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숙제 - 자연분만 VS 제왕절개
한때 개그우먼 김현숙씨가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에서 "출산드라"라는 케릭터를 연기할때 그녀의 슬로건이
<자연분만, 모유수유> 였던 것 기억나시나요?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나왔던 그녀의 슬로건이 생각보다 많은 엄마들에게 <자격없는 엄마>라는 주홍글씨를 찍고 있다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도 그 주홍글씨를 아직까지 달고 있는 엄마이기도 합니다.
자연분만은 분만의 모든 과정이 자연적으로 진행되어 출산에 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엄마의 건강이 허락치 않거나 아이가 위험하거나 때론 분만의 과정이 순조롭지 않아 모두의 안전을 위해 우린 제왕절개라는 인공분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대게 제왕절개를 선택하는 경우는 진통중 아이의 심박동이 떨어지거나 아이가 태변을 먹는등 아이의 생명에 위협이 가해지거나 엄마의 분만이 원활하지 않아 출혈이 심하다던지 아이가 산도를 통과하지 못하거나 늦어지는 분만으로 산모가 탈진을 하거나 혹 아이가 역아이거나 무수한 많은 경우의 수가 있습니다.
결국 자연분만과 제왕절개는 "복불복"일 확률이 가장 큽니다.
저는 두 아이를 모두 38주 5일, 제왕절개로 출산했습니다. 뱃속에서 내내 순둥이였던 저희 큰아이는 그 느긋한 성격이 뱃속에서도 마찬가지였는지 엄마의 진통여부와 상관없이 여유롭기 그지 없었습니다. 아이가 커서 유도분만을 해야겠다고 했었고 가진통이 길어지는게 수술할 확률도 무시할수 없단 얘기를 들었지만 스물 네살의 예비 엄마 아빠는 씩씩하게 라면도 두봉지 끓여먹고(도저히 밥먹을 엄두는 나지 않았어요, 관장의 공포;;;;) 짐을 들고 길을 나섰습니다. 무밭의 무 뽑듯이 쑴풍 나을수 있으리라는 자신감과는 달리 저는 4일 열네시간의 진통끝에 수술을 하고 말았답니다. 비참함이 무엇인지 진통하는 내내 느낄수 있었습니다. 사람이란게 그 아픈 와중에도 잠이 오고, 배가 고프고.. 남편에게 밥 먹고 오라는 시어머니가 그렇게 미울수가 없었습니다.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내가 이렇게 아픈데....내가 이렇게 살려달라고 애원하는데.....
결국 아이의 심박동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더는 분만이 진행되지 않고 수술실에 실려간 저는 영문도 모르고 아이를 출산했습니다. 네......이제 모든게 끝났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아아아아악 아파!!!!!!!!!!!!!!!!!!!!!!!!!!!!!!!!!!!!!
이게 뭔가요? ㅠㅠ 마취가 풀린 저는 훗배앓이라고 하는 자궁수축에 울며 불며 몸부림 쳤습니다. 배는 아파서 몸을 돌릴수도 없는데 30초간격으로 배를 쥐어 짜는거 같이 아파 목이 쉬도록 살려달라 애원했지요.
무통주사를 달고 있었는데도 견딜수가 없는 통증이 그 밤이 새도록 저를 훑고 지나갔습니다.
그 통증의 물결이 잠잠해질만 하면 들어와서 자궁수축제를 주사하고 가는 간호사 선생님이 그토록 원망스러울수가 없었네요. 입술은 다 터지고 수술한 상처는 아프고 자궁수축이 올때마다 다시 진통을 하는 그 고통이란;;
이게 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 그 고통만 지나면 난 괜찮을거야....내가 아무리 전생에 지은죄가 하늘에 닿았다고 해도 더는 없을거야...라고 자위했지만 어디 삶이 그리 호락호락한가요 ㅎㅎ
네, 수술한 상처를 감싼 복대를 풀던 순간 온 몸으로 내가 지구에 살고있다는 그 격렬한 중력을 실감하고...
주저앉을수도 없는 그 엄청난 통증은...설상가상이 뭔지 몸소 제게 체험학습 시켜주더라구요.
그렇게 몸을 조금 움직일수가 있게 된건 3일정도가 지나 링거도 좀 빼고...살살 걸어다닐만 해질때였어요.
걸어다닐만 해졌다고 해도 어기적거리며 마치 치질수술한 환자처럼 돌아다니는게 다였지만 온몸에 힘을 주고 아기를 보러갔지요. 본능적으로 수유를 해야함을 어느새 팽팽하게 부푼 젖가슴이 말해주더라구요.
대체 저의 시련이 어디까지였는지 모르겠지만 저희 큰 아이는 직접수유를 거부하는 유두혼동을 몸소 실천하시며 엄마찌찌 거부의사를 명확하게 밝히셨던 자주독립적인 분이셨지요. 결국 보름 유축을 해서 어떻게든 모유를 먹여보려고 했지만 아이가 직접수유를 하지 않으니 모유량은 늘지 않았고 결국 보름을 기하여 이분... 분유값 체험학습에 엄마가 참여하도록 하여 주셨답니다.
