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노을

by 허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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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약 3~4일간 원래 살던 동네를 비우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다시 동네에 돌아오니 못 본 사이 곳곳에 단풍이 훌쩍 물들어 있고 땅 위로 내려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채 마르지 않은 낙엽들 위를 지나갈 때면 푹 익은 풀잎들 내음이 나는 걸 느끼며 가을의 정중앙을 지나고 있음을 새삼 실감합니다. 떨어진 낙엽에 제각각으로 물든 빛깔들을 보며, 이따금 시간을 잊기도 때때로 시간에 쫓기면서도 눈으로 단풍을 훑는 걸 멈추기가 좀처럼 쉽지 않네요.

저는 매미 소리가 어디서도 들리지 않을 때 비로소 여름이 갔구나 하고, 은행잎이 샛노랗게 물들 때, 매일 보던 푸르던 동네 뒷산이 가지각색으로 물들었을 때에 진정 가을이 왔구나 생각하곤 합니다. 당신은 어떤 때에 여름이 끝이 났고, 어떤 때에 가을이 왔음을 느끼시나요. 당신의 계절들은 어느 때에 이르러 비로소 당신께 이름 되어지나요.


별안간 단풍이란 단어가 궁금해 찾아보니, ‘붉을 단’ ‘단풍 풍’으로 이뤄져 있다고 해요. 뭔가 붉을 단은 예상했는데, 단풍의 풍이 단풍 풍이었을 줄이야. 단풍 풍. 풍풍. 퐁퐁. 풍풍. 크흠. 뭔가 귀여운 발음이구나 하며 자연스럽게 지나갈 법하지만, 자꾸만 걸음을 멈추어 그래서 그 단풍 풍(楓)이란 대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나무 목(木)’자에 ‘바람 풍(風)’자가 모여 단풍 풍(楓)이란 한자 단어가 된데요. 나뭇잎이 단풍이 될 때, 나무에 분 바람에 잎새가 떨어지기 때문일까요. 당신 생각은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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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잎이 떨어질 때 어떤 생각을 할까요.(여기서 떨어진다는 건, 현상을 제 관점에서 있는 그대로 서술한 말로 어떤 긍, 부정성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 나무는 잎이 떨어진다고 생각할까요, 아니면 다시 땅으로 돌려보낸다고 생각할까요. 아니면 다른 어떤 생각을 할까요? 그러고 보면 정말 신비한 것 같아요. 아무것도 없는 나뭇가지에서 새순이 돋고 꽃이 핀다는 건.

양 팔로 둘러도 다 안지 못할 큼지막한 나무 등치에 앉아 까무룩 잠이든 어느 날 꿈에서 만난 나무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싶기도 해요. 어떤 이유로 피고 지길 반복하면서도 또다시 피어나나요 하고도 물어보고 싶고요. 어쩌면 이런 면에서 나무는 사람과 닮아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건 사랑 때문이라는 대답이 움터 있는 것 같아서요.


나뭇잎이 붉게 물드는 모습을 처음 본 사람은, 난생 그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사람은 나무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초록색이던 나무가 어느 날 붉고 노랗게 물들더니 또 어느 날은 땅으로 후두둑 떨어지더니, 가지뿐이던 나무에 다시 새싹이 피어날 때에 그 시간 동안 어떤 마음으로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을까요.

제 생각에는 처음에 무척 당황했을 것 같습니다. 한참을 푸르던 나무가 어느 날 서서히 옷을 갈아입더니 또 어느 날은 잎 없이 존재하는 모습을 보면서요. 걱정도 했을 것 같아요. 혹시라도 어디 아픈 건 아닐까 싶어서요. 처음이란 건 대다수의 경우에 적응을 필요로 하니까요. 그런 면에서 사는 매일이 처음인 우리 모두, 얼마든지 더 서투르더라도 괜찮은 것 같아요.

무언가에 능숙한 모습도, 서투른 모습도 다 눈부시게 빛나요. 사랑하는 사람의 감히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무수한 시간과 노력이 배어든 모습도, 그 사람의 처음에 함께 있는 순간도 처음 혹은 익숙지 못한 상황을 그럼에도 용기 있게 맞서는 그 사람의 담대한 용기도 모두 찬란히 빛나네요.

당신은 어떤 모습에서 찬란히 빛나는 걸 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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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편단심.

한 조각의 붉은 마음.

한결같은 참된 정성, 변치 않는 참된 마음.

오로지 한 곳을 향한, 한 조각의 붉은 마음.


일편단심의 단이 붉은 단이란 한자라는 거 알고 계셨나요. 저는 오늘 처음 알았어요. 뭔가 단단할 단 같은 한자를 갖고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지요. 붉은데 왜 음을 단으로 지니고 있을까 계속 궁금했는데, 이 사자성어를 보니 왜인지 알 것 같기도 해요. 물론 어디까지나 저의 추측이지만요. 붉은빛은 여러 색깔들에 있어서 좀처럼 빛깔이 변하지 않는, 그걸 굳세기의 기준으로 잡는다면 꽤 단단한 빛깔에 해당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의 모든 생각에 따른 당신의 생각들이 궁금해요. 서로 다른 모습의 생각들이더라도, 그 생각이 당신의 생각이라는 것만으로 제게는 더할나위 없이 중요하고 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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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나날에서 어김없이 제 때에 피어나는 노을, 그 단풍처럼


세상 그 모든 곳의 단풍을 모아도, 앞으로 피어날 그 모든 단풍을 더해도 부족한 마음으로 당신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저는 피어났었고 피어나 있고 피어날 그 모든 영원의 단풍을 여기,

붉게 물든 단풍 일편(一片)에 단심(丹心)을 실어 사랑하는 랑, 당신께 보냅니다.


사랑해요. 나날이 깊어지는 마음으로, 오직 당신을. 영원히.




| 독자분들께 |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ㅠㅠ 음.. 목요일, 자정 전까지 올리면 되겠다. 했는데 그 자정이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넘어가는 때가 아니라, 수요일에서 목요일로 넘어가는 자정이었다는 것을.. 독자분들께 면목 없고 정말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