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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Oct 02. 2024

[신입의 직격] 마스터가 되고 싶어? 3F 하라

Ⅲ장. 職격 _ 소프트웨어 2_ 의도된 노력

'1만 시간의 법칙'을 들어봤을 테지?


어떤 분야든 마스터가 되려면 약 1만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개념으로 말콤 글래드웰의 글로벌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를 통해 대중화되었지. 이 법칙은 재능보다는 꾸준하고 집중된 연습의 중요성을 강조해서 큰 반향을 일으켰어


'1만 시간'은 실제 어느 정도일까? 평범한 직장인의 근무시간을 기준으로 러프하게 계산을 해보자고


하루 8시간, 주 40시간, 월 200시간(통상임금 산정기준은 209시간이지만) 근무를 기준으로 하면 1년 2,400시간, 4년이면 9,600시간으로 1만 시간에 가까워져. 4년 정도를 한 분야에서만 일한다면 마스터가 되기 위해 필요한 시간 최소치도달한다는 의미가 돼. 일단 단순계산은 그렇지


벌써 감이 올 거야. 하루 8시간, 주 40시간, 월 200시간이 오롯이 한 분야의 마스터로 성장하기 위한 시간으로만 꼬박 채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신입으로 한 부서에 들어가 4년 이상을 내리 근무하는 경우도 드물지. 특히 일반 사무직의 경우 특정 직무 스페셜리스트 육성을 위한 Track이 별도로 있지 않는 한, 3년 정도면 다른 팀으로 이동하는 transfer 정책이 흔해. 자의든 타의든 한 부서에서 3년 이상 근무할 가능성이 높지 않단 말이야


더구나 하루 8시간을 빈틈없이 일만 하는 것도 아니야. 제 아무리 성실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의자밑에 스톱워치를 달아두고 초, 분단위로 업무 시간을 재보면 손실이 나올 수밖에 없어. 올해 시행한 직장인 근무실태 조사결과가 재밌는데,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업무 중 평균 1시간 20분 정도를 딴짓에 쓴다는군. 언론매체마다 보도자료로 쫙 풀렸더라고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40310/123898724/1

이 기사를 보며 웃을 수밖에 없었어. 고작 1시간 20분 딴짓을 한다고? 정말 그럴까?


2018년 영국에서 실행한 직장인 실태조사 결과를 한번 보자고

https://www.vouchercloud.com/better-living/office-worker-productivity

Survey Reveals Employee Productivity Averages 2 Hours and 53 Minutes a Day


이 조사에서는 직장인들은 평균 2시간 53분 정도만 집중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어. 2시간 53분을 딴짓에 쓴다가 아니야. 즉 하루 8시간 기준, 5시간 이상을 다른 일에 쓰거나 건성으로 일 하고 있다는 의미지


한국인이 영국인보다 표면적으로 2배 이상 성실해서일까? 아니면 불과 6년 사이에 갑자기 사람들이 급격히 성실해진 걸까? 국가와 조사 연도의 차이를 감안해도 직장에서 고작 1시간 20분을 딴 짓에 쓴다는 최근 조사 결론이 선뜻 납득되지 않은 건 기분 탓일까?


통계든, 실제 측정결과든, 감이든 확실한 사실은 주어진 근무시간 내내 한치의 빈틈없이 일에 몰입하지는 않는다는 점이야. 못해도 1시간 20분 이상(많이 미심쩍지만), 많으면 5시간 이상을 딴짓에 쓴다는 게 팩트 아니겠어? 단순히 어떤 분야에 1만 시간을 물리적으로 쓰는 일만 해도 이렇게 어렵다는 이야기야


더 큰 문제는 어찌어찌 한 분야에서 1만 시간을 채웠다 해도 마스터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점이야. 말콤 글래드웰이 주장했던 '1만 시간의 법칙'에는 큰 오류가 있기 때문이지


