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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Jul 31. 2023

참을 수 없는 아마추어 직장인의 가벼움

프로가 되자!


참칭. 분수에 넘치는 칭호를 스스로 이르다


수평적 조직문화를 말할 때 감초처럼 등장하는 것이 바로 회사 내에서의 칭호다. 상대를 어떻게 부르냐에 따라 경직된 수직구조가 해소되고 수평적 문화가 만들어진다는 건데 글쎄? 하여간 샐리니 탐이니 영어이름을 부르기도 하고, 이름에 님을 붙이기도 하고, 매니저로 부르기도 하더라만 그중에서도 유독 거슬리는 것이 있는데 바로 프로라는 칭호다. 


수평적 조직문화를 만들겠다는 취지야 이해한다. 각자의 분야에서 프로페셔널이 되라는 뜻까지 더했다면 훌륭하다. 그런데 어쩐지 프로라는 호칭을 쓰는 조직치고 말만 프로지 세미프로에도 못 가는 사람들 천지인 데다 수평문화 근처에도 못 가는 경직된 문화가 더 부각되는 것을 보면 호칭 문제는 아니지 싶다. 모두가 서로를 김프로 이프로 부르며 '프로'라는 단어가 소비되는 동안 그 안에 담긴 본질은 얼마나 퇴색되거나 희화화되고 있을까?


내가 회사를 그만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내 분야에서 프로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바로 조직문화라는 영역에서의 프로, 또 하나는 글쓰기라는 영역에서의 프로다. 조직문화의 경우 직장경력 16년 포함, 20년째 몸담고 있지만 프로라기에 부족하다. 글쓰기 역시 약 3년 6개월여간 500여 권의 책을 읽고 2000페이지가 넘는 글쓰기를 통해 책도 2권 냈지만 미흡하다. 두 영역 모두 후하게 쳐줘서 세미프로다.


내 분야를 정해 깊이 있게 들어갈수록, 프로라는 단어의 무게감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고 감히 스스로를 '프로'라며 참칭 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되었다.


프로가 뭐냐? 묻는다면 그 답은 비교적 심플하다. 글을 쓰는 작가든, 운동선수든, 가수든 각자 속한 영역(필드)에서 요구되는 퍼포먼스를 이행해 균질한 결과물을 내고, 그로 인해 돈을 받는다면 프로다. 그 분야에 필요한 기능, 기술의 숙련 수준을 넘어 워크에식(Work ethic), 자신의 일을 대하는 태도에서 프로와 아마추어는 명확히 갈린다. 흔들리고 실수를 할지언정 고객 앞에서 티 내지 않고 그 즉시 자신을 추스르며 균질한 결과물을 언제 어디서든 낼 수 있어야 한다.


베스트셀러 작가 세스 고딘은 프로의 본질을 정확히 지적한다.

프로는 날짜나 환자, 고객과 무관하게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싱어송라이터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이 무대에서 지친 모습으로 무릎을 꿇고 조수의 부축을 받은 것은 실제 상황이 아니라 뛰어난 연출이었다. 매일 저녁 그런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균질한 실력과 최고 수준을 지향하는 마인드를 갖추지 못한다면, 컨디션 타령이나 하며 핑계 일색이라면 아마추어다. 기껏해야 세미프로일 뿐이다.


나는 국내 경연 예능의 시조 격이라 할 수 있는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진짜 프로가 뭔지 배웠다. 직관적인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당대의 내로라하는 프로 가수들이 청중평가단 앞에서 공연을 하고 점수로 순위를 가리는 '민감한' 시도였던 만큼 그 화제성 또한 대단했다. 시작도 전에 음악계는 물론 각종 호사가들이반대의사를 밝히며 '예술가이자 프로'들의 결과물은 취향이고 그에 따라 즐기는 것이지 줄 세우고 평가하는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날을 세웠다.


가수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일찌감치 참여를 희망한 가수도 있었고, 예술을 상업으로 희화하는 프로에는 절대로 참가하지 않겠다며 보이콧을 선언한 가수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과열된 찬반 논쟁은 [나가수]를 성공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시청률이 잘 나오자 거센 비난도 잦아들었다. 우리가 알만한 대가수들이 대거 출연해 각자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줬고 청중평가단이 시청자들도 전례 없는 프로들의 진검 승부를 지켜보며 귀호강을 누렸다.


무려 방영된 지 10년이 훌쩍 넘어 대다수 사람들의 뇌리에서는 잊혔지만, 나는 지금도 기회가 되면 이들의 공연 영상을 즐겨 찾는다. 진짜배기 실력파 프로가수들의 음악을 장르도 다양하게 라이브로 듣는 기회가 얼마나 될까? 검증된 프로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한곡 한곡 부르는 노래는 마치 공연현장에 있는 듯 TV스크린을 넘어 그 열기가 전달되고 때로는 말할 수 없는 감동에 젖기도 한다.


특히 7명의 가수들이 서로의 노래를 바꿔 부르는 에피소드가 인상깊은데, 분야를 넘어 경지에 달한 사람들끼리는 장르와 나이, 성별 따위에 구애 없이 자신을 먼저 낮추고 상대를 존중하며 별 말 없이도 서로 통하는게 있다는 진리를 어렴풋이 깨닫기도 한다.


가장 소름 돋는 장면은 리허설이든, 실제 공연이든 무대에 올라서면서 달라지는 가수들의 눈빛을 보는 순간이다. [나가수] 역시 태생이 예능 프로그램인 만큼 매니저 역할로 개그맨들이 등장하고 본 경연을 제외한 여타 에피소드는 헐렁한 듯 나사 빠진 듯 진지함을 빼고 풀어나가지만, '노래'라는 본업의 순간에는 공기의 흐름이 달라진다.


방금 전까지 웃고 떠들다가도 무대에만 올라서면 어떤 가수는 눈을 질끈 감고, 어떤 가수는 호흡을 고르고, 어떤 가수는 허공을 바라보며 순식간에 태도를 바꿔 자신이 부르는 노래에 몰입하는 모습은 존경심마저 들 정도다.


일찌감치 자신의 재능과 적성을 파악해 도달하고 싶은 목표를 정해놓고, 일반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끈질기고 고된 노력을 덤덤히 인내하고, 그 끝에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역량을 최대치까지 끌어내는 폭발적인 몰입을 습득하고, 그것으로도 부족해 한계를 넘어설 수만 있다면 자신을 낮추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닌 지적 허기를 품은 야수 같은 존재.


세미프로도 못 되는 대다수 아마추어의 눈에는 그들이 쌓아온 명성과 부가 먼저 보이겠지만, 삶의 아이러니는 그 둘을 먼저 앞세울수록 더 거기에서 멀어진다는 사실을 묵묵히 증명한다. 물론 어떤 성취 이후 성공의 경험에 취해 초심을 잃고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진 거만한 프로들도 수두룩하지만, 오랜 기간 대중의 사랑을 받고 팬덤을 형성한 진짜 프로들의 삶은 여간해서 무너지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


이들은 스스로를 프로로 칭하지 않는다. 더 높은 곳에 오를수록 아마추어의 자세로 자신을 추스르고 다듬고 자신도 경지에 다다랐으면서 또 다른 프로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프로라는 칭호는 너무나 무거운 것. 어찌 스스로 참칭 할 수 있을까?


참을 수 없는 아마추어 인생의 가벼움. 그리하여 나는 프로가 되기로 했다. 다행히 내 분야는 일찌감치 찾았다. 희망도 절망도 없이 그저 매일 한걸음씩 나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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