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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Oct 27. 2023

SKY면 다야? 우리 회사가 채용에 실패하는 이유

핵직구 포4심 인성면접 _ 錄 in

*1주전 매거진으로 올렸던 글을 연재 브런치북으로 전환하며 재발행합니다. 이미 보신분들은 스킵하셔도 좋습니다.


"리더가 해야 할 첫째는 올바른 사람을 버스에 태우는 것(과 올바르지 못한 사람을 내리게 하는 것)이다."

그 유명한 짐 콜린스의 말이다. 


우리는 올바른 사람을 우리 버스에 잘 태우고 있을까? 여기서 올바른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뜻하는 걸까? 각 기업마다 회사소개에 그럴듯한 인재상은 있지만 그저 액자 속 구호가 아닌, 정말 자신의 회사에 딱 들어맞는 인재들을 가려내고 있긴 한걸까?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의 일이다. 

"하, 학교도 좋고 똑똑한 애들이 뽑히긴 하는데, 문제는 어느 순간 비슷해진다는 거예요. 위에서는 다양성이니 도전정신이니 그런 애들을 뽑으라고 강조하긴 하지만 딱 보면 알잖아요. 아 말뿐이구나 뭐 그런... 합격자들을 막상 모아놓고 가만히 지켜보면 이란성 쌍둥이들인가? 싶을 만큼 하나같이 공부 잘하는 부잣집 도련님 스타일뿐이예요. 초반에는 물론 튀는 사람도 일부 있어요. 그런데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기존 사람들과 아예 동화되어 버리거나 애초에 그걸 못 견디는 몇몇은 그냥 나가버리거나. 늘 이런 식인 거예요."


대기업 ㅇ그룹, 그중에서도 메이저 계열사 T社의 채용담당자는 종종 자기조직의 인적 구성이 천편일률적이 되어버린 현실을 두고 이렇게 하소연했다. 


당시 취준생들에게 선호도가 높았던(지금은 포털, 플랫폼, IT등 빅테크 기업들에 그 자리를 뺏겼지만) ㅇ그룹은 주요 13개 계열사가 모여 대졸 공채를 진행했는데, 캠퍼스 리쿠르팅과 서류전형, 인적성검사까지 공동으로 진행하고 1,2차 면접은 각 관계사의 방식대로 진행하는 형태였다.


서류전형이 시작되면 일단 그룹 차원에서 배부된 대학 등급표부터 꺼내든다. S대는 전공에 따라 100~97점, Y대는 98~93점, H대는 95~90점 이런 식이다. 대학과 전공으로 사실상 서류 스크리닝을 해온 셈이다. 실무자 입장에서 굳이 변명을 해보자면 전형마다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수천 장씩 밀려드는 서류를 각 사 담당자가 처음부터 꼼꼼히 살필 물리적 여유자체가 없었다는 정도겠지만, 사실 그보다는 그룹 높으신 분들의 핵심인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작용했다는 점이 더 설득력 있다. 


캠퍼스 리쿠르팅 역시 그 지침에 따랐다. 처음에는 대학별 급을 나눠 인서울, 수도권 등 주요 12개 대학과 지방 주요대를 찾아 나름 광범위한 채용설명회를 하더니 어느 해부턴가 서울지역 최상위권 6개 대학과 지방 거점 국립대로 범위를 좁혔다. 


애초에 대학과 전공으로 줄을 세우고, IQ테스트나 다름없는 인적성 시험으로 한번 더 거르고, 면접 과정에서 명확한 역량, 인성 검증의 기준도 없이 첫인상과 면접관 자신과 비슷한 궤적을 가진 지원자들을 선택적으로 뽑아왔으니 마치 체로 걸러낸 듯 최종 합격자의 프로파일이 다양성을 잃고 획일적이 될 수밖에. 


지금은 좀 변했을까? 

"아유 요새는 블라인드 면접이다 뭐다해서 노골적인 학연 지연 어림도 없지요."

