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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수민 Oct 30. 2022

25.



그날 밤 잠을 자는데 세하의 귓가로 아이의 투명하고도 따스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웃음소리는 세하에게로 점점 가까이 왔다가 다시 멀어지길 반복했다. 파도 소리를 너무 오래 듣고 있었나. 세하는 잠시 생각했다. 다시 깊이 잠들기 좋은 자세를 찾으려 이리저리 몸을 뒤척여 보는데 아이의 말간 웃음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 세하가 눈을 뜨자, 지난번에 봤던 그 풍경이었다. 위로는 오직 물빛을 머금은 듯한 푸른 하늘이 아래로는 광활한 수평선과 함께 끝없이 펼쳐져 있는 공간이었다. 

보육원을 나서던 그 전날 밤 이후, 정말 오랜만에 꾸는 꿈이었다. 대학교 다닐 때에 아주 가끔, 일 년에 한두 번 꾸기도 했지만, 군대에 들어간 이후 단  한 번도 꾼 적이 없었다. 몇몇 날은 비슷한 꿈속의 공간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주위에 펼쳐진 풍경은 온통 칙칙하고 어두컴컴했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꿈이었다. 

계속 들려오던 웃음소리는 어김없이 흰색 옷을 입고 있는 아이의 웃음소리이리라, 세하는 생각했다. 저 멀리서 아이로 추정되는 자그마한 물체가 아른거렸다. 

세하는 아이에게로 점차 가까이 다가갔다. 아이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갈수록, 세하가 하나로 보았던 물체는 사실은 둘로 나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두 물체의 정체를 정확하게 인식하게 된 순간 세하는 제자리에 멈춰 서서 눈물을 흘렸다. 다른 한 물체는, 그러니까 다른 한 사람은 다름 아니라 이서였다. 


“왔어?” 이서는 세하를 보며 환하게 웃으며 “오랜만이야. 보고 싶었어.” 말했다. 

세하는 마음이 찢어질 것만 같이 아픈 고통 섞인 흐느낌이 입 박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자신의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고는 이서를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기억해? 전에 우리가 장난식으로 나눴던 대화. 사랑하는 사이의 사람들의 영혼은 하나로 이어져 있어서, 서로의 마음속으로 갈 수 있다고. 네가 말할 때, 나 솔직히 반신반의했는데, 진짜더라. 그걸 알게 된 이후로 매일 밤 여기에 와서 당신을 기다렸어.”

세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끅끅거리며 울고 있었다. 

“미안해, 언니. 내가 말도 없이 떠나와서 정말 미안해.” 이서는 세하에게 다가가 끌어안으며 말했다. “언니가 부족해서, 언니가 못나서 언니한테 먼저 얘기도 못하고 떠나온 거 아니야. 미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그건 내가 정말 잘못했어. 미안해. 

언니가 내 상황 몰랐던 건, 언니의 잘못이 아니야. 내가 말을 안 했는 걸. 어느 누군가 그렇게 티가 나는데 그걸 몰랐냐고 할 수도 있지만, 당사자가 말을 안 해줬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이 알 수 있겠어. 그런 말로 언니를 책망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 생각이지만, 그 사람이 정말 못된 거고 잘못된 거야. 절대로 언니 탓으로 몰아가지 말아. 

그리고 그동안 언니한테 말 못 했던 건, 언니가 못 미더워서가 아니라, 내가 나한테 자신이 없어서야. 그리고 내가 이기적이어서 그랬어. 언니의 행복을 내 슬픔으로 일그러뜨리고 싶지 않았어. 그리고 동시에 내가 나 자신을 너무 과신했어. 혼자 잘 이겨낼 수 있을 줄 알았어. 원래 다 지나가니까, 이제껏 잘 이겨 내왔듯 이번에도 잘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나를 놔버리는 순간이 너무 순식간에 일어나더라고… 미안해, 언니를 배려한다는 게 되려 언니한테 더 큰 슬픔을 주고 말았어. 미안해, 정말. 

그러니까 그 무엇에 있어서도, 언니 스스로, 언니의 탓을 묻지 말아 줘. 아무리 말해도 언니는 다 자신의 책임이라고 끌어안으려 하겠지만... 그러지 마. 부디 그러지 말아 줘. 나한테 진짜 잘못한 사람들은 따로 있는 거 언니도 알잖아. 하지만 그 사람들을 미워하지 말아 줘. 나를 위해서도 언니를 위해서도. 그러지 말아. 분명 하늘이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거야. 그러니, 나도, 하늘도 언니에게 묻지 않은 책임을 언니가 스스로에게 묻고 질책하며 아프게 하지 말아 주라. 

죽어서 후회하냐고. 응, 후회해. 뭐가 가장 후회되냐면, 언니와 같은 세상에서 함께일 수 없다는 거. 그게 나를 너무 슬프게 해. 슬퍼하고 아파하는 건 다 내가 할게. 그래도 언니가 염려하지 않을 만큼은 하늘에서 잘 있을게. 꼭 그럴게. 하늘에서 언니를 지켜보며 언제나 늘 당신의 평안과 행복을 위해 기도하고 기도할게. 

그러니까, 언니는 아무 걱정 말구, 마음껏 행복하다가 오래오래 살다가 나중에, 신이 부를 때, 그때 와요. 나는 언제나 여기 있으니까, 걱정 말구. 그러니까 단 한순간도 언니를 벌준다고 언니, 스스로에게 못살게 굴지 말고, 건강하고 행복해야 해. 알았지..? 사랑해, 정말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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