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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뽕 Apr 19. 2016

소녀, 엄마가 되다.

꽃비가 내리는 마음의 설레임..영원하기를...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습에, 내 마음을 빼앗겨 버렸네 어쩌다 마주친 그대 두눈이 내마음을 사로잡아버렸네"

이 노래 가사처럼 가슴을 설레게 하는 살랑살랑 봄바람이 부는 요즘.. 여기저기 피어난 꽃은 어쩜 그리 어여쁘기도 한지 저마다 색색의 자태를 뽐내며 햇살아래 눈부시기 짝이 없는 요즘입니다.

꼭 풋사랑을 시작한 처녀아이처럼 제 가슴을 설레이게 했던 요즘 대세인 "태양의 후예"도 한 몫을 했지요.  요즘은 티비를 켜도 거리를 걸어도 어쩌면 그렇게 예쁘고 다들 잘 생겼는지, 없던 컴플렉스도 생길 것 같습니다. 학교에 가봐도 그 옛날처럼 코흘리개도 없고, 다들 멀끔하게 입고, 뽀얗게 잘들 생겼더라구요.

결혼을 하고 무언가에 설레어 본 적이 있나 생각했습니다.

스물 네살, 아직은 세상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가 남산만한 배를 해서 웨딩드레스를 입던 날, 서운함에 눈물이 날만도 한 시집가는 날 무에 그리 좋았는지 다시 봐도 결혼사진 속 저는 헤벌쭉입니다. 혼전임신이라는 힘든 시간을 이기고 아기를 지킨 것이 그리도 좋았는지, 아니면 미지의 세계인 유부녀의 길로 가는 것이 설레었는지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이런 딸이 서운해서 엄마도 안울고, 나도 안울고...막내아들 장가보내는게 서운한 시어머니만 연신 눈물을 찍어내는 기 현상이 벌어졌지요^^

그 날 이후, 한번도 제 가슴을 두드린 사람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겨우 스물네살짜리 계집아이가 평생 한 남자만 바라보고 설레인다는게 가당키나 한 얘기였을까요?^^ 회사 창너머로 바람이 살랑살랑 불면 대학때 인기 많던 오빠도 생각나고, 어제 버스안에서 보았던 멀끔한 남자도 생각나고, 티비 속 드라마 주인공을 보며 뜨거운 연애를 꿈꾸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은 어떤 멋진 왕자님이 나타나 불쑥 내 손을 이끌며 함께 도망을 가주지 않을까 이런 망상에 잠겨보기도 했지요. 그저 유부녀라는 "사회적 위치"와 "도덕적 책임감"에 갇혀 실행에 옮기지 못했을 뿐, 마음은 늘 외도상태였달까요?

결혼을 한다고 심장이 죽는것도 아니었고, 결혼을 한다고 해서 굳어버리는 것도 아니죠.

우린 엄마이기 이전에 딸이었고, 그 딸은 자라 소녀가 되었고, 그 소녀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우리 안에 있는 여성성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죠. 하지만 엄마가 되는 순간 우린 마치 처음부터 엄마였던 것처럼 그저 엄마로 살기만을 강요받습니다. 여자로서의 삶을 꿈꾸는 것은 마치 엄마로서의 자질이 없는 것처럼 모성의 상실이니 하며 매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우린 엄마가 되지 못하고 자꾸 차오르는 내 안의 여자를 누르며 "엄마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런 육아가 즐거울리가 없죠.

솔직히 저는 엄마가 된게 행복한 날보다 힘든 날이 훨씬 많았습니다.

지금도 엄마라는 자리가 썩 편치만은 않습니다. 엄마는 아이를 낳으면 거저 얻어지는 자리가 아닌데.. 40주를 뱃속에서 조심조심 행여 불면 꺼질까 한 생명을 지키고, 그 속에서 내 몸이 망가지는걸 살필 틈도 없이 모진 진통끝에 한 생명을 세상에 내어놓고 얻는 귀한 자리인데..정작 아이를 낳아놓으면 아무도 그 고단한 육아의 수고로움을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저 엄마니까 당연히 그 고단함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러다 아이가 아프거나 다치거나 하면 모든것이 엄마의 탓으로 돌아옵니다. 어느 순간 그들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다 말하는 엄마는 책임을 면피하기 위한 핑계거리와 비난의 과녁으로 전락합니다.

우리 엄마들은 어느 순간 엄마가 되지 못하고 엄마 역할을 하게 됩니다. 내 것 아닌 옷을 입은 것 같은 불편함과 내 아이를 향해 그런 마음을 가지는 내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죄책감이 뒤엉켜 내게 어울리지도 않는 무대에서 우스꽝스러운 광대놀음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러다보니 육아는 자꾸 마음의 짐이 되고 그저 고되고 마음이 무거운 날들이 된다고 말하는 엄마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더이상 예쁘게 차려입지 못하고 날이 가는지 달이 가는지도 모르게 목늘어난 티셔츠에 풀풀 나는 젖냄새, 질끈 묶어 올린 머리며 푸석푸석한 얼굴.. 그래도 한때는 어디가도 빠지지 않는 콧대높은 아가씨였는데, 이런 스스로에 자신도 놀랄 지경입니다.

그래요, 우린 엄마가 되어도 "여자"인 것을요. 여자이기만 한가요? 친구들을 만나면 까르르 웃음이 터지고 맛있는것 먹는것도 좋고, 흐드러지는 꽃비에 마음이 샤랄라~ 해지는 소녀이지요.  그 모든것을 부정하지 마세요. 그저 처음부터 엄마였던 사람들이 아니예요. 나라는 사람안에 소녀인, 여자인, 엄마인 내가 있는 것이지요.

그 어떤 것이든 나예요.

너무나 어여쁘고 귀하고 사랑받아 마땅한 나일 뿐이예요. 어떤 나라서 내가 아니라 어떤 모습이라도 나인거예요. 오히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마음도 같이 늙는게 문제지, 마음이 뛰고 뜨겁고 설렌다는건, 아직 충분히 우리의 여성성이 살아있는 거 아니겠어요? 나이를 먹으며 지킬건 동안이 아니라 동심이라고 어느 강의에서 들었어요. 꽃이 어여쁘고, 누군가에게 가슴이 뛰고, 아직은 무언가에 가슴이 뜨거워 진다는 건 우리안의 동심이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때론 이 뜨거운 열정이 엄마를 아프게 할지도 모릅니다. 당장 갈수 없는 길이 너무 멀게만 느껴져 힘이 들고 눈물이 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잘못된 것도 엄마의 자격이 없는 것도 아니니 아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브런치 독자분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서 이게 무슨일인가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정말 녹록치 않은 현실에 아파하고 계신가 싶어 마음도 아립니다. 자주 글을 올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도 있고 우리 엄마들에게 제가 이런 어줍잖은 이야기들을 풀어놓을 자격이 있나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오셔서 힘들고 고단한 마음, 친구집에 풀어놓고 오신다는 기분으로 오셔서 글도 읽으시고 소통도 하시면 좋겠네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서 막막했던 엄마되기... 오늘도 저 역시 막막하고 두렵지만 저도 여러분께 너무 많은 위안을 얻는답니다.  그 따뜻한 위로 너무 감사드리며 여러분 마음에 나리는 꽃비같은 설레임 영원하시라고 저도 여러분께 응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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