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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뽕 May 11. 2017

좋아하는것과 잘하는것의 괴리

아이의 재능과 아이의 행복이 늘 일치하진 않아요.

어릴때부터 글쓰고 책보는게 제가 가진 세상 전부였어요.

어릴때 살던 집엔 다락방이 있었어요. 집에 온갖 잡다한 잡동사니들을 쟁여놓는 창고나 다름없었죠.

천장에 쥐 드나드는 소리도 들리고, 먼지가 수북해서 올라갈때마다 엄마의 등짝 스매싱을 피할수가 없었어요.

그런데도 기어이 기어올라가 빨강머리 앤을 읽을때는 초록지붕 집에 온 앤의 설레임이 한몸에 느껴졌어요.

아빠의 묵은 책냄새도 좋았고, 먼지에 비추는 햇살도 뽀얗게 이뻤어요.

책을 좋아하다보니 자연스레 글쓰는 것이 좋았어요.

더 엄밀히 말하면, 전 말주변이 없어요. 남앞에 나서는 거 주목받는거 이런 인정욕구가 강한 아이였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중앞에서 독자적 시선을 받으면 얼어요.

가슴이 두근두근 뛰고, 식은땀이 흐르고, 말을 더듬고, 머리가 하얗게 되요.

그러다보니 글로 소통하는게 좋았어요. 편지를 써주면 친구들이 좋아했고, 일기를 쓰면 늘 선생님이

친구들앞에서 읽어주셨어요. 그러니 아이의 인정욕구가 글을 쓰는것으로 향하는게 당연했어요.

백일장에 나가면 상을 받는 일이 많았고, 그러다보니 글을 쓰는 일이 즐거워졌어요.


학교다닐때 레포트 쓰는것도 늘 거의 만점이었어요.

그런데 10년넘게 신춘문예에 미역국을 먹어요.

아무리 아무리 도전해도 안됐어요.

그건 제가 좋아하는..재능이 있다고 믿은 일에 대한 첫 좌절이었어요.

이렇게 글쓰는게 좋은데 전공은 환경공학이예요. 심지어 지금 때늦게 하는 공부는 상경계열입니다.

끝도 없이 내가 하기 싫은것만 하고 있어요...ㅠㅠ 일종의 현실타협인거죠.

그러다가 어느날인가 드라마 팬픽을 쓰기 시작했어요.

인터넷에 연재를 했는데 의외로 많은 독자들이 생겨났어요.

오래 잊고 있던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뭉클뭉클 샘솟았어요. 그래서 10년 넘게 문학만이 글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욕심을 접고 여러곳에 로맨스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죠.

생각보다 반응도 좋았는데 나는 행복하지가 않았어요.

로맨스 소설이라는게 상업소설이다 보니 독자들을 집중시키는 컨텐츠가 필요해요.

그렇다보니 더 자극적인 소재, 자극적인 표현, 무언가 말초신경의 욕구를 충족시킬 뭔가가 필요한데..

어느날부터인가 이건 내가 쓰고싶었던, 내가 말하고 싶었던 사랑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강간도 나쁜남자의 특권인듯, 꼭 여주인공은 그런 남자의 매력에 빠져들고, 어려운 환경에서 꿋꿋하게 살던 얼굴예쁜 여주는 백마탄 왕자처럼 나타난 재벌과 사랑에 빠지고, 꼭 그런 여주는 보통사람같으면 접시물에 코라도 박고 죽을 환경에서 좌절도 안해요. 내가 써놓고도 얼척이 없어서 지워버린 글이 얼마나 많은지...

(물론 잘 쓰시는 상업작가님들 너무 많아요. 입이 떡벌어지는 글도 여럿봤어요. 상업소설을 폄하하자는게 아니라 저의 괴리를 말씀드리는거예요. 이땐 정말 소재고갈로 미쳐버릴 지경이었거든요.)


다시 생각했어요.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정말 잘 할수 있는건 뭘까?

내가 진심을 다해 글로 소통할수 있는 소재는 뭘까?

문득 생각이 들었어요. 난 남의 이야기를 듣고, 남의 말에 맞장구쳐주고, 누군가의 등을 쓸어주는거 참 잘하는구나..오지랖이 조선 반인 나는 내 얘기는 할데가 없어서 가슴터져도, 남의 말엔 어지간하면 노 안하는 장점이자 단점이 있구나.

