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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수민 Oct 30. 2022

26.



“어, 선배. 눈이 땡땡 부으셨는데요?” 우유팩에 담긴 시리얼을 퍼먹으며 해단이 말했다. 

“우유팩에 시리얼을 담아서 먹으니 아주 배로 맛있지요?” 세하가 지지 않고 말했다. 

세하와 해단은 처음으로 마주 앉아 아침을 먹게 되었다. 둘은 우유에 시리얼을 부어 먹을 땐, 눅눅한 게 최고다, 바삭한 게 최고다라며 논쟁을 펼치고 있었다. 전날 섬에 몰아친 폭풍의 여파로 주방 내의 그릇들이 거의 다 깨졌던 터라, 시리얼에 우유를 부어 먹기에 적당한 그릇이 딱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그릇들이 오려면, 다른 팀인 현서와 해현이 오는 낮 두 시까지 기다려야 했다. 한참 열띤 논쟁을 펼치다가 둘은 결국 결코 의견이 좁혀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가위바위보로 승패를 가르기로 했다. 이긴 사람은 그릇에, 진 사람은 우유팩에 담아서 먹기로. 두 사람은 허기진 배를 채우랴 한참을 말없이 허겁지겁 아침을 먹었다.  


“오늘 육지로 돌아가는 날이네.” 세하가 말했다. 

“네, 그렇죠.” 해단이 시리얼을 한 입 가득 넣어 오물거리며 세하를 바라봤다. 

“나는 아마 일 년 정도 쉬게 될 것 같아.” 세하가 해단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네? 선배, 설마 혹시, 제가 눈 부었다고 놀려서 그래요? 아니면 혹시 제가 어제 뭐 실수한 거 있을까요..? 아무래도 제가 어제 괜한 말 내뱉은 거 맞죠..? 그렇죠..?” 식탁에 숟가락을 내려 두며 해단이 말했다. 

“으하..! 크흡..” 세하는 해단의 말에 웃음보가 터지는 바람에, 순간 입에 머금고 있던 내용물을 도로 뿜을 뻔했다. 겨우겨우 삼켜낸 세하는 말했다. “아니야, 그런 거. 어후, 병원에서 쉴 뻔했다, 방금. 여하튼! 그냥 좀 쉬면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 무얼 좋아하는지 좀 알아가 보려고. 그동안 계속 달려오기만 했거든. 근데 정작 내가 나를 너무 모르는 것 같아서, 좀 이곳저곳 돌아다녀 보면서 알아가 보려고. 물론 일 년 갖고는 택도 없긴 하겠지만 손톱만큼의 기반이라도 먼저 다져 보고 싶어서. 어젯밤에 생각하다가 결정했어. 고마워. 너와 대화한 시간이 이러한 결정을 내리는 데에 많은 도움과 큰 용기가 되었어. 그리고 이 섬이 태풍도 자주 치고 두 사람만 관리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서, 새로운 인력을 충원해 주기로 했대. 너랑 현서 선배랑 해현이랑 나 이렇게가 한 팀인데, 아, 물론 페이는 변함없대. 나는 이제 일 년 동안 쉬고 와서 새로운 사람은, 아침에 현서 선배랑 통화하면서 물어봤는데, 다행히 대기자가 있었다고 하더라고. 근데 너의 의견이 좀 중요할 것 같대. 현서 선배랑, 해현이는 괜찮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다 함께 일하는 거다 보니까 만장일치가 되어야 그 사람이 올 수 있다고 하더라. 그 다른 한 사람이 남자야. 근데 아무래도 원래 여자들끼리 함께 일 했는데 갑자기 남자 사람이 오면 좀 불편할 수도 있으니까… 아, 너무 나만 말했지. 미안 미안.  네 생각은 어때?”

갑작스레 밀려드는 정보에 멍하니 듣고 있던 해단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다 입력이 되었다는 듯이 “좋아요!”라고 말했다. 

“그래, 그럼 일단 그 새로운 사람도 같이 오라고 할게! 물론 해단, 너는 이 주 동안은 육지에서 쉬고 오면 돼!” 

“넵! 선배, 때마다 안부 주시는 거 잊으시면 안 돼요..!”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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