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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헌낫현 Dec 23. 2020

사랑과 소유욕의 경계

톰 티크베어 감독의 영화 《향수(2007)》

 *스포일러가 걱정된다면 영화 감상 후 글을 읽어주세요.


재생 후 PIP 모드로 음악을 들으며 읽으실 수 있습니다. YouTube Luciana da Silva Mendes, Perfume: The Story of a Murderer

이 영화는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원작 소설을 잘 재현했다. 엄청난 후각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그르누이. 그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향수 제조 방법을 배운다. 향기에 대한 괴상한 집착 때문에 살인까지 저지른다. 스스로 만들어낸 향수의 수가 늘어날수록, 마을의 공포는 넓게 퍼졌다. 그르누이는 결국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는 형 집행 순간에 자신이 제조한 향수로 스스로를 구한다.


향기에 집착하고, 살인하며, 자기 자신까지 죽이는 선택을 하는 그르누이


원작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영화는 책에서 묘사한 내용을 눈 앞에 보여주듯이 연출했다. 일부 각색되고 생략된 부분이 있어서 영화는 지루하지 않았다. 책과 영화는 모두 그르누이의 생애를 보여주는데, 표현은 비슷했으나 느낌은 달랐다. 책에서는 그르누이라는 존재가 매우 괴상하고, 능력적인 면에서 비범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향기에 대해 집착하고, 소녀들을 살해하며, 종국에는 자기 자신까지 죽이는 선택을 하는 그르누이가 무섭게 느껴진다.


향수는 사랑받았지만,
그는 사랑하지도 사랑받지도 못했다.
The Perfume was loved, but he could neither love nor be loved by anyone.


영화를 볼 때는 달랐다. 광장에서 사람들이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보며 눈물 흘리는 그르누이의 모습에서 슬픔을 느꼈다. 불쌍한 존재로 그려진다.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 그런 존재가 마음속 빈 공간을 특정 대상을 탐닉하며 채우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과 닮아있을 것이다. 엄청난 후각으로 사형에서까지 스스로를 구한 그르누이는 이렇게 삶의 허무함을 느끼게 되고, 죽음을 택한다.

사랑의 이유를 찾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르누이는 향기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수차례의 살인을 저지른다. 이 과정에서는 대상에 대한 소유욕이 잘 드러나있다.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욕망. 그 욕망이 그르누이를 이끌었다. 어쩌면 이러한 욕망에 지배받을 수 있는 건 그르누이뿐만이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왜곡된 욕망에 사로잡힐 수 있다. 그래서 사랑의 이유를 찾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이 사람에게도 적용되는 순간 끔찍한 사건들을 만들어냈다.

이유 있는 사랑은 대상을 조각낸다. 그리고 그렇게 분리해서 생각하는 건 사랑하는 대상의 생명력을 앗아간다. 이건 향수를 제조하는 과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르누이는 향수 제조공장에서 일하면서 "꽃은 향기를 간직하도록 천천히 말려 죽여야 한다."라는 말을 듣는다. 그르누이는 이런 과정에 소질이 있었다. 이것이 사람에게도 적용되는 순간 끔찍한 사건들을 만들어냈다.

전부가 아닌 부분을 사랑하는 것.
사랑과 소유욕의 경계는 이곳에 있다.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사랑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사형에서 스스로를 구한 그르누이. 향수 때문에 모든 이들이 그르누이를 찬양하게 된다는 설정은 비현실적이다. 이를 통해 책과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무엇일까. 무언가를 바라보며 소유하려는 욕망을 가진 인간. 이성적이지 않은 선택을 하며 허영심을 채우거나, 공포와 두려움에 맞서는 인간.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사랑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르누이는 눈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그르누이는 사랑하는 방법도, 사랑받는 방법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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