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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Dec 02. 2022

이 길이 맞나? 턱! 막힐 때 읽는 두 남자 이야기

버티는 힘

"죄송합니다. 이번엔 어렵게 됐네요."

무명 배우는 오디션에 떨어졌다. 겨우 두어 장면에 불과한 지나가는 행인 역할,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했건만 속이 쓰리다. 터덜터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 '삐삐~' 음성메시지가 도착했다.


<조금 전 오디션 보셨죠? 저는 그 영화의 조감독입니다. 선생님 연기를 인상 깊게 봤습니다. 저도 지금 영화를 배우는 입장이라 오디션 결과에 의견을 낼 수는 없지만 언젠가 제가 영화를 만든다면 선생님을 꼭 캐스팅하고 싶습니다.>


공중전화에서 메시지를 확인한 무명 배우는 마음을 써준 초짜 조감독을 마음에 담았다. 그리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출연 요청이 오면 반드시 함께하겠노라고 다짐했다.


시간이 흘러 그날의 무명 배우는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거듭났다. 첫 번째 영화에서 실패하고 두 번째 영화를 찍게 된 초짜 조감독은 그날의 무명배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날의 무명 배우는 그날의 초짜 감독 영화에 두말없이 출연을 결정했다. 


무명 배우의 이름은 송강호. 초짜 조감독의 이름은 봉준호였다.


그렇게 탄생한 영화. 


[살인의 추억]


"성공한 사람 대부분은 중도 하차 유혹을 이겨낸 사람들이다."

[하버드 회복탄력성 수업]에서 게일 가젤은 말했다.


탄탄한 연기력으로 어느 날 갑자기 조명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수많은 배우들은 공통적으로 지독한 무명의 시기를 겪었다.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십수 년을 오직 연기라는 열정 하나로 버티어낸 사람들이 결국 포텐을 터뜨리는 규칙성이 있더라는 말이다. 생활고라는 현실에 부닥쳐 대부분은 떨어져 나가고 어느 순간 돌아보니 그 정도로 연기를 하는 사람들이 몇 없더라는 귀결. 


그다음은 운의 작용이다. 연기력 하나로 어찌어찌 캐스팅되었는데 그 영화가 난데없이 1000만 영화에 등극하게 되면 '괴물 조연'으로 재조명된다. 워낙 그 등장이 갑작스럽다 보니 어느 날 갑자기 솟아난 벼락 스타, 기적 따위 문구가 따라붙지만, 사실은 지독한 무명의 과정을 묵묵히 감내해온 결과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미 실력으로 탄탄히 무장했고 무명 시절을 거치며 마인드마저 단단해졌기에 그 기적은 결코 1회성으로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익히 아는 수많은 명품 주연, 조연배우들이 그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오랜 무명 시절 끝에 비로소 빛을 보게 되었지만 자신의 진가를 알아봐 준 초짜 조감독을 잊지 않고 그의 캐스팅에 흔쾌히 응한 송강호의 초심 또한 그의 롱런을 뒷받침한다.


제작자로서 나름 엘리트 코스를 거친 봉준호 역시 어쨌든 초짜 조연출 시절의 경험과 첫 작품의 실패(플란다스의 개)라는 시련을 겪었다. 그 시간들은 분명 그의 실력과 내면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오디션에 떨어져 축 처져 돌아가는 무명 배우를 진정성 있게 지켜보고 위로를 건네고 주연으로 발탁한 스토리 하나로도 그는 평범한 이들과는 분명 다른 결을 지녔던 셈이다.


각자의 페르소나가 된 콤비는 단순한 성공을 넘어 이제는 칸과 세계가 주목하는 거장이 되었다. 이를 우연이라고 볼 수 있을까? 단지 운의 작용이라고 폄하할 수 있을까? 수도 없는 단역 오디션에서 떨어지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던 무명 배우는 먼 훗날 자신이 칸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을 것이라 상상이나 했을까? 첫 영화를 말아먹고 어느덧 제법 이름이 난 왕년의 무명배우에 연락하기를 주저하던 초짜 감독은 먼 훗날 자신이 칸에서, 아카데미에서 대상을, 작품상을 거머쥐는 거장이 될 것이라 짐작이나 했을까? 


영화를 보는 맛은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의 명품 연기에서 생긴다는 사실을 이 두 사람을 통해 깨달았다. 거장이란 말이 괜히 붙는 게 아니구나! 무릎을 쳤다. 차츰 칸이니 아카데미니 휘황찬란한 결과가 아닌, 그 둘의 어두웠던 시간에 마음이 쓰였다. 강력한 생명력을 가진 씨앗이 되어 내면 어딘가로 들어왔다.


봉준호나 송강호 같은 한 분야의 거장이 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지만 아니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일단 내가 몸담고 싶은 분야를 정했다면 그 안에서 끝장을 보겠다는 각오 정도는 기본이 아닐까? 싶었다.


그럭저럭 살아가는 보통의 인생이 도무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머지않아 회사라는 배경을 벗고 맨몸으로 광야에 서게 될 늙고 초라한 '나' 가 그려졌다. 마침 원래 하던 일에서도 쫓겨나 마케팅이라는 맞지도 않는 옷을 입고 멀뚱히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대로도 괜찮을까?

내 이름값만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퇴직금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때마침 희망퇴직 공고가 붙었고 그 당일로 퇴직을 결정했다.


하루하루 언제 빛이 닿을지 알 수 없는 축축한 어둠 속에서 축적의 시간을 오롯이 홀로 견뎌내는 일의 연속. 따박따박 들어오던 월급이 끊기고 매일 마주하던 이들과의 관계가 끊겨 고립되고 결과를 알 수 없는 극단적 불확실성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다. 꾸역꾸역. 그렇게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그 과정은 진행 중이다. 빛이 닿은 것도 아니고 완연한 어둠 속에 있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이지만 단단히 벼려진 실력이라는 근육은 한번 거머쥔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은 생겼다. 무명을 견디는 일, 어디 영화계나 연예계뿐일까? 


성공은 그렇게 살아남은 최후의 생존자에게 주어지는 단순무식한 게임의 열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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