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서

by 허수민

- (꼭) 함께 들으면 좋을 플레이리스트 : [Playlist] 너와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https://www.youtube.com/watch?v=ncWU5a2ClUI&t=177s)




“밥도 먹었겠다, 바닷가 걸으러 갈까?” 당신이 내게 말한다.

나는 당신의 친근한 반말이 좋다고 잠시 생각하다가, 순간 대답할 때를 놓쳤다는 생각에 아차 싶어 서둘러 “그러자.”라고 답했다.

곧바로 나타나지 않은 나의 대답에 당신은 잠시 걱정이 되었는지 내 안색을 살피는 듯하다. 이 다정함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는 잠시 꿈만 같다는 생각에 아득한 눈길로 당신을 바라보다가 “좋아서”라고 말한다. 안심하는 당신을 보며 바람결에 부드러이 흩날리는 당신의 머릿결과 당신의 얼굴을 쓰다듬고 싶단 생각과 함께 나도 모르게 손이 움직이려 했지만 숨을 들이 마쉬며 겨우 참아 냈다.


식당 앞 자그맣게 펼쳐진 바닷가는 휴일 치고 사람이 적은 듯했다.

가을과 겨울 사이의 공기를 닮은 바람, 그 속에 스민 바다 내음은 그토록 그리던 당신과 함께 바다에 와 있단 사실을 한층 더 선연히 인지하게끔 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감사한 마음이 벅차게 차올라, 나는 마주 잡은 당신의 손을 더 꼭(물론 아프지 않을 만큼만..) 쥐어 본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열심히 찾는 것 같던 당신이 무슨 일이냐는 듯이 고개 돌려 나를 바라본다.

“음.. 그게.. 꿈같아서.. 당신과 바다에 온 게 너무 좋고.. 그래서..” 나는 다 끝맺지 못한 대답을 깨물고 별안간 복받친 감정에 눈시울을 붉힌다.

“밥 먹고 울면 체한..”라고 장난스레 말하려던 당신이 말을 멈췄다.

나는 이젠 고개까지 숙인 채 도무지 멈춰지지 않는 울음을 하염없이 흘리고 있었다. 말없이 듣는 것 같던 당신은 잠시 나와 마주 잡았던 손을 놓더니, 내 오른손에 들려 있던 돗자리를 가져갔다.

“우리, 잠깐 여기에 앉자.” 당신이 말한다.

당신의 목소리를 따라 고개 들어보니 모래사장 위에 보라색 돗자리가 깔려 있었다. 먼저 깔아 주고 싶었는데 우느라 그렇게 못했다는 것에 좌절하며, 왜 이 기분 좋은 날 나는 이렇게 울며 분위기를 망치고 있나란 생각이 밀려와 자책하며 한동안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제자리에 멀거니 서 있었다.

“괜찮아..?”라고 걱정스레 물어오는 당신의 목소리에 채 눈물을 다 닦지 못한 나는, 차마 고개를 들진 못하고 바닥만을 바라보며 걸어 당신 곁에 가서 앉았다.

한차례의 울음이 밀려오고 밀려 나간 자리엔 붉어진 내 얼굴과 함께 내 부끄러움이 남아 있었다. 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어버렸다는 사실에 뜨거워진 내 얼굴은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여 울음이 잦아들었음에도 나는 무릎 사이에 고개를 파묻은 채 그 사이로 보이는 돗자리의 무늬를 눈으로 따라 그렸다.

곁에 잔잔히 앉아 있던 당신은 “잠깐 어디 좀 다녀올게. 여기에 조금만 있어.”라고 말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이 일어서며 생겨 불어 든 바람에 당신의 체취가 배어 있었다.

당신의 기척이 조금 멀어진 걸 확인한 나는 서둘러 고개를 들며 당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뒤를 보려는 듯한 당신의 몸짓에 나는 다시 황급히 앞을 바라본다. 그렇게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가 다시 뒤를 돌아보니 당신은 이미 사라지고 난 후였다. 다시 고개를 돌린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왜 그렇게 무턱대고 울어 버렸을까 싶어 나 자신을 한참을 한탄했다. 함께 처음 오는 바닷가에서 행복한 기억들을 잔뜩 만들어서 가고 싶었는데 뭔가 나 때문에 다 망친 것만 같았다.


“여기.”

그때 당신의 목소리와 함께 손 등에 따스한 온기가 와닿았다. 고개 들어보니 컵이 대어져 있었다.

“라떼야, 따뜻한 거.”

“……”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나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속으로 나 스스로를 책망하며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당신은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내 한 손에 커피를 꼭 쥐어 주며 손을 포개었다.

“저기 뒤에서 사 왔어. 있다가 해 완전히 넘어가고 쌀쌀해지면 저기로 들어가자. 강아지도 있더라. 이름이 포라던가. 당신도 보면 좋아할 것 같아. 디저트도 맛있는 거 많더라. 그리고 또…”

“미안해..”

“미안하긴… 괜찮아. 혼자 또 자책하지 말구. 가끔 보면 당신 울어야 할 상황과 울지 말아야 할 상황 같은 거 구분할 때 있는 거 같은데… 나도 자주 그럴 때 있지만.. 그치만 내 앞에선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 당신의 웃음만큼이나 당신의 울음도 중요하고 소중해. 당신의 감정 모두 다. 물론 당신이 우는 걸 반긴다는 게 아니라, 당신 우는 걸 보면 내 마음은 무너지지만 내가 걱정할까 봐 당신이 울음 참거나, 울면 안 되는 상황이라 생각해서 슬픈데도 울음 참으면 더 아파. 미안하지만.. 싫어. 당신 안에 울음이 쌓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차라리 그 슬픔 다 나한테 넘겨줘 버렸으면 좋겠어.”

“……”

말을 그친 당신은 잠시 말없이 바다를 바라봤다. 그리곤 힘이 들어가 있던 어깨를 누그러뜨리며 다시 나를 바라본다.

“이거, 따뜻하지?” 당신이 내게 묻는다.

“어..?”

당신이 눈짓으로 커피를 가리켰다.

“꿈 아니야.” 당신이 말한다.

당신의 말에 나는 무슨 소리인가 싶어 잠시 머릿속으로 뜻을 헤아리다가 앞서 울며 내가 뱉은 말을 떠올렸다.

“……” 날은 찬데, 다시 내 두 볼이 달아오르며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아까 운 기색이 아직 다 가시지 않았고 날도 조금 쌀쌀한 탓에 안 그래도 얼굴이 빨개져 있을 텐데 이런. 나는 밀려오는 이런저런 생각에 수그려지는 고개와 함께 당신이 빠르게 사라지고 내 시야엔 모래사장과 내 신발만 보인다.

“이거 봐.”

내 시야에 당신의 손목이 들어선다. 당신 손목 가운데가 빨갛게 부어 있었다.

“나도 그래. 아까 당신이랑 함께 창가에 나란히 앉아 바다 보면서 식사 기다리는데, 자꾸만 꿈같아서, 계속 꼬집어 봤었어.”

나는 여전히 쑥쓰러워하면서도 이게 정말 꿈이 아니며 당신을 시야에서 놓친 채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다시 고개를 들자 환히 웃고 있는 당신이 보인다. 어떻게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당신의 웃음 너머로 점차 노을이 피어나고 있었고 등대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당신을 보며 말한다.

“사랑해, 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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