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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뽕 Apr 27. 2017

모성 총량의 법칙

모성은 저마다 달라요.. 우리 엄마들은 독보적이예요^^

"너는 좋겠다, 애들 다 키워놔서...."

"이제 다 컸잖아!! 벌써 중학생인데...."

요즘 결혼 적령기 대비 결혼을 일찍 한 덕에, 내 나이 대비 아이가 큰 편인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거의 선두그룹인 아이 엄마다. 이제 초등학생, 유치원생 심지어 영유아를 육아하거나 아직 미혼인 친구도 많다.

그럴때마다 듣는 단골멘트가 바로 저거다. 너는 좋겠다....

좋을까?

정말?

그럴때마다 속으로 생각했다.

'키워봐라, 좋은가.....육아에 좋은때는 대체 언젠지 나한테도 좀 알려줘라'

아이가 혼자 밥을 먹고, 용변해결이 가능하고, 말을 알아들으면 육아가 편해질까?

갓난아기때는 제발 목만 가눠도...아니 밤에 잠만 자도....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지긋지긋한 젖병소독이며 기저귀 빨래는 언제쯤 안해도 될까 생각했었다.

내 몸에서 나는 젖냄새에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거울속엔 반쯤 실성한거 같은 여자가 젖물과 아이가 토한 토사물이 얼룩진 목늘어난 티를 입고 있었다.

입술은 피곤에 다 터져서 피딱지가 얼룩덜룩했다.

유축할때 생각했었다. 난 사람인가 젖소인가.....밥은 배고파서 먹는게 아니었다.

나의 생존이었고, 아이의 수유를 위한 적립과도 같은 거였다.

육아는 늘 달콤하고 생글생글 봄꽃같은 아이를 어르며, 드라마에서처럼 폼나는 유모차를 끌고, 고상한 저녁산책을 할줄 알았다.

천만에!!!!!

육아는 생존이었고, 너무나 가축적이었으며, 극한을 체험하는 그 어떤 극기훈련보다도 힘들었다.

마치 내 인간성의 바닥을 보는 기분이었달까? 나 스스로도 내가 이토록 최악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미처 몰랐다. 그래, 내가 그 조막만한것의 궁둥이를 그토록 야멸차게 때릴수 있는 사람이란걸 몰랐었다.

외출은 언감생심이었고, 가슴을 내어놓은채 젖이 줄줄 흘러 이불을 적시는 줄도 모르고, 아이는 아이대로 널부러지고 참으로 누가 볼까 두려운 나날이 계속되었다.


인간과 엄마 사이에서 나의 존재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인 기분이었다는게 맞을것이다.


나는 인간이길 포기하고, 여자이길 포기해야 엄마가 되는 사람 같았다.

그리고 그 선택이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그래서 늘 나의 육아는 우울했고, 힘들었고, 끝도 없는 시험을 치르는 기분이었다.

아이가 예쁘지 않았다.

그래 난 그사실이 너무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랬다. 내가 낳았는데 예쁘지 않았다.

그냥 덫에 걸린것 같았다. 얘만 아니면 벗어날수 있을것 같았다.



아이를 키우며, 친구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울해 했고, 힘들어 했다.

지지배들, 내가 애 키울땐 그렇게 날 모질게 비난하더니 지들도 똑같네...

라고 고소했으면 통쾌하기라도 했을텐데 서글펐다.

내가 아이를 처음 키운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애 키우는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도, 엄마가 겪는 고통도,

하나도 달라진것 같지 않았다. 내 딸도 저 길을 가야하나 싶어 마음이 답답했다.

대게 아빠보다는 엄마에게 "희생"이란 이름으로 가해지는 고통의 크기가 훨씬 크다고 감히 말해본다.

마치 엄마가 엄마보다 인간이길 선택하는것이 모성의 상실이라도 되는것처럼 힐난하는 것이 너무 서슴없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대체 뭘 했길래!! 라며 엄마에게 화살이 돌아오기 일쑤다.

나는 한순간도 아이를 방임하거나 학대한적도 없는데, 가뜩이나 아픈 아이보며 가장 아픈건 엄만데...

