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를 찾아서-2

남수단 파병군인의 코로나 이전 마지막 이탈리아 여행기

by 헌낫현
엄마 때문이 아니라 엄마 덕분이었다.


기차 출발 시각은 다가왔다. 구겨진 번호표는 쓸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진료는 받지 못했다. 밀라노역으로 향하는 길은 어두웠다. 걱정은 진단명을 받지 못했다. 로마행 기차까지 따라왔다. 맡겼던 짐을 찾았다. 내 두 손은 다시 무거워졌다. 내 마음보다는 가볍게 느껴졌다. 기차에 몸을 맡겼다. 잠이 들었다. 수도 로마의 치과는 낫겠지 생각하며.


엄마와 나는 기차 시각을 한번 미뤘다. 엄마가 밀라노에서 가장 가고 싶었던 장소를 즐기는 것. 그것이 로마에 일찍 도착하는 것보다 더 중요했다. 한 번 더 미루는 건 불가능했다. 밀라노에서 치과 진료를 받지 못한 이유다. 창밖의 밤은 새까맣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친 몸을 물과 쿠키로 달랬다. 기차 안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흩어지고 있었다.


로마에 도착했다. 짐을 풀었다. 바로 치과로 향했다. 증상을 설명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갑자기 잇몸이 붓기 시작했다며. 진료가 시작됐다. 잇몸 안에 고름이 차 있다. 주사기로 고름을 빼내야 한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자세한 진료는 한국에서 해야 할 것이다. 치료가 시작됐다. 그건 응급처치에 가까웠다. 나와 엄마는 치과에 있었다.


치과는 의외의 곳에 있었다. 작은 아파트의 한 층에 위치했다. 한국 치과와는 달랐다. 근처에 도착해서도 헷갈렸다. 이런 곳에 치과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치료는 짧았다. 주사기 바늘이 잇몸에 들어갔다. 찰나의 고통이 느껴졌다. 처방전을 받았다. 약국에서 약을 받았다. 호텔로 향했다. 날씨는 다소 흐렸다. 부기가 얼른 가라앉았으면 좋겠다. 말없이 생각했다.


엄마는 미안하다고 했다. 당신 때문에 소중한 여행 시간을 날렸다고. 엄마는 좋은 여행을 원했다. 예약도, 계획도 직접 하셨다. 미안해할 사람은 나인데도, 엄마가 미안해하고 있었다. 엄마와 나 사이 애착 관계가 뜨겁게 살아있다는 걸 느낀 건 엄마 때문이 아니라 엄마 덕분이었다. 머릿속을 걱정이 휘저을 때, 눈시울이 붉어질 때도, 치과에서 증상을 설명할 때도.


우리 집은 교육관이 확고했다. 방임주의를 바탕으로 했다. 감정표현이 자주 오고 가지 않았다. 잊고 있었다. 잊었던 애착은 타지에서 다시 살아났다. 누군가의 고통이 나와 동일하게 느껴진다는 것. 흔치 않은 일이었다. 이 여행이 좋은 여행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흔치 않은 여행이었음은 분명하다. 부기는 금방 가라앉았다. 여행의 마지막 날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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