정말 그럴까? 공기업을 기준으로 본다면 어느 정도 사실에 가깝다. 일부 메이저급 공기업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공기업 채용에서 SKY출신 합격자들의 비율이 유의미하게 낮아졌고 비수도권 출신 합격자 비중이 늘었다는 통계는 이를 어느 정도 증명한다. 이 결과는 채용 과정에 대학 이름의 후광효과, 이른바 인지편향이 작동됐다는 반증과 다름없다. 

최운열 의원 보도자료, 2019

사실 블라인드 채용 역사는 길지 않고 그 결과의 유의미한 통계 자료조차 변변치 않다. 정책기조에 따라 일사불란 블라인드 채용을 채택한 공기업 대비 사기업의 경우 여전히 기존의 채용 방식을 고집하는 곳도 많다.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학벌, 성별, 심지어 연령도 보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이 유행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주류 대기업과 경영진은 학벌 위주 엘리트론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좋은 인재를 검증하기 위해 학벌을 확인해야 하고, 학벌 수준에 따라 실무 능력에 차이가 있다는 채용 주체의 신념 또한 여전하다.

개인적 친분으로 들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사기업의 경우 블라인드 채용 도입 후 오히려 SKY 및 주요 대학 출신 합격자 비중이 높아진 경우가 더 많았다. 실무자들은 이렇게 반론한다.


"뽑아놓고 보니 명문대생들인걸 낸들 어떡하란 말인가?" 


오히려 출신 대학의 이름을 가리고 선입견 없이 검증된 우수한 인재라는 증거 아닌가? 라며 열변을 토한다. 충분히 타당한 이야기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채용과정이 기존의 엘리트론에 끼워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학 이름만 감췄을 뿐, 전형과정 전체에서 명문대 특정 전공 출신을 엘리트로 정의하고 그들을 판별해 내기 용이한 방법론이 알게 모르게 운용되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은 가시지 않는다. 


뭐 좋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우리 조직의 가장 적절한, 그러니까 right person을 우리만의 기준으로 판단했고 선택했다는 데 누가 뭐라겠는가. 개인과 회사 모두에 시너지를 내어 양쪽 모두 나날이 경쟁력이 높아지고 그럭저럭 좋은 회사에서 차츰 위대한 회사로 발전해 간다면 일부 공정성의 우려에도 탁월한 선택으로 볼 법도 하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16년간 기업현장에 있을 때도, 퇴직 후 4년을 야인으로 지내며 사람과 조직을 공부하는 동안에도 우리 기업들이 사람을 잘 뽑고 그들이 그 안에서 즐겁게 일하고 함께 쑥쑥 성장하고 있다는 시그널은 좀처럼 찾기 힘들었으니 말이다. 


비록 개인적 경험이라봤자 일개 그룹 사례에 불과하고 전체를 모두 훑을 수는 없지만,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들려오는 다양한 조직의 목소리들은 여기저기 앓는 소리뿐이다. 되려, "회사는 전쟁터, 밖은 지옥" 밈 meme이 돌고 "회사 생활은 다 그런 것"이라는 체념이 직장인들 사이에 만연해졌다는 시그널은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포착된다. 평생직장이란 개념은 진작에 사라진 지 오래고, 취업난이 심하지 않았던 해가 과연 있긴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틈만 나면 구조조정 소식이 끊이지 않는 기업현실을 감안하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회사가 전쟁터라니. 나는 이 말이 끔찍하다. 내가 탄 버스의 목적지가 가슴 뛰는 여정 끝에 도달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의 땅이 아니라, 온갖 살상무기를 가득 싣고 적을 섬멸하기 위해 떠나는 죽음의 고지라도 된다는 말인가? 하루 8시간 이상, 20대 중후반부터 60대 초중반까지 인생 황금기의 대부분을 바쳐 일하는 내 일터가 진정 전쟁터와 다를 바 없다면 그건 차라리 비극이다. 