이 날이 벌써 14년전인데 저는 아직도 명확하게 제 뇌리에 박혀있는 몇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아마 제가 세상 뜨는 날까지 그 사건은 제 가슴속 어느 한구석에 싸한 슬픔으로 남아있을거 같은데요.
아이를 데리고 퇴원해 시댁에 들어오던 날(저는 몸조리를 시댁에서 했어요ㅜㅜ) 유축하고 있는 저에게
시어머니께서 "니가 애를 편하게 낳아서 니 몸이 애 낳은줄도 모르는가보다. 그러니 젖이 그리 안나오지"
라고 하셨던 말씀입니다. 저희 시어머니 제 몸조리도 정성다해 잘해주셨고 우울증 온 어린 며느리 심심하지
않게 잘 돌봐주셨어요. 악의가 있어 한말은 아니라는거 이젠 압니다. 안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건 아니죠.
그 순간 어린 엄마가 얼마나 작아졌는지... 내가 얼마나 한없이 나쁜엄마만 같았는지...아이에게 못할 짓을 하는것 같아 밤새 얼마나 배게잇을 적셨는지 ㅇㅓ머니는 아직도 모르실 겁니다.
두번째는 어린 아빠의 철없는 농담이었습니다. 니가 배아파서 애 낳았냐는 그말이...나는 마치 고통도 없이 어디 하늘에서 떨어진 아이를 주운양 하는 말 같아 얼마나 서운했는지 몰라요.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무리 생명을 얻는 과정이라해도 뼈 한마디 한마디가 다 물러지는 아픔이 어떤건지 겪지 않은 아빠의 말이 밉고 또 미웠습니다.
세번째는 아이를 안고 친구집에 갔을때 젖병을 물고 있는 우리 아이를 보며 그 집 아빠가 한 말입니다.
"너는 소젖 먹네"... 음....이때는 정말 저 시키가 소 뒷발에 채여볼라는가 싶은게...젖병을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이 솟구치더라구요. 잠재된 인간의 포악성을 확인했달까....
이렇게 수술한 엄마, 또는 분유수유를 하는 엄마에 시선은 그리 곱지 않습니다.
세상 어느 엄마도 고통없이 생명을 얻지 않습니다. 열달 내내 노심초사 조심조심 그렇게 40주를 채우고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려면 엄마도 아이도 그만큼 만남의 대가를 고통으로 치릅니다. 자연분만한 엄마가 선불 고통이라면 수술하는 엄마는 후불고통을 치른다고 이해하시면 쉬울까요? 그 고통의 크기를 누가 더 아프냐고 따지는건 얼마나 의미없는 일인지....그리고 수술한 엄마는 더 오래 수술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야 한답니다.
특히 피부가 예민한 켈로이드 피부인 엄마들은 수술자국도 커지고 흉해지며 흉터에 오는 가려움, 압통등 부수적인 고통도 감수해야 하지요.
그럼에도 사람들은 너무 아무렇지 않게 수술한 엄마가 분만한 아이들은 지능이 낮다느니 엄마 자격이 없다느니 하며 너무 쉽게 상처를 줍니다.
엄마가 되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경이롭고 성스럽기까지 합니다.
엄마는 엄마의 온 힘과 마음을 다해 태어나는 아기를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누가 더 아프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얼마나 더 안전하게 엄마와 아기가 모두 무사히 그 과정을 견디고
이겨내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엄마와 아기가 함께 건강하고 무사히 세상에서 만나야 비로소 이 탄생은
축복이고 행복이지 않을까요?
나머지는 부수적인 문제입니다. 수술을 해야하는 엄마가 스스로의 죄의식에 자연분만을 고집하다 엄마도 아이도 위험에 처한다면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입니다. 또한 굳이 자연분만을 할수 있는데도 수술을 고집할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저는 둘째 아이때 브이백(수술한 산모가 뒤에 자연분만을 하는것) 시도를 원했지만 결국 그마저도 할수 없었습니다. 브이백은 일반 자연분만한 산모와는 달리 수술했던 자리가 아이 분만시의 압력으로 터지기라도 하면
엄마는 자궁을 적출해야하고 그 자리로 아이 머리가 빠지기라도 하면 아이는 사망에서 뇌손상에 이르기까지
위험이 너무 많이 따랐습니다. 그리고 저처럼 양수과다 산모는 더 위험했지요. 파수시의 압력이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수가 없으니까요. 결국 전 아이의 안전이 최고로 고려되어야한다고 생각해서 다시 수술을 선택했어요.
엄마에게 아기의 안전보다 더 우선시 되어야할 것은 없었습니다.
우리 엄마들은 엄마로 충분히 위대하고 아름답습니다.
굳이 편가르기를 해서 의미없는 편가르기에 서로 상처받지 말기로 해요.
그리고 상처주려고 하는 말에 상처받아 내 마음에 다시 내 손으로 생채기를 내는 어리석음도 멈추자구요.
엄마,
고생하셨어요....이리 어여쁜 생명 세상에 태어나게 하시느라...
40주 내내 아기를 뱃속에서 지켜내느라, 모진 고통속에 또 이 고운 생명 세상빛 보이느라..
그리고 오늘까지도...이 세상에서 태산이 되어 우리 아가 키우시느라
우리 엄마들 너무 너무 애쓰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