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릭스 leex May 21. 2024

마흔다섯, 나잇값

마흔다섯,

나잇값은 얼마일까?


나잇값이 뭔데?


글쎄,

어떤 나이를 들었을 때 의례 그려지는

위치(사회적, 경제적),

삶의 태도,

몸과 마음의 상태,

생활 수준

따위의 총체가 아닐까?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어디 한번 헤아려 볼까?


직업적으로는

연봉은 대략 7~8000 사이

직급은 차장~부장 사이

직책은 파트장~팀장 사이

딱히 전문성은 없는 제너럴리스트 관리자


사회적으로는

직장 내 중간 이상 위치에서

선배보다는 후배들이 더 많고

한 두 단계 남은 임원으로의 승진보다는

정리해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아

뒤늦게 정치에 기웃거리자니

이미 답은 나왔고

(타고난 사내정치 달인들이 저만치 앞서나간 사이)

반은 포기하는 심정,

가늘지만 길게만 가자는 각오로

하루하루를 보내


때때로 불안감이 밀려와 밤잠을 설치기라도 하는 날엔

자기계발을 하기로 굳게 마음먹고

영어나 중국어를 익혀볼까?

아니지 몸 관리부터 해볼까?

이것저것 알아보지만

막상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야근에 회식에

도통 틈을 내기 힘들어


에라이 주변이 안 도와주네 내년을 기약하자  

포기하면서도 내심 안도하는 마음은 또 뭔가


가정적으로는

수도권 20~30평형대 아파트에 살면서

2000cc 이상 중형차를 몬다

결혼 10년 이상된 배우자와는

룸메이트 같은 사이가 된지 오래

중학생~고등학생 사이 사춘기 자녀를 뒀고

대출 상환으로 수입의 약 2~30%가 빠져나가고

아이의 학원비며 교육비까지 합치면 50% 이상을 훌쩍 넘어


퇴근하면 천근만근 된 몸부터 누이고 봐

주말이면 소파에 한 몸으로 눌어붙어

아침이 저녁인지 저녁이 아침인지 구분 없는

이틀을 보내지


아이와의 시간이 부족하다며 핀잔을 듣지만

어쩌나? 나도 살아야 하니까


신체적으로는

정기검진 때마다

혈압, 혈당, 혈중 콜레스테롤이 돌아가며 문제다

종종 지방간, 부정맥도 보인다네?

얼굴은 붉은 대춧빛이 됐고,

코 옆 팔자주름과 미간의 골은

에베레스트 크레바스 마냥 깊어졌어

팔다리는 가늘어지고 뱃살은 줄어들지 않아

ET체형으로 변해가

밤새 술을 마셔도 다음날 멀쩡했던 2~30대와는 달리

소주 한 병에도 다음날 하루 전체가 힘들어


마흔다섯,

나잇값

대략 이런 모습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한 두 가지만 빼놓고는

딱 나였다


이모저모 뜯어봐도

그 값에 희망, 성장, 두근거림 같은

밝은 미래가 깃들었을 리 없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

자조로, 합리화로

어느 순간 마흔의 나잇값에 갇혀 버린꼴 이랄까


그러고 보니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그런 삶을 선택해 온 건 나 자신 아닌가


얼마든지,

다른 삶을 선택해 살 수 있었지만

조금 더 편한, 이미 만들어진, 선례가 있는

그런 길을 스스로 선택한 대가는 꽤나 크다


대한민국 평균 기대수명 90세 시대

정신 차려 보니

아직 여생이 절반이나 남았다


정신이 번쩍 든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 순 없지 않은가


"반환점을 돈 이후로는 새로운 에너지, 동력으로 뛰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완주를 할 수 없어요"

어느 마라토너의 이야기가 마음을 때린다


나는 내게 맞지 않는 옷을 벗어던지기로 한다

글쓰기를 인생 후반의 동력으로 선택하고

퇴사를 결정한 그때


공교롭게도

마흔다섯이 되던 해였음은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곧 쉰을 향해 간다

그때의 나잇값은 또 어떤 모습일까






작가의 이전글 마흔여덟, 죽음을 준비할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