원래 '1만 시간의 법칙' 원조는 안데르스 에릭슨 이라는 스웨덴 출신의 심리학자야. 에릭슨은 [1만 시간의 재발견]이라는 저서를 통해 공개적으로 말콤 글래드웰이 주장한 1만 시간의 법칙 '용례'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했어. '의도된 노력'이 아니라면 수동적으로 채워진 1만 시간은 큰 의미가 없다고 못 박았지


'의도된 노력'이란, 단순히 잘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프로의 위치에 도달하겠다는 선명한 목표를 가지고 3F(집중Focus, 피드백Feedback, 수정Fix it)의 순서로 반복되는 연습을 뜻해. 연습 과정을 효과적인 분석이 가능한 구성 요소로 잘게 쪼갠 다음, 강점은 강화하고 약점은 바로잡는 '전략적'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는 일이지. 이때 멘토가 있어 이 과정을 함께 해내갈 수 있다면 그 효과는 배가돼


말콤 글래드웰은 '재능보다 노력이 우선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려 '1만 시간의 법칙'을 거론했지만 에릭슨은 여기에서도 조금 다른 생각인 듯 해. 일단 적성에 맞아야 한다는 거야. 각자 자신에게 맞는 일이 따로 있다는 의미지. '의도된 노력'을 하기로 마음먹어봤자 그 일이 자신의 적성에도 맞지 않고 재미없고 지겹다면 1만 시간은커녕, 10시간도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야. 마스터에 도달하려면 우선은 자신에게 적합한 영역field부터 찾는 일이 먼저인 이유야


그다음은 일상에서 '의도된 노력'을 할 자세와 준비를 갖추었는가? 의 문제야. 직장생활 중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할애하기란 결코 녹록지 않아. 그래서 이왕이면 내가 원하는 분야에 배치되어 되도록 오랜 기간 머물며 일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게 좋아. 그게 아니라면 오롯이 내 시간을 쪼개서 '의도된 연습'을 위한 시공간을 따로 만들어내야 하는데 생각처럼 쉽지가 않아


자기 계발을 한답시고 주 2~3회 퇴근 후 1~2시간씩 회화학원에 다닌다거나 독서토론에 나가는 정도로는 턱도 없어. 어떤 분야든 정해지면 먼저 마스터가 되겠다는 강력한 목표의식을 설정하고 매주 최소 5회, 퇴근 후 4시간, 5년 이상을 할애해 지속 가능한 루틴을 만들어야 하는 일이야




요즘 전 세계에 한류 바람이 거센데, 200여 년 전 조선 시대에 이미 한류가 있었다면 믿어져? 그 주인공은 바로 추사 김정희야. 김정희는 명문가 귀공자로 태어나 이린시절부터 글과 글씨에 탁월했어. 아버지인 김노경을 따라 당시 세상의 중심이었던 청나라에 자제군관 신분으로 따라가면서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게 되지


당시 청나라 최고 학자였던 옹방강, 완원으로부터 그 재능을 인정받아 가르침을 받기도 했고 수많은 청나라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어. 이후 과거에 급제해 병조참판에 이르기까지 승승장구하는 동안 청나라에서 김정희의 이름은 가히 한류 스타급이 됐어. 김정희가 청나라에 가면 그를 만나기 위해 청나라 학자들이 줄을 서고 그의 글씨를 얻기 위해 청탁을 했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왕의 외가인 엘리트 집안, 타고난 재능, 국제적 경험까지 삼박자를 갖춘 김정희의 앞날은 탄탄대로일 것 같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에 발목이 잡혔어. 재능에 비해 까칠한 성격, 스스로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이 독이 됐을까? 주변에 적들이 많았던 모양이야. 효명세자가 죽고 안동김씨가 권력을 잡자 반대세력의 타깃이 되어 모함을 받고 모진 고문 끝에 긴 귀양살이가 시작돼


