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트의 동티모르 시절 이야기]
앞으로 전개될 모든 이야기들은 제 핸드폰 or 드라이브에 담긴 사진의 순서대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처음 동티모르로 떠났던 게 2016년이니 기억들이 많이 미화됐을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지난 사진들을 보고 당시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걸 보니 여전히 저한테는 특별한 기억들인가 봐요.
앞으로 전할 이야기들도 재밌게 봐주세요:-)
2016.03.17. - 18.
출근길 늘 설레는 마음으로 사무실에 나갔다. 이유는 단순하다. Green Boy라 초록색을 좋아하는데, 사방이 초록 초록한 풍경이 늘 아침을 기분 좋게 해줬다. 이때도 어김없이 초록 초록한 풀숲을 지나 사무실을 걸어갔던 기억이 남아있다.
I 간사님과 늘 같이 출퇴근을 했었는데, I 간사님은 1년 9개월 정도 이곳에 있었고 3개월 밖에 귀국이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종종 연락하고 만나고 있지만, 처음 로스팔로스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준 좋은 선배였다.
지난 번에 언급한 적이 있지만 저를 제외하고는 함께 계시던 분들 모두 여성분들 뿐이었어요. I 간사님은 늘 출근 때마다 키만 한 작대기를 가지고 다니셨는데, 궁금해서 여쭤봤더니 주인 없는 개들도 많고 외국인이어서 처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들이 너무 많아서 습관처럼 가지고 다니게 되셨다고 하셨어요.
동티모르에 오자마자 겪은 몇몇 사건들을 생각해 보니 그동안 계셨던 분들이 참 어려운 환경 속에 놓여있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별 도움은 안 될지라도 함께 출퇴근도 하고 시장도 같이 다니다 보니, 어느 순간 작대기를 놓고 다니시길래 찍어 봤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I 간사님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한 요리를 자주 해주셨는데, 내 입맛에는 엄청 잘 맞아서 몇몇 요리들은 배워서 나중에도 혼자 해먹기도 했었다. 특히 수제 피자가 최고였는데, 특별할 거 없고 그냥 밀가루 반죽을 넓게 펴서 그 위에 이것저것 올려서 오븐에 굽는 게 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남는다는 건 참 먹을 게 없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날도 아마 퇴근하고 간사님이 치킨을 해주셨던 거 같다.(자취 인생 n일차였기 때문에 내가 했을 리는 없다...) 퇴근길에 집 앞 슈퍼에 들러서 냉동 닭 한 마리와 식용유 한통 사서 튀겨주셨었다. 로스팔로스에 안정적으로 수급되는 단백질이 냉동 닭, 참치캔 정도가 다였는데, 이 시기를 거치며 닭 손질 장인이 되었다.
사진에는 남아있지 않지만, 2주~한 달에 한 번씩 금요일마다 '무비나잇'을 정해서 영화보면서 일주일을 마무리 했었다. 이날이 금요일이고, 저녁 메뉴가 치킨이었던 걸로 보아 분명히 이 날은 영화와 함께하는 밤이었을 거 같다.
내가 로스팔로스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면 내가 좋아하던 초록 초록한 자연과 함께 있던 분들의 배려 때문이 아니었을까.
다시 한번 Obrigadu Barak!
EP.7 마치며
에피소드를 작성하면서 늘 아쉬운 마음이 들어요. 제 머릿속에는 모든 기억들이 하나하나 다 남아있는데 정작 사진첩에는 사진들이 별로 없는걸 보면, 그때의 박현태는 '일상을 기록하는 것에 상당히 소극적이었구나' 하는 마음이 드네요.
많이 부족하지만, 얼마 없는 사진과 제가 오랫동안 써온 캘린더를 바탕으로 기억을 더듬어가며 이야기들을 잘 풀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