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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헌낫현 Mar 14. 2021

미나리, 가족을 보여준 위태로움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

영화 감상 후 가볍게 읽어주세요 :)


서로를 구한 건 돈이었을까.


미국에 온 가족의 이야기다. 그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꾼다. 우여곡절 끝에 삶의 터전을 갖춘다. 그 터전은 금세 무너진다. 서로의 의미를 확인한다. 여기서 보편적인 가족의 모습을 발견한다. 제이콥(스티븐 연 분)은 아버지다. 사업 성공을 위해 노력한다. 모니카(한예리 분)는 어머니다. 둘은 아들 데이빗(앨런 김 분), 딸 앤(노엘 조 분)과 함께 미국에 왔다.


제이콥은 사업성공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데이빗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굴뚝이 무엇인지 묻는다. 제이콥은 수컷 병아리를 폐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들에게 조언한다. 쓸모없는 수컷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외할머니 순자(윤여정 분)가 데이빗에게 말한다. “pretty boy” 데이빗은 화를 낸다. “I’m not pretty. I’m good-looking!”


데이빗은 순자가 할머니 같지 않다고 말한다. 순자는 요리를 못한다. 쿠키를 굽지 못한다. 십일조를 훔친다. 화투를 즐긴다. 여느 할머니와는 다르다. 데이빗에게 용기를 불어넣은 사람은 이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다. 데이빗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순자는 데이빗을 끌어안으며 말한다. “내 손자 내가 죽게 놔두지 않아.” “누가 감히 내 손자를 겁먹게 해.”


서로의 의미를 확인한다. 결정적인 계기는 쓸모있는 수컷도, 할머니 같은 할머니도 아니었다. 바로 위기였다. 순자의 실수로 창고가 불에 탄다. 거기 제이콥이 열심히 일군 작물들이 있었다. 부부는 작물을 옮기려고 한다. 이내 포기하고 서로를 끌어안는다. 순자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집 반대편으로 걷는다. 데이빗과 앤은 순자를 부른다. “할머니 함께 집에 가요.”


제이콥이 키우는 작물은 자본을 상징한다. 수돗물까지 끌어와 키워야 한다. 순자가 숲 속에 심은 미나리는 일상을 상징한다. 보편적이고 잔잔한 삶이다. 작물은 타버렸다. 미나리는 숲에서 잘 자란다. 제이콥은 마지막 장면에서 미나리를 캔다. 아들과 함께 있다. 제이콥의 삶에 대한 태도는 달라진 듯하다. 작물에서 미나리로의 전환이다. 이것은 삶의 단면을 보여준다.


아쉬운 영화다. 밋밋하다. 사무치는 감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루가 지나서야 의미가 와 닿았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명확하다. 가족은 어느 역할 속에서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 위기가 찾아올 때는 존재 자체로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 글을 쓰는데 한 장면이 생각났다. 제이콥과 모니카가 미국에 오기 전 한 약속이다. “서로를 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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