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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헌낫현 Mar 16. 2021

누군가 나에게 일상을 묻는다면

남궁인, 『제법 안온한 날들』

내가 보냈거나 지금 보내고 있는 
아름다운 순간에 대해 
최대한 자세하고도 치밀하게 기술할 .

남궁인은 의사다. 이 책에 응급실 이야기 외에도 다양한 이야기가 담겼다. 그의 생활이 놀랍다. 그는 읽는다. 운동도 한다. 글 쓴다. 여행을 간다. 치밀하게 기술한다. 문장에 진솔함이 담겼다. 그는 행복을 찾는 방법을 알고 있다. 존재하는 위치와 시간과 관계없이 말이다. 그건 생활 속에서 이어지는 기록이다. 그는 새로운 경험과 기록을 반복한다.


그는 한 강의를 회상한다. 교수는 국제표준 질병분류표를 소개했다. 모든 의사는 그것에 따라 진단명을 결정한다. 교통사고와 같은 진단명은 익숙하다. ‘이성에게 버림받음’과 같은 낯선 것들도 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진단명은 무엇일까요?” 교수가 물었다. 학생들은 틀린 답을 말했다. 교수는 정답을 말했다. “Extreme Poverty.” 


장티푸스 메리는 무증상 보균자다. 분변에서 장티푸스균이 나왔다. 그로 인해 섬에 평생 갇혔다. 외롭게 살다가 죽었다. 23년이란 시간이다. 그뒤에 발견된 무증상 보균자들은 섬에 갇히지 않았다. 저자는 비합리적 공포와 손가락질, 편견의 프레임을 지적한다. 코로나 시대에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이다. 비난은 우리는 구하는가. 마음마저 멀어지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한 할아버지 이야기가 슬펐다. 할머니가 응급실에 왔다. 의사는 심각하지 않다고 했다. 그 순간 할머니가 쓰러졌다. 죽음까지는 너무 짧았다. 할아버지는 마지막 말을 건넸다. 오열했다. 저자는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사랑은 치명적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게 되는 순간이 온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진솔한 이야기는 가깝게 느껴졌다. 삶에 관한 이야기는 정겹다. 오늘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사회에 관한 이야기는 일종의 정의감을 깨닫게 한다. 그의 시선을 엿볼 수 있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눈물을 흘리게 했다. 안타깝지만 현실적이다. 이 모든 것은 기록으로 남았다. 삶에서 죽음까지. 작은 조각들을 모았다. 그래서 가깝다.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처럼.


삶이 힘들 때가 있다. 무엇을 위해 이 길을 걷고 있나. 의문이 든다. 지켜내야 할 시간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목표를 이루었을 때 짜릿했다. 그러나 그 순간은 짧았다. 꽤 오래가는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따로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일상을 묻는다면 대답할 수 있다. 그것은 인고 끝에 얻어내는 짧은 환희가 아니다. 가끔 찾아오는 제법 안온한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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