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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뽕 Oct 08. 2021

가장의 무게

무섭고 외롭고 고독한 어느날들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꽃이다.

싱글맘에게 경제력은 "생명력"과 같다.

누구에겐들 그렇지 않겠냐마는 경제적 단절은 싱글맘에게 최대 위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맞는 옷 같은 직장을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거의 20년 가까이를 직장생활을 하며 어디가든 잘 적응하던 나의 적응력은 공황장애를 겪은 이후 증발해버렸다.

조금만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면 건강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그렇다보니 직장생활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운이 좋은건지, 나는 한번도 직장 텃세라는걸 겪어본 일도 텃세를 부려본 일도 없다.

동료들은 친절하게 대해주었고, 나도 힘껏 동료들의 일을 서포트 했다. 하지만 공황장애 이후 들어간 직장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어렵게 구한 직장이고, 연봉도 직급도 꽤 괜찮은 조건이었기에 나는 어떻게든 버텨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40대 초반, 이젠 이직도 어려운 나이에 힘겹게 구한 귀한 직장이었다.

인수인계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가르쳐주는건 뭐든 전력을 다해 배울 각오를 다지고 출근한 첫날, 나의 각오는 무색했다.

나에게 인수인계를 해주는 동료는 빨간 색연필이 죽죽 그어진 인수인계서 두어장을 나에게 주었다.

업무에 대한 설명이나 가르침은 일체 없었다. 멍하니 인수인계를 보다가 그녀에게 말했다.

"업무에 필요한 서식이 있는 파일이 있는곳을 알려주시겠어요? 제가 찾아보니 못찾겠습니다."

바쁘다는듯 짜증이 가득한 얼굴의 그녀는 내가 보는것이나 적는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속도로 파일을 열어서 내 모니터에 띄워주었다.

"바쁘신 중에 죄송하지만, 주신 업무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일할 마음이 없으세요? 알아서 하셔야죠. 경력직이시잖아요"


경력직.. 나는 내 분야에 10년이 넘는 경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회사는 회사마다의 시스템과 관리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본 업무에 대한 숙지가 되더라도, 업무를 처리하는 절차라든가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 

그걸 무시하고 내 맘대로 일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지만 이미 짜증이 가득한 그녀에게 무언가 묻기란 소극적인 내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이미 충분히 무안했던 나는 일단 파일을 열어 필요한 업무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업무파악을 하는 시간 동안 나의 업무속도는 동료들보다 느려질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하는게 맞는건지 나혼자 판단하고 검토하는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언제까지 그 일만 하실거예요? 오늘 할 일이 많아요"

"업무 첫날이예요. 저한테도 업무파악할 시간을 주셔야죠"

"됐어요, 제가 할께요!!"

귀 밑까지 벌겋게 달아오른 느낌이 들었다. 내 표정은 안봐도 뻔했다.

손이 키보드 위에서 빨라지는 만큼 심장도 빨리 뛰었다. 마음은 조급하고, 업무는 눈에 얼른 들어오지 않았다.

자꾸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호흡이 거칠어지는게 느껴져서, 일을 하다 말고 잠시 밖으로 나와 심호흡을 했다. 바깥 공기를 마셔도 가슴에 이미 한번 당겨진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무안한 마음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몇번이나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기 최면을 건다.

"참아야해....견뎌내야해....시간이 지나면 나아질거야"

나에게 경제력은 생명력과도 같다. 내가 견뎌내지 못하면, 내 아이들의 날개가 꺾인다.

주저앉을수도 없는 싱글맘의 자리가 어느때보다 무거웠다. 가장의 무게라는게 이런것인가 싶었다.

겨우 숨을 가라앉히고 다시 키보드 위에서 손을 바삐 움직인다.

눈물 한방울이 손등에 툭 하고 떨어졌다.


이혼을 할때도 울지 않았다.

이혼후 수도 없이 이력서를 내고 떨어질때도 나는 울지 않았다.

그런데 눈물이 났다.

자존감이 땅바닥에 떨어진 기분은 쉬이 지워지지 않았다.


눈을 부릅뜨고, 심호흡을 하고 애써 눈물을 삼킨다.

나는 엄마다.

엄마는 강하다.

아무리 최면을 걸어도 아무리 이를 악물어도 자꾸만 눈물은 내 의지를 무시하고 비집고 흘렀다.


<작가 :조주현님 발췌>


갑자기 아이들 아빠가, 나의 전남편이 생각났다.

어느날의 그는 참 미웠지만, 어느날의 그는 퇴근 후 지친듯 들어와 큰 숨을 토해낼때 외로워 보였다.

차마 내려놓지 못한 짐을 어깨에 짊어진 채 그는 나와 같은 어느날을 견디고 있었을 것이다.

화가 나고 자존심이 상하고 더럽고 아니꼬와도 "가장의 무게"를 어깨에 진 그는 외로운 전쟁을 하고 있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자 그 어느날을 좀 더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한 미안함이 스멀스멀 밀려들었다.

그가 독한 말을 내뱉던 날, 어쩌면 그는 세상에서 가장 겁먹은 어린아이였을지도 모른다.

너무 무섭고 너무 외로워서 그만 나에게 그 마음을 독한 말로 쏟아낸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아달라고, 내가 너무 힘이 든다고, 말할 수 없던 그 마음의 다른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뺨에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큰 숨을 토해낸 내 손길이 바빠진다.

어서 일을 해내고 집에 늦지 않게 가야 조금이라도 쉴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애써 마음을 다독였다.

잊지말자, 이 날도 지나갈거다.

이 날이 지나면 어여쁜 꽃같은 날들도 찾아오겠지.

늘 봄이면 봄이 아름다운걸 알수 없을테니 시린 겨울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하자.

까짓거 언제까지나 모르지 않을테니, 시간이 해결하도록 기다려주자.


누구나 가장의 무게를 이고 살아간다.

아니 누구나 자신의 인생의 무게를 안고 살아간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 인생의 무게는 무겁고 고독하고 외로운 날이 행복하고 즐거운 날보다 많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날처럼 두렵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은 비록 눈물나고, 망망대해에 혼자 선 것 같이 두렵더라도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비록 경제력이 생명력처럼 느껴지더라도, 큰 숨 토해내고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

내일 당신은 꽃같이 어여쁜 날을 보내게 될테니 잊지말자, 우리는 매일매일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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