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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Aug 05. 2024

[신입의 직격] 저 복사하려고 입사한 거 아닌데요?

Ⅰ장. 直격_ 자기관리 1_ 기본기

지금이야 한류가 대세라지만 1980년부터 1990년대만 해도 홍콩 영화가 꽤 붐이었어. 주윤발, 유덕화, 장국영, 양조위 등 중화권 스타들과 영웅본색, 천장지구, 화양연화, 첨밀밀 등 감성충만한 명작들이 많았지. 쿵후 영화도 유행했는데 그중 성룡이 나오는 <취권> 이란 영화는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어



부모님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였던가? 그 이유가 가물가물 하지만, 20대의 젊은 성룡은 무술을 배우기 위해

고수를 찾아 헤매다가 길거리에서 동네 불량배들과 어떤 노인의 싸움을 목격하지. 코가 빨갛고 왜소한 주정뱅이였는데, 글쎄 노인네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도 우락부락한 동네 불량배들을 가지고 노는 거야. 성룡은 대번에 무술의 고수임을 알아봤지. 순식간에 불량배들을 제압하고 비틀비틀 어디론가 떠나는 노인네를 따라가서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해


"제자로 받아주세요"


그렇게 산속 오두막 노인의 집에서 제자 생활을 하게 된 성룡은 하루종일 술만 마셔대는 주정뱅이 스승을 대신해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 하게 돼. 물 길어오기, 밥 짓기, 청소하기, 빨래하기, 장작패기 등등. 아무리 일을 해도 집안일은 끝이 없고 이 생활도 어느덧 3년이 훌쩍 넘은 거야


내일 내일 하던 무술 수련은 한 게 없고 시간만 버렸다고 생각한 성룡은 배운 게 없으니 이제 떠나겠다고

폭탄선언을 해. 그동안 생활 속에서 밀착해 성룡을 지켜봐 왔던 스승은 그제야 이렇게 말하지


"이제 때가 되었으니 내 비기를 전수하지"


그 이후 스토리는 뻔해. 3년 간의 집안일은 사실 혹독한 무술수련을 위한 기초체력을 다지고 마음가짐을 단단히 하려는 사전 테스트였고 본격적인 무술 수업을 통해 성룡은 취권의 고수가 되어 마침내 부모의 원수를 찾아내 복수에 성공했다나 뭐라나


드라마 <미생>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어.


S대 출신 장백기는 늘 자신만만해. 원인터 인턴을 마치고 최종 합격해 철강팀에 정식 발령을 받고 의욕 만땅이야. 그런데 한 달 가까이 사수 강대리가 자신에게 그럴듯한 일을 주지 않자 화가 난 상태야. 하다못해 고졸 낙하산 장그래도 영업 3팀 사업에 한 사람의 팀원으로서 당당히 한몫하는데 말이야. 준비된 인재인 자신을 방치하는 이유는 그저 자신이 싫어서라고 지레 짐작해. 어쩌면 팀 에이스인 강대리가 자신을 시기, 경계해서 그렇다고 생각하기에 더 반발하는지도 몰라. 그래서일까? 어느 날 장백기는 강대리를 정면으로 들이받아


"... 전 사업을 만들려고 왔습니다. 정산해 주고, 표 만들고, 데이터 뽑고, 오타 체크하려고 이 회사 들어온 거 아니란 말입니다. 이런 잡일은 인턴 때 충분히 했고... 이젠 실무를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는데요... 지금은 배울 때가 아니라 써먹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철강팀 에이스 강대리는 물끄러미 격앙된 장백기를 바라보다 이렇게 한마디 해


"장백기 씨는 일을 꽤나 크게 만드는 스타일이군요? 주목받고 싶어 하는 스타일이거나... 나는 아직 장백기 씨가 충분히 교육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강대리는 정말 장백기를 방치한 것일까?


이날 이후 본격적으로 이직 준비를 하는 장백기. 그런데 장백기가 처리한 일들이 줄줄이 문제가 생기거나 펑크가 나거나 오류가 생겨. 그 이유는 늘 그렇듯 그놈의 '기본기'가 부족했기 때문이야. 회사의 일처리 방식, 시스템, 하다못해 작문실력까지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차원이 다른 회사 조직의 '기본기' 문제가 속속 발목을 잡고 장백기는 비로소 '정말 내 기본기가 충분하지 않은 걸까?' 돌아보게 돼


결국, 장백기는 스스로 부족했음을 인정하고 원인터에 남게 된다는 뭐 그런...




