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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수민 Oct 30. 2022

24.

- 읽으며 들으면 좋은 플레이리스트 : 모든 이의 삶이 한 편의 영화같더라.https://youtu.be/NpfXGCIYgl8



대학교 신입생 때, 학과 동기생 중 한 명이 죽었고 우리는 다 같이 장례식에 참석했었다. 모두가 울고 있는 가운데 갑자기 웃음소리가 들렸다. 내 웃음소리였다. 사람들은 나를 보며 이상하다며 수근거렸다. 이런 상황이 낯설진 않았지만 어지간해서는 익숙해지지 않는구나 하며 손으로 주체되지 않는 웃음을 누르려 입을 틀어막으며 뒷문을 향해 걸어갔다.

이런 때면 나는 내게서 동떨어져 멀리서 나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웃고 있는 건 나이면서 내가 아니었다. 고질적인 병증이었다. 오늘 만큼은 잠잠해 있길 바랐는데. 갖가지 자책들이 발밑부터 서서히 올라오며 아래로 몸을 잡아 끄는 듯했다. 문이 너무 멀리 있어 보였다.


불현듯 나는 걸음을 멈추고 재빠르게 뒤를 돌아봤다. 내 시선이 미치는 끝자락에 죽은 동기의 동생이 검은색 상복 차림으로 무릎에 고개를 파묻고 소리없이 흐느끼고 있었다. 결아. 결이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무릎을 감싸고 있는 아이의 어깨 한 쪽에 채워져 있는 검은색 줄이 두어개 그어진 연노란 완장을 봤다. 순간 내게서 더 큰 웃음이 터져나왔다. 머리 안에서 끊이지 않는 비명이 울렸다. 세상이 잔인했다. 주위 사람들의 수근거림 같은 건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이 자리를 나서주는 게 동기와 동기의 동생을 돕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웃음이 멎었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등허리에서 통증이 일 정도로 꼿꼿하게 몸을 펴고 뒷문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그 사이사이 귓가로 미친 거 아니냐는 사람들의 말이 들려왔지만, 죽은 동기는 이해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건 가시 돋힌 말들로부터 나를 지켰다. 왜 죽어서까지 나를 지키려 하는지, 나는  너를 지키지 못했는데.


소리없이 빠른 걸음으로 뒷문을 빠져 나왔다. 어느새 늦은 밤으로 접어든 시각의 복도에는 사람이 거의 나와있지 않았다. 복도에는 칠해진지 얼마되지 않았는지 시멘트 냄새가 자욱했다. 밖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현관문 쪽으로 다가가 비가 내리는 걸 멍하니 바라 보다가, 비에 젖은 낙엽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에 시선이 맺혔다. 그 모습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나는 또 다시 웃고 말았다. 웃고 싶지 않았다.

네가 틀렸다, 율아. 세상은 불공평해. 아니 부당해. 그렇지 않고선 너를 데려갈 순 없었다.

죽음 앞에 적기란 없지만 이렇게 죽기엔 율은 너무도 잘 살아내려 노력하던 아이였고, 차라리 누군가를 데려가야 했다면 나를 데려가야 하는 게 맞았다. 숨 쉬듯 틈만 나면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던 나를 율이는 매번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살아내야 한다고 말하며 기어이 저와 함께 대학까지 올 수 있도록 번번이 나를 일으켜준 친구였다.

태어나면서부터 율을 옭아맸던 가난은 그럼에도 세상을 긍정하던 율을 끝내 주저앉혔다. 과로사였다. 쉬는 날 없이 밤낮으로 택배 상하차와 편의점 알바를 하여 빛을 갚고, 학비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장학금을 받아야 했기에 학과 공부까지 놓치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괜찮냐고 물을 때면 율이는 활짝 웃으며 안 괜찮을 건 또 무엇이냐며, 건강 챙기라며 손에 꼭 먹을 것을 하나씩 쥐어주곤 했다. 그런데 왜 하필 너를.


이대로 어디로든 가고 싶었다. 사라지고 싶었다. 영영. 이 세상에 존재한 적 없다는 듯이. 나는 현관문 밖을 나서 내지르듯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 위치해 있던 장례식장 바깥은 온통 암흑져 있었다. 몇 걸음 못 가 바로 나 있는 차도 위엔 차 한대 없었다. 어디에도 연고가 없다는 게 처음으로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멀리 가지 못했다.

