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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헌낫현 Dec 31. 2020

마셜타운의 그녀

에이슬링 월시 감독의 《내 사랑(2017)》

 *스포일러가 걱정된다면 영화 감상 후 글을 읽어주세요.

Dear Darling (Maudie My Love OST), Mary Margaret O’Hara

12월 31일이다. 올해는 예상치 못한 일로 많은 걸 잃었고, 우울에 시달리기도 했다. 가장 신날 것 같은 해였는데...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올해가 모두 지워진 것 같아도 분명 아름다운 순간들은 있었다. 이전과는 다르게 조금 조용히, 잔잔하게 찾아왔을 뿐이다. 그 순간들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 추천으로 넷플릭스​에서 이 생각에 딱 맞는 영화를 봤다.

영화는 모드 다울리(샐리 호킨스 분)라는 한 여성의 삶을 그리고 있다. 그녀는 장애가 있다. 부모님을 여의고 힘든 생활을 했다. 모드는 에버렛 (에단 호크 분) 적어놓은 가정부 구인광고를 보고 그의 집을 찾아간다. 초반에 에버렛의 난폭한 성격으로 고통받는 그녀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영화는 그 그림으로 인해 팍팍한 모드의 삶과 칙칙한 에버렛의 삶이 아름다워지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에버렛에게 폭력을 당한 뒤 모드가 가장 먼저 손에 집은 것은 페인트통이다. 민트색의 페인트로 벽을 칠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그림을 구매하겠다는 샌드라라는 여성을 통해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게 된다. 칙칙했던 공간은 색색깔의 그림으로 채워지고, 척박했던 모드와 에버렛의 관계에도 사랑이 피어난다. 장애를 극복해 주변을 아름답게 바꿔내는 그녀의 모습을 샐리 호킨스는 섬세하게 표현했다.

비포 트릴로지(Before Trilogy)에서 에단 호크는 한없이 로맨틱한 남성이었다면, 이 영화에서는 폭력적이고 거친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시작 후 1시간 15분이 되어서야 처음 미소를 보일 정도다. 그는 모드를 통해 삶이 달라지는 경험을 한다. 모드가 방충망을 달아달라고 하자 바로 거절하지만, 어느새 문을 떼어내고 있는 그의 모습처럼 까칠하지만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당신의 시선을 보고 싶어요”

샌드라가 모드에게 건넨 말이다. 모드의 시선은 자신뿐만 아니라 에버렛의 삶까지 아름답게 바꾸어놓았다. 결국 결혼하는 두 사람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된다. 모드의 삶에는 비극적인 요소가 많다. 선천적인 장애, 일찍 세상을 떠나신 부모님, 돈을 지나치게 밝히는 오빠 찰스. 그러나 모드는 아름다운 삶을 끝내 만들어냈다. 그녀에게는 자신과 주변 환경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던 것이다.

마셜타운(Marshalltown) 자택 앞에서 그림을 들고 서있는 모드 루이스. Art Gallery of Nova Scotia Halifax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캐나다 유명 화가인 모드 루이스(Maud Lewis)의 이야기다. 물감을 섞어 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목재판, 벽, 문 등 다양한 소재 위에 그림을 그렸다. 그녀의 그림은 미국 닉슨 대통령이 구매할 정도로 유명세를 얻었다. 1970년 폐렴으로 사망할 때까지 그녀의 시각을 담아낸 아기자기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모드 루이스가 그린 실제 그림. Art Gallery of Nova Scotia
“나는 왜 당신을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에버렛)
“난 사랑받았어. 난 사랑받았어 에버렛.”(모드)
“끝내 행복을 찾은 건 우리 집안에 너뿐이구나.”(모드의 숙모)

2020년은 정신 차리고 보면 끝나 있는 연극 같았다. 모드가 떠나간 자리에는 모드의 아름다운 흔적들이 너무나 많이 남아있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집을 팔아버린 오빠, 딸을 다른 집에 보내버린 숙모. 그녀를 부족한 사람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결국 행복한 삶에 도달한 것은 모드뿐이었다. 아름다운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만들어내는 2021년을 살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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