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베네치아

남수단 파병군인의 코로나 이전 마지막 이탈리아 여행기

by 헌낫현
순간을 붙잡아 둘 순 없잖니.


밤의 베네치아는 고요했다. 엄마는 내게 클래식 공연을 보여주셨다. 「윌리엄 텔 서곡」이 흘러나왔다. 오랜만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처음이었다. 레스토랑에 갔다. 엄마는 무심한 듯 메뉴를 시켰다. 나는 축하받았다. 그때 나는 감정을 느꼈다. 생일을 이렇게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었다. 나는 다시 경험하기 힘든 순간을 지나고 있었다.

생일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 생각한다. 어릴 적엔 친구들과 함께했다. 시간이 지나며 함께하는 이들의 수는 줄었다. 그들은 어느새 휴대전화 스크린 안에서만 볼 수 있었다. 물리적인 한계도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생일을 보낸다는 것. 그건 생일에 함께하는 사람이 한 명으로 줄었음을 깨닫는 과정이었다. 베네치아는 그만큼 소중한 기억이다.

베네치아는 여행의 이유였다.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은 나를 불렀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보통 실망하기 마련이다. 기대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이 지나치게 많기도 하고, 풍경은 보정으로 탄생한 경우도 있다. 베네치아는 그렇지 않았다. 동일하게 아름다웠다. 상상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햇볕이 따뜻한 그곳을 거닐면서 생각했다. 얼마 남지 않았구나.


마지막. 나는 느리게 깨달았다. 며칠 뒤 돌아가야 한다. 모두 같은 속도로 지나갔다. 그러나 마지막이 가까워질수록 온몸으로, 온 정신을 투자해 그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순간을 붙잡아 둘 순 없잖니. ... 하지만 지나고 나서야 깨닫지. 막상 그 순간에는 깨달을 수가 없어.” 영화 《토니 에드만》의 대사다. 순간을 붙잡아둘 수는 없다는 것. 나는 이 문장을 그곳에서 경험하고 있었다.

부라노섬에 갔다. 다채로운 색깔의 벽이 보였다. 우연히 만난 외국 관광객 한 분이 내게 물었다. “벽 색깔이 왜 다른지 알아요?” “잘 모르겠는데요.” “옛날에 어부들이 길을 자주 잃었대요. 짙은 안개 때문에 집을 찾을 수 없었던 거죠. 안갯속에서도 자신의 집을 찾기 위해 색을 칠한 것이랍니다.” 흥미로웠다. 함께 걷던 그분과 대화를 나누고 곧 헤어졌다.


여행지에는 삶의 방식이 담겨있다. 살아가는 방식은 낯선 장소에서 이어진다. 이건 여행지 어디에나 사소하게 스며있다. 일상을 멈춘다. 다른 장소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본다. 그곳에 남은 흔적들은 기억이 된다. 베네치아를 생각하면 생일과 색색의 벽이 떠오른다. 다시 그곳을 여행하는 건 오랜 시간 뒤에야 가능하다. 어떤 흔적이 남을까. 그때를 어떤 시간으로 기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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