누군가 뒤에서 내 셔츠 자락을 붙들었다. 반사적으로 힘주어 거칠게 몸을 옆으로 비틀자, 옷을 붙잡고 있던 손이 순식간에 떨어져나갔다. 돌아봐 바라보니 내 쪽을 향해 있는 전등 탓에 그늘져 보였지만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강이서였다. 순간적으로 나는 숨을 참았다. 같은 학과 동기에 종종 지나치다가 스친 적은 있어도, 신입생 환영회 이후로, 이렇게 직접적으로 서로를 마주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어서 당황하고 있는데 잠시 숨을 고르느라 몸을 숙이고 있다가 고개를 든 이서와 눈이 마주쳤고, 이서 역시 당황하는 눈치였다. 상황 파악이 먼저 되었던 건 이서였다. 미안하다고 말하며 이서는 몸을 일으켜 뒤로 물러섰다. 나도 다시 정신을 차려 고갯짓으로 인사하고 몸을 돌려 가려는데

“저기,” 이서가 불렀다. “이거”

이서가 내민 손에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어두워서 무엇인지 보이지 않아 고개를 조금 앞으로 내밀었는데 봤는지 이서는 좀 더 앞으로 와 보여주었다.

“이게 왜…”

“선배 꺼 맞죠”

이서의 손에 들려있던 건 내가 장례식장에 입고 갔었던 겉옷이었다.

“아, 네.”

나는 황급히 겉옷을 받아 챙겼다. 절대 물건을 어디 두고 다니는 성격이 아닌데, 하필 그걸 발견해 가져다 준 사람이 이서라니. 고맙고 쪽팔렸다. 물건을 놓고 다니는 게 나쁘다 생각하진 않지만, 이서에게는 어떤 흐트러진 모습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하긴 그 마저도 아까 다 망쳤다.

“하!”

또다. 다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전혀 웃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음에도. 고장난 웃음이 이렇게 자주 터지진 않는데. 황급히 입가에 힘을 주어 봐도 멈춰지지가 않았다. 내가 정말 미칠 대로 미친 걸까. 이서도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겠지. 나는 다급하게 이서 손에 있던 겉옷을 잡아채어 내 손에 구기듯 움켜쥐었다. 최대한 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나야 했다.

나는 말없이 빠르게 이서로부터 등을 돌려 걸어 가기 시작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으나 하지 않았다. 하지 못했다가 더 정확할 수도. 어쩌면. 아니. 이제와 다 무슨 소용일까. 다시는 학교로 돌아가지 못 할 것이었다. 친구는 한율 뿐이었고, 그 난리를 피우고 나왔으니 돌아간다 해도 미친 사람 취급 받을 게 뻔했다.


“어디 갈 건데요.” 등 뒤에서 이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나는 답하지 않은 채로 앞으로 걸어갔다. 답 할 수 없었다. 비가 내렸으나, 여린 봄비는 적막을 채울 여력이 없었고 도로를 보니 더이상 차는 한 대도 다니고 있지 않아, 고요는 턱 없이 컸다. 도롯가에는 듬성듬성 가로등이 놓여 있어 겨우 어둡지 않은 정도였지만, 내겐 그것마저 너무 밝게 느껴졌다. 도로 건너편 논밭이 펼쳐진 곳에는 가로등이 없었다. 차도를 건너기 전에, 혹시 모르니 잠깐 주위를 살피는데

“…도망치는 거죠.”

나는 걸음을 멈췄다.

“그거 봐요. 도망치는 거 맞잖아.” 이서가 말했다.

발에 체인이 걸린 듯 더이상 앞으로 걸어지지가 않았다. 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내가 도망치고 있다는 것을. 어디로 가야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알고 있어요. 저.” 이서의 말이었다.

당신이 알긴 뭘 아는지, 나는 손에 쥔 겉옷을 세게 쥐며 뒤를 돌았다, 가 나는 곧바로 두세 걸음 뒷걸음질 쳤다. 생각보다 이서가 가까이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슬플 때, 웃기부터 하잖아요. 그리고”

하! 어이가

“이것 봐요. 당황스러울 때도 웃음부터.”

나오려던 웃음이 순간적으로 멎었다. 나는 벙찐 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이서를 쳐다 보고만 있었다. 도롯가로 나와 서 있으니 이서의 얼굴이 아까 보다는 반쯤 더 잘 보였다. 그러나 어떤 표정인지 좀처럼 읽을 수 없었다. 화난 것 같기도 하고 슬픈 것 같기도 하고. 어째서 꼭 알고 싶은 사람의 마음은 더 흐릿해보이는 걸까. 알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 때문일까. 이서의 눈에 내 얼굴은 어떻게 보이고 있을까. 어떤 표정으로도 향하지 못하고 이도저도 아니게 엉망인 표정이 얼굴에 다 드러나 있을까. 아마 내 정면으로 가로등이 비춰오고 있으니 내 얼굴은 다 드러나 보이고 있을 것이었다. 어떻게든 표정을 지우려 했지만 없애지지가 않았다. 아무 소용이 없자, 나는 최대한 표정을 찌푸려 사나운 얼굴이 되게 하려 했다.