"에이 이봐, 세상 일이란 게 호락호락하지 않고,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비유적 표현을 했을 뿐인데 뭘 그리 호들갑이야?"


아, 그렇다면 안심하고 가슴을 쓸어내려도 될까? 그런데 어쩌나? 오늘날 회사 조직은 정말로 전쟁터와 다름없는 극한 경쟁과 그로인한 관계의 문제들을 가득 품고 있으니 말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세대와 성별, 직급을 막론한 수많은 직장인들이 이른바 '워킹좀비' 상태로 일하고 있지 않은가? 일요일 오전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해 월요일 출근길부터 극대화되고 금요일 오후부터 슬슬 되살아나는 '직업병'에 걸려있지는 않은가? 밖에서는 그렇게 창의적이고 개성이 넘치고 주체성을 뽐내다가도 일터에만 들어오면 거대한 톱니바퀴에 끼워진 부품을 자처하듯 나를 죽이고 억제하고 감추면서 시름시름 앓는 병든 닭 모양이 되는 병 말이다. 


2~30대, 신인류라는 Z세대를 중심으로 이런 현상은 도드라진다. 이들은 회사에 평생 충성할 생각도 없다. 언제든 새로운 기회가 있으면 떠날 준비가 되어 있고, 평생직장이 아닌 평생 직업에 더 익숙하다. 회사원이랍시고 뼈 빠지게 일해봐야 수도권에 집 한 칸 장만하기 어려운 현실을 뻔히 알고 있다. '인생 뭐 있냐?' 오늘 하루 Flex하고 인스타그래머블한 순간을 즐기는 일이 먼저다. 지금 다니는 회사와 팀원들에 충성심이나 각별한 애정이 생길 턱이 없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 난다고 이는 오롯이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회사는 거대한 사회적 가스라이팅의 온상이 된 지 오래다. '너는 생각하지 마. 시키는 일이나 잘해' '가만있으면 중간은 가' '다들 그렇게 살아'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지 과정이야 무슨 상관?' '회사가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다. 내몰릴 때까지 제 발로 나가지 마라' 따위 클리세들은 김치 싸대기를 날리는 막장 아침 드라마의 매운맛을 넘어선 지 오래다. 


회사에 경영위기라도 닥치면 숫자와 이성지능에 특화된 인간성 제로의 경영진은 당장 사람 자를 궁리부터 한다. 4~50대 차부장급 위주로 리스트를 짜고 목표를 확정한다. 몇 명을 자를 수 있는가? 구체적인 숫자는 인사담당임원, 인사팀장의 KPI가 되고 CEO까지 올라가면 '인력구조 개선'이라는 그럴듯한 실적으로 포장된다. 


오랜 시간 회사를 위해 헌신해 온 직원들이라 해도 예외 없다. 그저 할당 목표를 좌지우지할 인건비 지표로만 여길 뿐이다. 그 과정에서 S급, A급 인재들이 줄줄이 나가도 인건비 줄었다며 속으로 웃는다. 행여 누군가 자발적으로 퇴사한다는 소식이라도 들려오면 반색한다. 사람 귀한 줄 모른다. 


남은 사람들은 남은 사람대로 힘들다. 어제까지 함께 웃고 울었던 동료들이 떠나간 자리는 생살을 도려낸 것 같다. 그 자리를 지켜보자니 마치 자기 살이 베어나간 듯 아리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될 것' 이라는 냉소로 뒤바뀌는 건 시간 문제다.


돈에 눈먼 회사와 냉혈한 경영진들은 별다른 회복조치도 없이 상처를 서둘러 봉합하기 바쁘다. 두려움과 공포, 냉소와 불신의 시선을 이 악물고 외면한 채 손에 쥔 피묻은 성과를 자기들끼리 나누고 자축한다. 그렇게 생으로 덮인 부위는 차츰 곪기 시작해 안에서부터 썩어 들어간다. 정작 도려냈어야 할 진짜 환부에 더해 조직 전체로 번져간다.


