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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흡수인간 Sep 19. 2018

포기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우리

포기를 잘 하는 사람이 진정 어른이 아닐까?  

포기란 과연 나쁜 것일까? 정해진 답은 없지만, 아무래도 우리 사회에서는 좋은 의미 보단 나쁜 의미를 더 부여하는 것 같다. 성공이란 포기하지 않고 '인고(忍苦)'의 시간을 견뎌낸 후에라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말들을 한다. 그렇다면 포기를 하지 않으면 무조건 하던 일에서 성공할 수 있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재능, 노력, 일의 특성, 운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뭐든 이룰 수 있다고 말을 한다. 헛된 노력을 하도록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셈이다. 그런데,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우리가 잃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어쩌다 한국인'의 저자 허태균 교수는 포기란 곧 선택이라고 한다.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것은 다른 것을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사람은 결정을 해야 한다. 스스로 가치를 따져보고 무엇이 자신에게 나은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한다. 허교수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바로 이런 연습이 부족해서 괴로워한다고 한다. 포기를 모르고 노력하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끝까지 공부해서 수능을 치르고, 대학을 가고, 취직을 하면 다 될 줄 알고 노력하다가 결국 끝이 좋지 않게 되었을 때 문제가 생긴다. '이것말고 내가 다른 건 뭘 할수 있지?' 라는 당혹스런 질문과 만나는 것이다. 


허교수의 말을 듣고나니 왜 요즘 '결정' 에 관한 책들이 서점 서가에서 눈에 띄는 이유가 이해가 간다. 왜 내가 첫 직장에서 이직을 할 때 그렇게 괴로웠는지, 왜 요즘 젊은 직딩들이 회사를 관둘까 말까 고민스러운지도 말이다. 포기하는 법을 모르고 살아온 우리는 선택 연습을 할 기회를 잃었던 것이다. 다 큰 어른이 될때까지 말이다. 그러다가 홀로서기를 해야하는 순간을 맞게되고, 선택하는 것에 서투른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포기와 관련한 중요한 또 하나의 사실이 있다. 바로 하나를 선택하고 버려지게 될 (혹은 취하지 못하게 될) 다른 하나에 대해 미련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둘 다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택의 경우, 우리는 무언가를 버려야 한다. 버려야 할 것에 연연하면 선택을 할 수 없고, 설사 선택을 했다 하더라도 후회감이 커진다. 


만약 지금 선택을 앞두고 있다면 '과연 A라는 것을 버려가면서 선택할 만큼 B라는 것은 나에게 중요한 가치가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것은 어떨까? '새로운 회사는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보다 나에게 더한 가치를 주는가?' ,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 하는 것이 나에게 가치가 있는가?' 와 같은 질문들 말이다. 늦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포기하고 선택하는 연습' 을 하는 것만이 진정 어른이 되는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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