아주거나 머리를 쓰다듬습니다.

훌쩍훌쩍 우는 나도 있고, 멍하니 하늘을 보는 나도 있고, 감히 상상할수 없는 두려움에 몸부림치는 나도 있지만

그런 나에게 해줄 말은 별로 없습니다.

어떤말을 듣고 싶었던게 아니라는걸 알기때문에, 그냥 그런 나를 바라보다가 무릎에 묻은 흙도 털어주고,

궁둥이도 두드려주고 일으켜 "집에 가자. 응?" 하고 손을 잡아줄 뿐입니다.

조금더 용기가 생기면 어느 날의 나에게 이 말 한마디는 건네주고 싶습니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그저 오늘 나쁜 일이 생긴것 뿐이야. 나쁜 꿈을 꾼것처럼, 돌뿌리에 걸린것처럼

 그렇게 어떤일이 생긴거야. 넌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어"라구요.


며느리인 나에게 해줄 말은 딱 한마디 입니다.^^

"쫄지마!!!!!!!!!!!!!!!!!!!! 괜찮지 않다고 이야기해!!!!"

기혼여성에게 가장 거절이 어려운 집단이 시댁이 아닐까 합니다. 하나도 괜찮지 않지만 괜찮아야 하고, 아무것도 못하지만 할수 있어야 하는 집단. 가족이되 가족이지 않은 남이지만 남임을 인정하지도 않는 저는 아직 그 이질감을 다 지우지 못했습니다.

그 사실을 인지한 날부터 전 며느리인 저한테 늘 이야기합니다.

"쫄지말고, 안괜찮다고 얘기해. 아무도 널 물거나 해치지 않아!!"

내 화가 쌓이지 않아야, 내 감정의 폭발이 엉뚱한 도화선에서 터지지 않는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덕인지 어머니 화가 쌓여가는것 같은건 저만의 착각일까요?^^:;;;


자리를 툭툭 털고, 어깨를 한번 쭈욱 펴고, 한학기 공부를 일주일만에 벼락치기 한 신공을 펼치러 갑니다.

48시간째 1분도 못자서 토할것 같은 기분이지만, 그래도 나와 화해한 마음은 봄바람처럼 가볍습니다.

불과 삼십분전까지도 그저 부러웠던 청춘들 속에, 왠지 나도 한구석 발을 들인것 같아서 설레입니다.

스물네살의 현이엄마야, 봐 시간이 지나니 네가 그토록 하고싶었던 공부를 할 시간이 왔어.

네가 그렇게 하고싶었던 연극도 했어. 나중에 네가 스물여섯이 되면 예쁜공주를 얻게 될거야.

그 공주랑 같이 연극을 했어. 나는 무대에서 주연을 맡았고, 공주는 무대 오프닝 보조진행을 했어.

얼마나 야무진 공주님인지 공연준비내내 함께 대본리딩을 해주며 매니져 노릇을 톡톡히 했지.

그러니 걱정마, 스물네살 현이 엄마야.

네가 포기하지 않아 다 이룬일이야.

모두 네가 한해 한해 이룬 것들이야. 넌 도퇴되지도 않았고, 멈춰있지도 않았어.

내가 증인이야!! 그러니 내 손잡고 한걸음씩 가자. 이제 나혼자 가지 않고, 내가 너 서른여덟해까지 올때까지

하루 하루 손잡고 응원해줄께..

스물네살의 현이엄마야, 고마워 그리고 잘했어. 정말 여기까지 너무너무 잘 와주었어.

수고 했어. 내가 스물네살의 현이 엄마 아주 칭찬해!!!!!


팁 : 실제로 우리 뇌는 셀프칭찬, 셀프위로를 들으면 타인의 위로와 마찬가지로 위안을 얻는다고 해요

     살면서 누군가 나의 마음을 경청하고 공감하긴 아주 어렵잖아요. 그러니 하루를 잘 살아온 우리 엄마들...

     스스로 머리한번 쓰다듬어 주세요. 오늘도 수고하셨어요~ 참 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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