그러다 문득 이서의 시선과 맞닿았다. 일순간에 새하얘진 머릿속과 함께 나도 모르게 황급히 손에 들고 있던 겉옷을 구겨 쥔 채로 이서와 내 얼굴 사이에 오게 들어서 가렸다. 내 얼굴을. 그리고 이서의 시선을. 숨고 싶었다. 이서의 시선이 따가웠던 게 아니었다. 오히려 이서는 차분하고 고요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런 관점도 담겨있지 않은 채로 그저 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그 눈동자 속의 초점은 또렷이 나를 향해 있었다. 처음 보는 반응. 저건 무슨 시선일까. 이따금 내 표정이 고장나 있는 순간을 마주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불쌍하게 생각했다. 그러한 반응들에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다. 나도 이런 내가 낯설 때가 많은데 하물며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싶어서.

“괜찮아요.” 이서가 말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까부터 계속 무엇을 안다고 그런 말들을 하는 건가 싶었지만, 묻고 싶었지만 나는 손을 내릴 수 없었다. 조금씩 손이 저려왔지만, 그래도.

이어서 이서는 말했다. “나도 내가 뭘 안다고 이런 말을 한 건지 다 알 순 없어요.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한 말은 아니라는 거예요. 위로하려고 무작정 말한 게 아니에요. 알고 있어요, 언니가 울고 싶을 때 웃는 사람인 거, 당황할 때 웃음부터 터지는 사람인 거 알아요.”

“……”

나는 반사적으로 숨을 참았다. 당황스럽거나 슬픔이 밀려올 때면 난 웃음부터 먼저 터트리곤 했다. 이서는 잠시 호흡을 고르는 듯했다. 내 손에 들린 겉옷이 잘게 흔들리고 있는 게 보였다. 조용해진 주위와 함께 찾아온 정적이 빗소리를 들려 주었다. 나는 그제야 비가 내리고 있었다는 걸 깜박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크게 의식하지 못할 만큼의 가랑비였지만, 산 아래이고 그래서인지 아직 밤공기엔 찬 기운이 가시지 않은 듯했다. 봄이라 옷이 얇을 텐데 감기 걸리면 어떡하지. 구겨 쥔 손을 조금 펴서 늘어뜨러진 겉옷을 “이거…” 이서에게 내미려는데

“근데 그게 뭐 어때서요.”

“……”

“슬프면 꼭 울어야 해요? 꼭 기쁠 때만 웃을 수 있나요? 울음이 나와야만 슬픈 건가요? 아니요. 감정은 저마다 다양하고 감정 표현도 다양해요. 다른 거지 틀린 게 아니라고, 난 그렇게 생각해요. 슬퍼서 웃어도 돼요. 아니지, 내가 뭐라고 된다 만다래. 슬퍼도 울음이 나오지 않을 수 있고 웃음이 나올 수도 있는 거고, 그래도 되고 아무도 그걸 두고 무어라 할 수 없고 해선 안 돼요. 이상하다는 사람 있으면 나오라 해요. 저 이래봬도 합기도 3단이에요.”

우리 사이에 얕게 고인 빗물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며 작은 원에서 큰 원으로 파문을 그려 나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이서를 바라봤다. 이서는 여전히 같은 표정과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어떻게 보고 있는 게 아니라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런 관점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읽히지 않는 눈빛이었지만 그 속에 모든 게 담긴 듯했다. 모든 걸 담아낼 것 같은 눈빛이었다. 다정해서, 그 따스함이 무서웠다. 다 괜찮다고 하면 괜찮지 않은 마음이 애써 눌러둔 마음들이 다 쏟아질 것 같았다.

“그러니까”

시선을 피하려는 내 눈동자를 따라와 똑바로 보며 이서는 말했다.

“도망치지 마요. 가지마요. 정말 괜찮아서 괜찮다고 말하는 거예요. 뭐든 다요.”

나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려 바짝 긴장된 얼굴로 무언가를 말하려 입을 열려 했지만, 말을 채 내뱉기 전에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가릴 수 밖에 없었다. 내 표정이 어떨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 앞에서 운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다. 이서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그렇게 같이 곁에 있었다.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따스하고 다정했다.





잊고 있었던 기억이었다. 해단의 말을 듣고 있다가 문득 떠올랐다. 그리고 이어서 생각했다. 비에 담긴 마음이라는 건, 신이 비에 담은 마음이라는 건, 같이 슬퍼하는, 공감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이서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은 듯했다.

"선배..?" 해단이 걱정스러운 듯 세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 어..?" 세하는 자신도 모른 채 울고 있었다.


한참 세차게 내리던 비가 조금은 잦아들며 비교적 아까보단 부드럽게 내리기 시작했다.

"숙소에 불 들어왔다. 얼른 들어가. 감기 걸릴라. 나는 조금만 더 있다가 갈게” 조금 진정된 세하는 희미하게 웃어 보이며 해단에게 말했다.

해단은 괜찮다며 자기도 더 있다 가겠다고 말하려 했지만, 먼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세하를 보며, 잠시 자신이 비켜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알았다고 하고는 자리를 떴다.


해단이 떠나고 다시 파도 소리만이 주변을 채웠다. 세하의 시선이 멈춘, 바다 위로 빗방울이 떨어져 내리며 제각각의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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