제주도에서의 귀양살이는 무려 10년 동안 이어졌어. 귀리안치, 탱자나무로 둘러싸인 초가에 가택연금된 김정희가 그 안에서 한 일이라곤 책을 구해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뿐이었어. 추사의 글씨체는 제주 10년, 북청 2년의 귀양살이와 말년에 과천에서 기거하는 동안 완성되었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야. 추사가 일생에 거쳐 1000자루의 붓과 10개의 벼루를 갈아 없앴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댔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아


조선 후기의 학자 박규수는 추사에 대해 이렇게 평했어

"추사의 글씨는 어렸을 때부터 늙을 때까지 여러 차례 바뀌었다. 제주도에 유배 갔다 온 뒤로는 마침내 남에게 구애받고 본뜨는 경향 없이 여러 대가의 장점을 모아서 스스로 일법을 이루었으니 이오는 듯 기가 오는 듯 바다의 조수가 밀려오는 하였다. 그래서 내가 후생들에게 함부로 추사체를 흉내 내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추사의 서체는 마침내 일가를 이루었다"

그의 말년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감탄을 금할 수 없는데, 군더더기라곤 하나 없는 완결성의 극치, 현대의 모던한 캘리그라프 정수라고 해도 어색함이 없어. 글과 글씨, 그림이라는 영역의 타고난 재능에 붓 1000자루, 벼루 10개를 닳아 없앤 평생의 노력, 귀양살이로 점철된 인생 말년의 깊은 자아성찰까지 더해졌으니 '불계공졸(不計工拙)'. 좋은지 나쁜지 계산할 수조차 없는 경지에 도달한 건 필연이었을 테지


후지쯔카 즈카시라는 근대 일본 학자는 '청나라 학자를 포함하여 청나라 시대 학문의 제1인자는 추사 김정희' 라고 단언할 정도였어




어떤 분야의 마스터가 되는 데 지름길이란 없어. 빨리 가려다 더 멀리 돌아가는 법이야. 5년, 10년, 15년 직장생활에도 좀처럼 한 분야의 마스터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 시간이 특정 분야의 '의도된 노력'으로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야. 회사의 명함값이라는 안전지대에 머물며 나 자신의 주체성, 뾰족함, 야성을 스스로 깎아내고 고작 '가늘고 길게 살아남기'를 일생의 목표로 하루하루를 보낸 결과물에 가깝지


축적의 시간, 지금부터 쏘아올려야

숨 막힌다고? 이제 막 신입이 됐을 뿐인데.

그래서 하고 싶은 일, 적성에 맞는 일, 재미있는 일을 먼저 찾으란 거야. 지금 내게 맡겨진 일이 나의 관심사와는 전혀 상관도 없고 왜 해야 하는지 그 이유도 알지 못한 채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수동적으로 쳐내기 급급한 것들로 점철되어 있다면, 그 일이 3년, 5년, 10년간 계속되기라도 한다면, 생각해 봐 얼마나 끔찍할지


어차피 해야 하는 일, 이왕이면 그 과정에서 재미도 의미도 찾을 수 있고 종내에는 성장까지 이뤄낼 수 있다면 꿩 먹고 알 먹고 아닌가 이 말이야


지금 우리가 밤하늘에서 보는 무수한 별들은 최소 수백 년에서 수천, 수만 년 전에 발원지에서 쏘아진 빛이 도달해 보이는 결과물들이야. 어떤 천문학자는 이를 '묵은 별빛'이라고 부르더라고. 어디든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건 반드시 그 시작이 있었다는 뜻이야