졸지에 몹쓸 엄마가 된것 같은 자책도 엄마몫이다.


그래서 난 육아에 힘든 친구를 위로하지 못했다.

어떤 위로도 입바른 소리도 힘이 되지 않는다는걸 알기 때문이다.

그저 말할곳이 필요했을것이다. 뽀로로 방귀대장 뿡뿡이 이런 노래를 흥얼거리는 일상말고, 응애응애 말도

안통하는 인간인듯 인간아닌 인간같은(표현이 거슬린다면 죄송하지만 애기때는 말이 안통하는게 사실이니까)

존재말고, 정상적 의사소통이 가능한 누군가가 필요하다는것, 그것이 얼마나 간절한지 알기 때문이었다.

"나올래?"

"애기 때문에 나가기가 힘들어"

"그럼 내가 갈께"

나는 친구가 좋아하는 김.떡.순을 검정 비닐봉다리에 담아 친구집으로 찾아갔다. 솜털같은 아기냄새가 가득했다. 손을 씻고 들어간 방에 난 이미 잊고 없던 천사가 잠들어 있었다.

뽀얗고 고운 구름같은 아이.... 나도 저런 작은 아기를 키웠나 싶게 어여쁜 그야말로 천사였다.

이 어여쁜 아이를 키우는 시간이 꿈결같아도 힘이 들텐데.... 엄마는 아이가 태어나며 여자에서 엄마로 같이 태어난다고 저리 아픈가...이 어여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왜 극한 직업같아야 할까....

거실에서 상을 차리자마자 빼액 울어대는 아기천사를 품에 안았다. 배가 고픈지 젖가슴에 입이 가는 아이에게 우유병을 물리며 말했다.

"엄마 밥먹게 울지 말지...꼬맹아.... 엄마 쪼끔만 힘들게 하고 너무 많이 아프게 하진 마라....응? 이모는 엄마편인데 너 엄마 힘들게 하믄 이모가 안이뻐할거야. 너 내친구 새끼여서 이쁜거거등??"

뭘 알아들었는지 녀석은 헤~ 하고 웃음을 지으며 안이뻐하겠다고 으름장 놓는 이모 맘을 죄다 녹여놓고, 떡볶이가 퉁퉁 불어터지는지도 모르고 내 친구는 울었다.

뭐가 그리 서러웠는지 내 친구가 오래오래 울었다.

꺽꺽 숨이 넘어가도록 그렇게 울었다.

아이를 안고 어르는 나도 자꾸 눈물이 났다. 왜 우는지 뭐가 그리 서러웠는지 나는 알것 같았다.


퉁퉁 부은 눈을 하고 친구가 말했다.

"아이보다 내가 먼저이고 싶었어. 20시간 넘게 진통했는데, 오는사람마다 아이만 쳐다보더라.

정작 나는 앉지도 못하게 아프고 어지러운데, 다들 아이만 보더라구. 그게 또 그렇게 서운하더라.

그런데 그런 내가 너무 찌질하고 나쁜 엄마같잖아. 말도 못하겠고....

애가 안자서 나는 너무 피곤한데 남편은 잠못잔다고 짜증내고, 아침상 못차려주는거 시어머니가 장난처럼 타박하고, 나는 대체 어딨는지...내가 얼마나 피곤한지, 출산한후에 얼마나 아픈지 밥은 먹었는지 아무도 안물어봐.

내 새낀데 언젠가부터 애가 이쁘지를 않아.

나 너무 졸리고, 배고팠고, 친구들이 만나고 싶었어. 그런데 엄마가 왜그러냐고 다들 그래.

엄마가 신이니? 내가 예수야 부처야!! 나두 엄마 처음이야!! 내가 애 열 키워본것도 아니고 나도 힘들구 겁나구

무섭고 그래. 근데 그럼 다 나쁜 엄마로 몰아가!! 나 내 새끼가 안이뻐. 진짜 힘들다구!!"

친구의 등을 한없이 쓸어주며 말했다.

"그래, 힘들지. 잠오는데 안자고 보채면 얼마나 미운데...퉁퉁 불어터진 짜장면 먹으면 눈물나는거 나도 해봤지.

