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트의 동티모르 시절 이야기]
앞으로 전개될 모든 이야기들은 제 핸드폰 or 드라이브에 담긴 사진의 순서대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처음 동티모르로 떠났던 게 2016년이니 기억들이 많이 미화됐을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지난 사진들을 보고 당시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걸 보니 여전히 저한테는 특별한 기억들인가 봐요.
앞으로 전할 이야기들도 재밌게 봐주세요:-)
2016.03.05.-06.
드디어 동티모르에 와서 맞는 첫 번째 주말. 주중에 사건도 겪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랴, 일 배우랴 정신없는 평일을 보내고 맞는 주말이라 여전히 정신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도 첫 주말이니 여유롭게 주말 아침을 맞고 싶어서, 동네 산책을 나갔더니 신기한 모양의 건물*이 있었다. 그저 모든 게 신기했던 동티모르 1주일차 박현태는 요리 보고 저리 보고 빙글빙글 돌아가며 구경했던 거 같다. [*Uma adat : 우마 아닷 - 동티모르 전통 집, 각 지역마다 다른 형태를 띠고 있어요. 우리나라로 치면 전통 양식으로 지어진 초가집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거 같아요. 해당 형태는 로스팔로스 지역의 양식이에요. 실제로 시골 마을로 들어가면 우마 아닷에 사람이 살기도 해요.]
그동안 본 적 없던 상대적으로 피부가 하얀 아시아인 남자애가 돌아다니니 사람들이 쑥덕대기 시작했다. 할 줄 아는 말이 별로 없어서 Bondia(아침 인사)만 열심히 하면서 다녔다. 먼저 인사를 하니 테툼어를 할 줄 안다고 생각하셨는지 말을 걸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할 줄 아는 테툼어가 얼마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알아듣지도 못하고 할 말도 없었다.. 쭈굴이 모드로 Deskulpa(죄송합니다.)를 외치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후 좁디좁은 방에서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거실에 나와있는데, 멍구가 쉬고 있었다. 멍구는 I 간사님이 2년 전 처음 동티모르에 왔을 때 입양해온 친구로 햇빛 아래 있을 때 황금빛이 나는 치즈냥이었다.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부터 I 간사님이 신신당부하셨던게 있는데, 멍구를 절대 만지지 말라고 하셨다. 성격이 뭐 같다나...
어릴 때부터 강아지를 오래 키웠던 나는, 고양이는 한 번도 키워본 적도 없을 뿐더러 사람 손에 키워지는 고양이는 본 적도 없어서 간사님 말대로 만지지 말아야겠다 생각했다.
멍구를 못 본 척하고 짐 정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한테 와서 박치기를 시전하는 게 아닌가? 계속 모른 척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친해지고 싶다는 시그널이라 생각하고 간사님의 충고를 뒤로하고 만져보기로 했다.
'어라..? 분명히 성격이 뭐 같아서 물 수도 있다고 했는데...?'
순순히 머리도 내주고, 등도 내주고, 심지어 벌러덩까지 하길래 어찌할 줄 모르고 그냥 계속 만져줬더니, '그르렁그르렁' 하길래 강아지만 아는 나로서는 으르령 대는 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기분 좋을 때 내는 소리였다.
'뭐야, 너 착한 친구였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I 간사님이 그 장면을 보시고는 놀란 눈으로 쳐다보셨다. "얘가 이러는 애가 아닌데 왜 이러지...?"
I 간사님은 멍구를 거의 주인님처럼 모시면서 키웠는데, 그럼 나 사실상 주인님한테 식구로 인정받은 건가...? 왠지 모를 뿌듯함이 들었다. 그날부터 멍구는 도마뱀(최애 간식)을 먹고 싶을 때마다 나를 찾아와 천장에 붙은 도마뱀을 바라보며 '야옹!'을 외쳐댔다. 그럼 나는 뭐에 홀린 듯 빗자루를 들고 천장에 붙은 도마뱀을 멍구 앞에 떨어트려줬다.
이렇게 나는 멍구에게 식구로 받아들여졌고, 이 친구와의 긴 인연이 시작되었다.
'새 식구로 받아들여진다는 기분이 이런 기분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