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고 있구나
<타이틀 사진 : 영화 선생님 좋아해도 될까요 캡쳐>
"엄마, 이거봐!! 이거봐!!"
"뭐야??"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 처럼 호들갑을 떨며 오는 딸아이의 핸드폰에는 참 이쁘게도 레터링 된 생일케익이 하나 있었습니다. 보아하니 담임선생님 생일케익 같았어요.
"이게 뭐야, 이런거 해도 돼?"
하도 김영란 법이다 뭐다 해서 학교선생님 커피 한잔 사드릴수가 없는 요즘 공연히 아이들이 선생님을 곤란하게 해드린건 아닌가 싶어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괜찮아, 우리 다 같이 나눠먹었어"
아이고 선생님 어디가서 자랑도 못하셨구나..
여고생이 된 녀석들이 삼삼오오 용돈을 모아 사랑하는 선생님께 사랑스런 소녀들의 마음을 전했나 봅니다.
생일축하 노래도 불러주고 선생님께 카톡 프사도 이걸로 바꾸라고 종용했다며, 들뜬 목소리로 재잘재잘 수다 보따리를 풀어놓습니다.
그런 딸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 문득 열여섯 첫사랑.. 아니 첫 짝사랑이 떠올랐습니다.
전학가서 친구도 없고 사람설고 말도 설던 저에게 다가온 첫사랑은 저희 국어선생님이셨어요.
열여섯의 여중생에게 스물일곱의 총각선생님, 그도 국어선생님이라는 위치는 로망의 대상이 되기 충분했습니다. 정경이 유난히도 예뻤던 교정에서 대구 의성 사투리 찌~~~인한 국어선생님이 읽어주시는 시는 소녀의 가슴을 울리기 충분했지요.
선생님 수업시간이 되기전에, 빗을 것도 없는 짧은 단발머리를 물 묻혀가며 곱게 몇번이나 빗고, 교복을 단정하게 고쳐입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삼삼오오 모여 선생님의 점심 산책길 뒤를 쫓다가 선생님이 이름을 불러주시면 까르르 웃음이 터지곤 했지요.
이름이 불린 친구는 복사꽃같이 얼굴이 빨개져서 어쩔줄을 모르고, 이름이 불리지 않은 친구들은 시샘어린 고운 눈길을 흘기곤 했습니다. 선생님을 놀리며 총각선생님을 당황하게 하기도 했지요.
그해 여름, 왜 나는 선생님에게 여자일수가 없을까 하며 밤을 새며 울기도 했습니다.
당황스러우셨을텐데도 선생님은 노련하게 마음을 다독여주시며 자연스럽게 상황을 넘기셨지만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아이의 짝사랑을 보며 그 날이 떠올랐습니다.
선생님을 유독 따르던 저에게 대학생이 되면 선생님 생각도 안날거라던 선생님께서는 저의 지독한 사춘기가 끝날때까지 제가 보낸 편지에 답장도 해주시고, 여전히 너를 믿는다라며 저를 다독여 주시고 제 마음을 지탱해주셨습니다. 지금은 교무회의에서 남선생님들께 필요이상 여학생과 가까이 하지말라고 주의를 주시기까지 한다지만 그때는 그저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저마다 힘든 사춘기를 지탱해줄때라 그런지 저희에게는 오빠인듯 아빠인듯 선생님이 그저 좋기만 한 존재였습니다.
시간이 이렇게 흘러 그때의 저보다 나이를 한살 더 먹은 딸의 청춘을 보니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그 고운빛은 그 자리에 머물고 있습니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딸아이는 설레임이 가득한 얼굴로 여전히 선생님 생일축하의 에피소드를 풀어놓습니다.
"선생님이 좋아?"
"엄마, 우리 선생님 너무 잘 생기지 않았어?"
"선생님 어디가 그렇게 좋아?"
"그냥 좋아"
헤헤 웃음을 깨문 청춘이 너무 예뻐서 왈칵 눈물이 납니다.
저리도 고운 모습이었으니 그때의 선생님 눈에도 우리는 그저 곱기만 한 꼬맹이들이었겠네요.
이제야 수수께끼가 풀렸습니다.
그 여름 저는 왜 선생님께 여자일수 없어요? 하고 울며 되바라진 질문을 했던 맹랑한 꼬마를 왜 선생님이
그저 웃으시며 머리를 쓰다듬었는지...
저리 고운 청춘을 마음에 품은 열여섯 꼬마가 어떻게 여자일수가 있었겠어요 ㅎㅎ
분홍빛 짝사랑의 고민이 한동안 계속될 듯 보이지만 언젠가 우리 딸아이도 자기 딸에게 이런 시간을 느낄 날이 오겠죠?
그날이 오면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날의 너는 복사꽃보다 곱고 어여쁜 청춘이었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