진짜 기분 더럽잖아. 누가 엄마 되기 전에 좀 가르쳐 주면 좋겠는데... 하나도 모르고 있다 덜컥 낳아놓고 보니

너무 겁나드라. 쪼그만거 안지도 못하겠는데 왜 우는지도 모르겠는데... 자꾸 우리한테 엄마만 하라그런다.

엄마가 뭔지 알지도 못하는데 낳아놓으믄 그때부터 엄마의 모든걸 갖춘것마냥....썩을것들..."

그리고 꼭 해주고 싶은 말을 덧붙였다.

"너 나쁜거 아니야. 나쁜 엄마 아니야, 원래 다 그래. 야 나쁜걸로 따지면 아빠는 할머니는 할아버지는...

자기들은 애랑 남이야? 왜 엄마만 있는 애처럼 우리만 들볶아. 할머니는 할머니 몫이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몫이, 아빠는 아빠몫이 있는거 아냐? 우리가 싱글맘이냐? 왜 자기들은 할머니 포인트 아빠 포인트 안쌓고, 우린 쌓아놓은 적도 없는 엄마 마일리지를 꺼내 놓으라고 지랄이라니..."

그제서야 눈물을 매단채 친구가 웃었다.

꼬마는 콜콜 잠이 들었다.

우린 불어터진 떡볶이와 식어버린 순대를 먹으며, 어린날의 어느날처럼 고추장 양념을 입에 묻히고 깔깔거리며

여고시절 소녀들처럼 한참을 웃었다.

내 친구의 웃음이 그 어느날보다도 환하고 예뻐서 나는 또 눈물이 났다.


다시 중딩과 초딩과 전쟁을 시작한다.

이것들은 엄마가 "주적"인지 날마다 하루하루가 무한도전이다.

육아에 편한날은 없다. 그날 그날이 매일 처음이니까...

한살 철수 엄마도 처음이고, 두살 철수 엄마도 처음이다. 철수가 세살이 되어도 동생 영희의 한살은 또 다르다.

그래서 육아는 익숙해지지도 덜 힘들어지지도 않는다.

다만 아이가 주는 하루의 행복은 전쟁같은 삼백육십네날을 버티게 한다는 걸 우린 안다.

그래서 함박웃음 웃는 아이를 위해 모든것을 내어줄 수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모성은 사람마다 다르다.

저마다 가진 모성의 양도 다르며, 모성의 형태도 다르고, 색도 다르다.

같게 생긴 사람이 아무도 없듯이 모성 역시도 사람마다 표현도 가치도 생각도 다르다.


무엇보다 중요한것!!

모성은 본능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모성은 절대 아이를 낳는순간 마법처럼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모성은 아이와 부딪히고 생존의 시간을 겪으며 처절하게 학습되어진다.

어느날은 아이를 내동댕이 칠것같은 그 들끓는 마음을 누르며, 어느 날은 아이의 웃음에 세상 가장 행복한 엄마가 되며, 어느 날은 나를 옭아맨 올무같이 느끼며, 그리고 어느날은 그런 내가 너무 나빠보여 가슴 찢으며, 아픈 아이 안고 밤을 지새며, 그 수많은 생존적이고 가축적인 날을 함께하며 학습되어진다.

만일 사람이 태어나 늘 방긋방긋 웃고, 태어나자마자 자립적 활동이 가능하다면 부모자식간이 이토록 끈끈할까? 그 애달픔은 훨씬 덜해질 것이다. 그래서 부모자식은 애증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엄마들이 굳이 남들과 비교해서, 쓰여진 육아서대로 엄마노릇을 못하겠다해서 아파하지 말자.

할머니 할아버지 또는 주변 가족들의 힐난에 상처받을 필요없다.


엄마가 나빠서가 아니니까.

나의 모성은 세상에 하나 뿐이며, 어느 누구도 내 아이를 나만큼 사랑할 사람은 없다.

그건 지구가 멸망해도 변치않을 진리다.

아이에게 태를 빌려주고, 열달을 내몸보다 귀히 길러 세상에 나올 생명을 만들어준 당신은 아이의 우주이며,

세상 누구보다 위대한  일을 해낸 가장 훌륭한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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