조금만 발사 각도가 틀어지거나 기나긴 여정 속에 궤도를 이탈하기라도 하면 목적지인 '마스터'에 이를 가능성은 현저히 떨어질 테지. 물론 마음먹고 출발한다고 목적지에 이른다는 보장도 없어. 단, 내 시간의 대부분이 단순 노동에 머문다면, 스스로 정한 좌표도 없이 누군가 시킨 일을 수동적으로 쳐내는 수준에서 머문다면, 마스터를 향한 내 여정은 그나마 시작도 못하고 끝나는 셈이 돼. 그 시간은 축적 돼봐야 '묵은 별빛'으로 누군가에 닿지 못하고 공중으로 산란되고 말 테니


3년? 5년? 10년? 금방이야. 회사라는 safety zone에 안주하다 보면 시간의 흐름에 무뎌지기 쉽고 가랑비에 옷 젖듯 누군가 시키는 일을 수동적으로 처리하는 일에 매몰되기 마련이야. 내가 나로 사는 일을 뒤로 미루지 마. 처음부터 나 자신을 미루는 순간 '다들 그렇게 살아'라는 집단 체념에 스스로를 욱여넣어 '나'라는 주체가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 뒤 일 테니


성공하고 싶거든 합당한 비용을 지불해

힘들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야. 하지만 세상은 그런 면에서는 공평해.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는 말이 있지? 하다못해 당근에서 중고 거래를 할 때도 물건의 가격에 걸맞은 값을 지불해야 비로소 거래가 성사돼. 하물며 인생의 성공, 한 분야의 마스터라는 거대한 가치를 얻는 데는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 할까?


'의도된 노력'은 충분조건도 아니고 필요조건일 뿐이야. 그냥 운이 좋아서 저절로 찾아오는 성공이란 없어. 충분히 준비되지 못한 사람에겐 행여 운이 찾아와도 그것이 운인지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허다해. 노력 없이 운 좋게 성공 근처에 이르렀다 해도 일시적이야. 결코 그다음으로 이어지지 않아. 합당한 노력 없이 결과만 취하겠다는 생각, 대가를 치르지 않고 날로 먹겠다는 생각이야말로 도둑놈 심보지


'마스터'라는 목적지로 가는 길은 3F(집중Focus, 피드백Feedback, 수정Fix it) 흐름에 따라 '의도된 노력'을 전력으로 기울여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야. 더 겁나는 건 그 길 끝에 내가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야. 하물며 별다른 노력도 없이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대충 하루를 보내서는 결코 '목적지' 근처에도 도달할 수 없어


"난 그런 삶 싫은데요? 그냥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벌고 적당히 즐기며 워라밸 하고 싶다고요"


좋지. 그런 삶도. 특별한 욕심 없이 그저 적당한 노력으로 적당한 삶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다만 그 하루하루가 별 의미 없는 '수동적 노동'에 대부분 허비되고 있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쉬는' 주체적 워라밸에서는 아득히 멀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만은 알았으면 해


이때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벌고, 적당히 즐긴다'는 의미가 사실은 '상당히 무의미고, 상당히 손해 보고, 상당히 감내한다'는 속뜻을 품을 여지가 클 테니 이는 곧 현실부정이나, 끊임없는 자기합리화로 이어질 수밖에. 그 끝에 남는 건 돌이킬 수 없는 '패배감'과 주도력을 잃고 비루해진 여생뿐일지도 몰라


물론 선택은 자유야. 이 글을 읽고도 회사라는 거대한 safey zone의 안온함에 젖어 '나'를 나로 세우는 일을 뒤로 미루는 이들이 대부분일 거라는데 500원 걸지. 나 역시 신입 때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으니까


그러니 역설적이지 뭐야. 처음부터 나만의 필드를 찾아 안테나를 꼿꼿이 세우고 하루 1~2시간이라도 나만의 목적지를 향한 '의도된 여정'을 준비하고 일상 속에 패턴화 할 수만 있다면 소수 '미루지 않은 사람' 그룹에 속해 다만 몇 발자국이라도 꾸준히 내딛게 될 테니


그 걸음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현저한 격차로 앞서나가 꿈꿔 왔던 목적지를 눈앞에 두게 될 거라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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