골프를 배울 때도 가장 기다랗고 강력한 힘을 실어 공을 멀리 보낼 수 있는 드라이버를 먼저 배우지 않아. 7번 아이언을 붙잡고 시계의 똑딱이 추처럼 왼쪽 오른쪽 스윙을 반복하는 기본자세부터 3개월 동안 연습하지. 이걸 하다 보면 내가 이거 하려고 골프 배우나? 싶은 자괴감이 들 때도 있어


그렇지만 그 과정을 이겨내고 몸에 완전히 익은 기본자세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스윙폼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어 변형된 형태의 응용 동작도 큰 어려움 없이 해낼 수 있게 돼


무술이건, 회사생활이건, 하다못해 취미를 위한 스포츠를 배우건 그놈의 기본기를 탄탄히 익힌 사람이야말로

일정 수준 이상으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한편으론 모르는 것 같기도...)


성룡이나 장백기가 아니라도 스스로를 조금씩은 과대화해서 보는 인간의 성향상 기본기 부족을 선뜻 인정하고 시작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면접 상황에서 단골 멘트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할 수 있습니다"

따위 각오도 그런 과대화된 자신감에서 비롯하지만 실제 입사 후 처음부터 주어진 일을 기본기에 충실히 흔들림 없이 해내는 신입들은 정말이지 드물어


나 역시 신입시절 '기본기가 부족하구나'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아. 그다지 뛰어난 스펙도 아니고 스스로 대단한 능력자라는 착각에 빠져 있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오히려 무식하면 용감하달까? 멋모르고 일을 저지르는 경우는 종종 있었어도 말이지




죽었다 생각하고 기본기부터 철저히 다져

기억하지? 내가 뭘 모르는지 조차 모르는 상태, '더닝-크루거 효과'

대다수의 신입들은 바로 더닝-크루거 상태에 놓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그렇게 회사에 입사하고 '뭘 모르는' 신입의 시간을 지나 5년 차, 10년 차, 15년 차 그리고 퇴사 후 5년 차

시간이 지나면서 비로소 깨닫게 되지. 신입일수록 일 크게 만들지 말고 묵묵히 제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주어진 일을 최고로 잘 해내는 일이야말로 조직과 리더가 바라는 바라는 사실을


장작을 패고,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복사를 하고, 회식비 정산을 하고, 오타를 체크하고, 도표 만들기를 최선을 다해 해내는 일이야말로 더 큰 업무적 도전, 성취는 그다음의 일이라는 걸


알지? 누군가는 지켜보고 있다는 거. 노려보고 있다는 거 말이야. 하다못해 복사를 할 때 서 있는 자세, 밥을 먹을 때 팔 각도, 술자리에서 취중 농담과 진담까지 '쟤 신입인데..'라는 머리표로 시작한다는 사실을


뭐? 모르겠다고?


괜찮아.  최소 모르는지도 모르는 상태는 벗어난 셈이니까. 20년 전의 나보다는 확실히 한 발 앞선 거니까


격을 다 익힌 후에야 파격은 비로소 가능해 

신입들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로 '창의력'을 이야기하지만, 기본이 안된 이들에게 파격은 무리야. 파격(破格)이 뭐야? 격을 깨부수라는 거잖아. 그런데 격자체를 갖추지 못했다면 대체 뭘 깨뜨려야 하는 걸까?


내 스타일대로, 내 맘대로 해보고 싶지. 숨좀 돌리고 나면 뭔가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것도 보일 테지. 그래도 먼저 해야 할 일은 묵묵히 내 격을 쌓는 일이야. 일단 주워 담는 거야. 종류도 가리지 않고 무조건 받아들이고 습득하고 익히다 보면 어느 시점부터 보는 눈, 즉 안목(眼目)이 생기고 무엇이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 가려낼 수 있게 돼


머릿속에 든 것이 많을수록 이리저리 연결할 재료들도 많아지고 이것저것 연결해 보는 과정에서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이 팍! 하고 떠오르는 것이야말로 '창의력'의 본질이야


그러려면 격을 먼저 익혀야 하고 격에 완전히 통달할 수 있어야 해. 아무리 어설프고 허술해 보여도 기업 조직의 헤리티지는 허투루 이어져 온 게 아니야. 그 나름의 사유와 효율을 가진 결과물이거든


복사든, 청소든, 커피 타기 든 그 행위 자체보다 그 일을 대하는 자세랄까 마인드를 빗대어 본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돼. 뭐든 주어진 건 최선을 다하고 일정 기간 묵묵한 인내의 과정을 거친 후 비로소 안목이 생겼을 때, 일의 경중을 가려 내 것을 취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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