그 어디에도 불러주는 곳 없는 B~C급 쭉정이들은 임원 입네, 팀장 입네 주요 보직을 꿰찬다. 어느 순간 지들 능력이 대단해서 그 자리에 오른 줄 착각하기 시작한다. 아부에 능하고 어느 줄을 타야 할지에는 밝을지언정 일을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잉여들 천지가 된다. 조직은 어딘지 모르게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평소 잘 돌아가던 루틴한 일도 실수가 잦아지고 왜 이렇게 되었는지 원인도 모르는 실패들이 하루 걸러 하루 일어난다. 심각한 대형 사고들도 잇달아 터진다. 나서서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진짜 원인제공자는 정치와 끈을 동원해 교묘하게 빠져나가고 누군가에게 덤터기를 씌워 책임을 전가한다. 실무 현장은 일할 사람이 없다며 아우성이다. 그나마 붙어 있던 고객들도 다 떠나가고 매출과 손익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경영진은 그때야 아차 싶다. 


부랴부랴 경력직 채용이다 뭐다 부산을 떤다. 나간 사람들의 인건비, 위로금을 아득히 뛰어넘는 스카우트비용을 지불하고 어렵사리 몇 사람을 데려온다. 그렇게 들어온 경력직들도 눈치가 있다. 자기 전임이 왜 나갔는지 그 비밀을 알아챈 순간, 좌불안석이 된다. 남아있는 B~C급 쭉정이들이 새로 굴러들어 온 돌을 반길리도 없다. 결국 새로 들어온 경력직들이 조직에 적응해 역량을 발휘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이들은 또 다른 기회가 오면 고민도 없이 냉큼 떠나고 만다. 


이런 현실 속에 인재를 새롭게 정의하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함께 성장하는 문화를 만드는 일 따위 남의 일처럼 들리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왜 이렇게 됐을까? 처음부터 채용이 잘못된 것일까? 채용은 잘했는데 들어와서 이상해 진 것일까?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일류 엘리트들을 고심해서 잘 뽑아왔는데 왜 이들은 기대에 닿지 못하고 조직은 점점 퇴화되고 고정관념은 고착화되고 동기부여가 안돼 볼멘 목소리는 커져 가는 걸까?




"당신의 진짜 실수는 대답을 못 찾은 게 아니야. 자꾸 틀린 질문만 하니까 맞는 대답이 나올 리가 없잖아. 왜 이우진은 오대수를 왜 가뒀을까? 가 아니라 왜 풀어줬을까? 란 말이야! 자 다시, 왜 이우진은 오대수를 딱 15년 만에 풀어줬을까....요?"

영화 [올드보이]의 결정적 장면. 오대수는 결국 15년 감금은 아무것도 아닌 끔찍한 복수를 이우진에게 당하고야 만다. 질문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왜 가뒀을까? 가 아닌 왜 지금 풀어줬을까? 에 집중해 답을 찾았다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미도와의 관계를 의심해 보고 이우진이 깔아놓은 치명적인 덫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대한민국 교육열이야 세계 최고 수준인 걸 세상이 다 안다. 대학진학률은 7~80%에 달하고 해마다 수십만 명의 학사 졸업자가 쏟아져 나온다. 일류대학을 나온 전형적인 엘리트들은 높은 IQ와 특유의 성실성, 집중력, 정답을 빠른 시간에 찾아내는 능력으로 사회 곳곳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특히 근면성실, 생산성과 효율성을 앞세운 제조업 중심의 비즈니스 환경에서 그 조합은 찰떡궁합에 가까웠다. 그들의 혁혁한 공을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문제는 판이 바뀌었다는 거다. AI니 플랫폼 비즈니스니 빅데이터니 이전에는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눈 돌아가는 경험이 날마다 쏟아지다시피 하는 세상이 됐다.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상상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질문을 던지고 이전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고 그러기 위해 나와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원하는지 그 입장에서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최소한 살아남는 세상이 됐다. 지적산업사회이자 가치소비의 시대로의 전환, 그 이전 기업세계의 종교와도 같았던 이성지능중심 엘리트 프로파일은 여전히 유효할까? 