무슨 이야기를 못해서 젤 마음 아팠나....

저는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 제일 아팠어요.

내 아이 키우며 겪는 괴리는 남에게 잘 할수가 없었어요. 내가 나쁜 엄마가 되는것 같았거든요.

아이가 크며 아이가 속썩이는 이야기는 더 못해요. 내 자존심도 상하고, 내 입으로 내 아이 욕하는 거같아서

더 못해요. 그런 시간의 대부분을 전 혼자 울었어요.

남편도 이해해주지 않고, 그 이야기를 시어머니한테 했더니 무슨 일이 있을때마다 니가 그때 그래서 라고 화살로 돌아왔어요. 그때부터 전 말문을 닫고 아무하고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시작한게 이 브런치였어요. 육아서도 내 편 아니고, 남편도 남의 편이고, 아무도 내 얘기 할수 없는

엄마의 편이 되어주고 싶었어요.

비록 옆에서 손을 잡아드릴수는 없지만, 엄마가 나쁜게 아니예요.. 절대 엄마가 못난게 아니예요.

잘하지 않아도 되요. 힘들면 힘든대로 앉아 쉬어도 되요. .라고 말해드리고 싶었어요.

전 그말이 너무 듣고 싶었거든요. 진짜 힘들때 힘내라고 하면 짜증나요.

힘낼수 있음 내가 지금 힘이 들겠냐구요....


브런치 공모전에 매번 떨어져요 ㅋㅋㅋㅋ

아직 책을 내고 싶은 꿈도 이루지 못했어요. 냈다가 잘 안되면 창피할것 같아서 시작도 못한것도 있어요.

그래도 저는 지금 행복해요. 제 글 보시면 알겠지만 댓글도 별로 없고, 악플보다 더 무섭다는 무플인 글도 수두룩해요. 그래도 이따금 쪽지를 받거나 댓글을 보면 전 행복해요.

글을 쓰는 사람은 내 글을 함께 누군가가 공감하고 위로받는것 만큼 행복한 일이 없을거예요.


이런 제 직업은 회사의 경영지원팀에 회계/세무/인사총무 담당으로 종사하고 있습니다.

전 수포자도 아니고 산포자인데....산수부터 수가 싫었는데....학교다닐때 수학이 고등학교때 거의 40점을

넘어본 기억이 없는데 저 숫자가지고 밥먹고 살아요.  이토록 세상일은 아무도 몰라요.


작은 아이는 그림에 재능이 있었어요. 미술을 7살에 시작해서 5학년까지 학원도 다니고 화실도 다니며 전공수업도 받았어요. 선생님들이 예중준비 시켜라 할만큼 소질도 보이고, 상도 나가면 다 쓸어오다시피 했어요.

그런데 화실에서 전공수업을 받던 어느날 아이가 그림을 그만 그리겠다고 했어요.

청천벽력같았죠. 그동안 들인 돈이며 시간이며 노력이며, 그걸 한순간에 놓아버리겠다고 하니 기가 막혔어요.

어느날 아이가 말했어요.

이젤 앞에서 네시간씩 그리는 그림이 너무 힘들다고, 매월 공모전 준비를 하는 그림이 너무 힘들다고, 학원에서 그림그릴때는 어느날은 그림도 그리고, 조각도 하고, 라면파티도 하고 친구도 있고 재밌었는데, 화실에 와서 등받침도 없는 스툴에서 이젤앞에 앉아 허리 쪽 펴고 네시간씩 오직 대회에서 상받기 위해 그리는 그림은 하나도  즐겁지 않다고.. 그러더니 사생대회를 나가지 않기 시작했어요.

예중 준비를 하려면 수상경력도 중요한데, 아이는 화구를 다 챙겨서 남의 엄마 차를 얻어타고 가는 사생대회가 귀찮고 불편하다고 했어요. 가능하면 데려다주려고 애썼지만 일맘은 그게 쉽지 않잖아요. 매번 회사를 빠질수도 없고....그러더니 원고지만 들고가면 되는 백일장을 나가기 시작했지요.

