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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Nov 09. 2022

3년 만에 알람을 켰다.

늦은 밤. 휴대폰의 알람앱을 켰다. 


'오전 6시 45분'에 맞춰둔 알람은 off 상태다. 깨알같이 추가된 '공휴일엔 알람 끄기' 문장이 낯설다. 3년여만 이던가? 오래 묵혀둔 낡은 서랍을 연 것처럼 잠시간 시간이 멈추더니 그날로 되돌아간다. 퇴사 당일 조촐한 축하 파티랍시고 "아~후련하다. 내일부터 자유다" 외치며 알람부터 끄지 않았던가?


그런데 웬걸, 일주일이 넘도록 눈이 자동으로 뜨였다. 16년간 길들여진 아침 루틴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어쩌면 마흔 중반의 백수는 늦은 아침잠을 누릴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후 3년의 시간 동안 현역 시절보다 고작 40분 늦은 기상 시간을 매일 지켰다. 늦어도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고 기상 시간 자체가 습관이 되자 자연히 알람은 필요 없어졌다. 기억의 서랍 속으로 그렇게 들어가 버렸다.


첫 번째 책은 12월의 마지막 날 세상에 나왔다. 묵은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새해를 맞는 기대가 교차하는 하필 그날. 2년간 비어있던 카톡 프사를 바꿨다. "세상에 나갈 준비" 라고 상태 메시지도 써넣었다. 세상은 신년을 맞을 준비로 분주했고 내 마음도 오랜만에 희망이 반절 정도 차올랐다. 


첫 책은 실패했다. 출간 후 10개월이 지나도록 그 어디에서도 불러주는 이는 없었다. 1쇄도 소진하지 못했다. 뻔히 예정된 실패를 혼자만 몰랐던 것일까? 주제가 일반적이지 않았느니 출판사의 홍보가 형편없었느니 핑계를 생각해봤지만 결론은 실력 부족이었다. 그 자명한 사유를 깨닫기까지 꼬박 반년이 더 걸렸다.  


두 번째 책은 조금 달랐다. 운이 좋았던 것일까? 첫 책 출간 후 10개월 만에 책이 나왔다. 다행히 시장의 반응도 있었다. 메이저 언론사 인터뷰도 했고, 방송사에 불려가 북토크 영상도 찍었다. 워크샵 요청도 들어왔다. 첫 책과는 확연히 다른 이런저런 요청에 잠시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워크샵 모듈 개발을 위해 사전 미팅을 하자는 제안. 오전이다. 약속 장소가 가깝지 않은 탓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야 한다. 약속시간이 오후로 미뤄졌지만, 알람에 맞춰 일어나기로 했다. 평소보다 1시간 땡겨진 셈이지만 출근할 때의 기분을 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3년여 만에 알람앱을 켜고 '오전 6시45분 알람'을 되살렸다. 희뿌옇게 죽어 있던 숫자가 그 즉시 생명력을 얻는다. 그 짧은 부활이 어둠 속에 침잠하던 나 같았다. 이게 뭐라고.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세 번째 책을 준비 중이다. 첫 번째의 실패, 두 번째의 작은 성공은 그 결과가 무엇이건 묵묵히 갈길을 가면 그뿐이라고 말해주었다. 바닥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침잠할 때도,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거머쥔 양 환희의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으므로...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간 기회는 온다. 그 사이 나를 단단하게 다져 놓는다. 다만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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