오늘날 회사들이 처한 위기, 예컨대 인재확보와 유지를 포함한 각종 경영 난맥상에 빠지는 이유는 기존 인재에 대한 시대착오적 정의와 가정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백번 양보해 과거의 성공을 보장했던 이성지능 중심 엘리트 DNA는 전수되었을지 모르나 그 DNA가 지적산업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성으로의 회귀, 보다 고차원적인 가치소비라는 새로운 변화 앞에 무용지물이라는 뼈아픈 진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 결과 조직 전체에 만성적인 감성지능 결핍과 다양성 부족을 야기해 도태되고 퇴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극단적 결과주의와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는 행태가 일 잘하는 표준이 된 대가는 뼈아프다.


더 나은 세상, 함께 살아가는 사회, 환경, 지속 가능한 성장 따위 한 차원 높은 가치를 지향하는 기업들이 오로지 이윤과 생존에 집착하는 기업들을 압도하는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역량은 바로 인간에 대한 이해, 지능으로 치자면 감성의 영역이 된 지 오래다.


그런 점에서 기존 인재에 대한 가정은 명백히 시대착오적이다. 출신 대학 줄 세우기로 단순화시킨 반쪽짜리 인재들의 전성시대는 이미 흘러간 지 오래지만, 굴뚝산업사회를 거치는 수십 년의 기간 동안 회사 내의 주류로 성장하고 적층 된 이들이 의사결정권을 장악한 리더가 되고 경영진에 오르면서 아집과 무지의 형태로 오히려 강화되는 모양새다. 


물론 우리 기업들이 인성검증을 안 했다는 건 아니다. 문제는 검증의 방법과 활용이다. 인성 검증마저 또다시 시험의 형태로 치러지는 데는 두 손 두 발 다 든다. 그 결과는 기껏해야 참고용으로 활용될 뿐이다. 인성의 검증범위도 업무 스타일이나 우리 회사와 맞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정도로 이 경우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인성검증 근처에도 못 간다. 


인성면접 역시 문제다. 오늘날 수많은 기업의 최종면접이 임원들의 인성면접인데 인성에 대한 개념과 정의 그것을 판별할 구체적 근거와 평가 기준도 없이 그저 자신들의 과거 경험에 비추어 '괜찮은' 사람을 최종 선발하는 경우가 많다. 첫인상이 좋아서, 당황하지 않고 말을 잘해서, 딱 보면 아니까 따위 실제 인성과는 아무런 관련 없는 감으로 최종 결정을 내린다. 문제는 이성지능과 감성지능의 trade off 관계라는 데 있다. 어느 한쪽이 극도로 높으면 나머지 한쪽은 그에 반비례하는 경향성이 있다는 점이다. 결국 요식행위나 다름없는 임원급 인성면접은 머리만 좋고 인간성이 바닥인 썩은 사과들이 대거 회사로 들어오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더 늦기 전에 기업들의 인재에 가정과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누구를 뽑아야 할까? 가 아니라 누구를 걸러야 할까?라는 말이야."

"자, 다시,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인재란 어떤 사람들이고, 절대로 들여서는 안 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EQ연구의 선구자 다니엘 골먼은 "지적 능력이 비슷한 수준의 집단에서 누가 더 높은 지도력을 발휘할 것인지 예측할 수 있는 변별력은 다름 아닌 EQ에 있다"라고 단언했는데, 채용의 최종 결과는 결국 인성검증에서 판가름 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중지능 연구자이자,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 또한 "일상생활에서 인간친화지능보다 더 중요한 지능은 없다고" 거든다.