한번 두번 상도 받아오고, 떨어지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아이는 글쓰는 일을 재미있어 했어요.

논술학원을 보낼까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즐기며 하는 일에 아이의 행복이 가득했거든요.

처음 그림을 그릴때처럼 아이는 초롱초롱 빛났어요. 상장을 즐겁게 가지고 왔어요.

자랑하려고 오는 발걸음이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봄바람을 타고 오는 것처럼 가벼웠어요.

과감하게 화실을 그만두고 미술학원을 다시 갔어요. 그리고 아이는 어느날은 찰흙을 조물거려 만든 이상한 형체를 들고 오고, 어느날은 라면파티를 하고 어떤날은 동화책을 읽고 그림도 그리고 하며 재밌게 그림을 그렸어요. 그리고 6학년이 되며 스스로 미술학원을 쉬겠다고 했습니다.

당분간은 학업에 열중하고 싶다고 하길래 원하는대로 하라고 했어요.

글쓰는게 좋다는 녀석이 책 한권을 안읽습니다. 책읽으면 헌법에 위배되는줄 아는듯이 아이돌 그룹에 열광하고 덕질에 열과 성을 다해요. 가끔 엄마를 꼬드겨 문구점에 가서 아이돌 오빠야들의 사진을 얻기도 하고, 팬들의 필수품인 아이돌 굿즈도 사고, 콘서트를 가기위해 엄마를 피시방으로 소환해 광클의 끝을 보이게도 합니다.

어느순간 아이의 재능이 모호해졌습니다.

그 대신 아이의 행복은 분명해졌습니다.

원하는 것, 쫓기지 않는것, 가슴이 뜨거운 것, 잘생긴 오빠들, 목표에서 일정한 성과를 내는 것, 엄마가 잔소리하지 않는것, 엄마와 떠나는 갑작스런 여행, 레고, 토끼인형, 액체괴물놀이 ㅡㅡ 이런 아이의 행복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미대에 가서 나는 발로도 그릴수 없던 멋진 그림을 그리거나 아니면 폼나는 큐레이터가 될줄 알았습니다.


퓰리처상은 못받아도, 나는 그토록 열망했던 신춘문예의 한을 풀어주나 했었어요.


상위권의 성적을 내길래 공부로 성공하려나 했습니다.


아뇨, 아이의 재능은 아직도 잘 모릅니다.

아니 시간이 갈수록 하고 싶은게 자꾸 바뀌니 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아이의 행복이 보이니 우선은 그걸 지원하고 서포트해줍니다.

재능은 행복안에서 아이가 찾길 바랍니다.


엄마는 그 재능에 응원과 지원을 보태어줄 뿐이지요.


내가 찾아주고, 내가 행복하고 흐뭇한 재능안에서 아이는 시들어 갔고,

제녀석이 찾은 행복안에서 아이는 새로운 것들을 자꾸 찾아냅니다.

보물찾기 처럼요.

아이돌 오빠들 플카를 만들며 그동안 배운 미술재능을 아낌없이 뽐냈고,

백일장에 나갔던 글솜씨로 탄원서에 가까운 어버이날 편지를 써왔습니다.

엄마에게 바라는 것을 편지지 두장 가득 적어왔더군요.

어버이날 편진데 감사는 1도 없고 ㅎㅎ 투서에 가까운 편지를 주었습니다.

합리적 내용이라 괘씸한 마음으로 수용했습니다.


우리 아이가 태안에 잉태되었을때, 서울대 씨가 내 안에 있구나 했던 엄마는 몇 안계실겁니다.

손가락 발가락 열개, 건강하게만 태어나게 해달라 소망했습니다.

아이가 태어날때 우리가 궁금했던건 단 하나 건강하고 무사하게...

아이들은 그 약속을 충실히 지키고 태어나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그러니 우리 이제 아이의 재능말고 아이의 행복에 집중하면 어떨까요?

우리가 찾아준 재능말고, 아이가 스스로 나의 재능이라 여길 그 어떤 보물을 찾아갈지

함께 설레어보지 않으시겠어요?

아이의 행복에 집중하면, 아이는 그 안에서 스스로 가슴뿌듯한 무수한 재능을 찾을겁니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잘하는 것이며 내가 좋아하는 것..


아이의 자존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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