[앞서가는 조직은 왜 관계에 충실한가]의 저자 랜디 로스 역시 "감성지능이 더 높은 사람들이 이성적 지능, 즉 IQ가 높은 사람들보다 꾸준히 더 좋은 성과를 달성한다는 사실은 충분히 입증되었다"고 말한다. 


기존의 엘리트를 규정했던 스펙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스펙'만' 중요하다는 인식을 경계해야 한다는 말이다. 좋은 대학 출신이 우수한 인재일 가능성은 높지만 그 단면만으로 우리에게 맞는 인재인지 판단할 수 있다는 확신은 설득력이 매우 떨어진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인재는 마땅히 기존의 스펙과 숫자로 증명된 이성능력 + 결점 없는 인간성과 공감능력을 갖춘 감성의 영역까지 균형을 갖춘 사람으로 정의되어야 마땅하다. 


나는 확신한다. 오늘날 회사들이 조직 내에서 겪는 무수한 문제들이 인성이 결여된 엘리트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관계의 문제는 곧 팀의, 조직의, 회사 전체의 문제로 확산되고 결국 성과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한치의 흠도 없는 완벽한 성인군자를 뽑아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각자의 약점과 결점을 가진 불완전한 존재다. 그 엄중한 진리를 깊이 새겨 끊임없이 내면을 돌아보며 질문하는 자세야말로 이 시대가 원하는 인재상에 가깝다. 


스스로 잘났고 아무런 흠결도 없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실제는 그 반대일 가능성이 높다. 자신만이 옳다는 독선, 타인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는 오만, 감성보다 이성을 앞세운 얼음심장을 가진 엘리트들이 우리 주변에 여전히 수두룩하지 않은가? 


일터는 BF(Battle Feild 전쟁터)가 아니라 마땅히 PG(Paly ground놀이터)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텅 빈 마음으로 이성적 판단에만 능한 사람들의 비중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이성지능은 물론 감성지능의 균형을 갖춘 사람들로 서둘러 대체해야 한다. 




인성검증은 기업이 인재를 채용하는 과정, 프로야구에서 신인을 드래프트로 뽑는 과정, 기획사 오디션에서 trainee를 뽑는 과정 등 두루두루 사람을 뽑고 배치하는 일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 절차다. 


기술적 숙련도와 능력을 검증하는 것은 비교적 쉽지만, 무엇보다 내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들의 보이지 않는 부분, 인성을 철저히 검증하는 일이 어렵고 더 정교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건 두말하면 입아프다. 문제는 지적능력도 뛰어나고 인성까지 겸비한 사람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는데 있다. 인간의 인성을 검증하는 일에 정답이 있을 수 없고 단지 성향이 안맞거나 스타일이 다를 뿐인 사람을 인성 문제라며 배제하는 경우도 잦다. 조직의 다양성은 이 과정에서 심각하게 훼손된다.


절대적 기준은 없지만 비교적 객관화된 기준을 먼저 마련하고 윤리와 상식 선에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 적 본성에 대해 체크하고 검증할 수 있는 정도의 절차만 마련해도 채용 참사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적어도 머리만 좋고 인성이 파탄난 이들만 분별해 낼 수 있어도 조직 내 썩은사과 rotten apple 효과로 골치 썩을 일은 사라질 것이다. 인성 검증이 임원들이 감으로 요식행위 처럼 치러져서는 절대로 안되는 이유다. 


뛰어난 이성지능과 감성지능을 동시에 갖춘 균형 있는 인재는 분명 드물다. 그 절묘한 균형을 갖춘 이를 어렵게 찾아낼 수만 있다면 외쳐라. 유레카!라고. 혹은 심봤다 라고. 


문제는 어떻게 이들을 검증할 것인가? 다. 여기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살아 숨 쉬는 4단의 검증법을 소개한다.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


인간이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4가지 마음을 포심(4심)으로 명명하고 구체적인 질문과 예시로 인성면접 방법론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자 이제부터 새로운 시대의 인재를 새롭게 정의하고 포심 인성면접으로 검증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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