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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Oct 04. 2024

[신입의 직격] 나는요 완전 '멘탈붕괴' 됐어요

Ⅲ장. 職격 _ 소프트웨어 3_ 회복탄력성

"What dose not destroy me, makes me stronger"


언제부턴가 니체의 이 명언을 가장 좋아하게 됐어. 퇴사 후 4년이 넘는 반백의 시간을 감내하는 동안 '나를 파괴하지 못하는 한, 그 고난은 나를 더 강하게 할 뿐'이라는 이 말을 얼마나 읊조렸는지 몰라


한때 나 자신을 크게 오해했어. 스트레스도 별로 없고 감정적으로도 무덤덤하고 인생전반에 걸쳐 큰 좌절이나 고난도 없이 무난한 삶을 살고 있다고 믿었지. 전형적인 내향형인 데다 꽤 심각한 자기애를 가졌던 터라 객관화된 자기인식이 덜됐던 모양이야


그러다 직장생활 14년 차쯤에 호되게 당했지. 1년 가까이 공황장애로 고생했어. 잠을 자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아무런 이유 없이 심장이 벌떡벌떡 뛰면서 곧 멈출 것 같다는 극심한 공포에 휩싸여 식은땀을 흘리며 벌떡 일어나거나 주저앉곤 했더랬지. 전철을 타도 세 정거장 이상을 참지 못하고 뛰쳐 내리거나 사람이 조금만 많아지면 질식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곤 했어. 제 발로 응급실에 찾아간 일도 그때가 처음이었지


급기야 온 병원을 돌며 심장, 뇌, 신경계까지 거의 모든 검사를 다 받아봤지만 결과는 '이상 없음'이었어. 별안간 죽음에 이를 것 같다는 공포감에 휩싸이는 증상의 정체는 '공황발작'이었고 몇 개월 사이에 수회 이상 반복되면 진단되는 전형적인 '공황장애'였어


그 지경에 이르러서야 내 내면을 진지하게 돌아볼 수 있었어. 조직문화 업무특성상 경영진과 현장 사이에 끼고, 차장이라는 직급상 아래에 끼고, 집에서는 가장이라는 중압감에 낀 상태를 감당해야 했지. 개인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탓에 구설수에도 오르내리며 알게 모르게 누적된 정신적 피로도까지 겹치면서 임계점을 넘었던 모양이야. 둑 터지듯 일시에 폭발한 그 무엇은 극한 불안감으로 급기야 당장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심으로 몸과 마음을 집어삼켰지


내면이 강하다, 무던하다,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 따위 근거 없는 정신승리로 위기의 신호들을 무했어.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적 화학 작용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닫고 이름 붙이고 적절히 대응해내지 못한 결과는 그야말로 혹독했어


사정이 나아진 건 퇴사를 한 이후였. 나를 무너뜨린 근본 원인으로부터의 분리. 마치 한번 크게 앓고 난 이후 면역이라도 생긴 것처럼 지금의 나는 웬만한 정신적 타격쯤은 금세 회복되는 체질이 됐다고 스스로 믿고 있어


물론 위기도 있었지. 퇴사 후 4년 넘는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동안 가장 먼저 잃은 건 이전의 인맥이었어. 애초에 대인관계가 그리 활발하지 않았던 내향형이었던 만큼 인맥이랄 것도 없어. 직장인 시절 혼자만의 시간을 그토록 꿈꿔왔으니 옳다구나 싶었지.


문제는 고립의 시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어. 그런 생활도 한두 달이지, 1년쯤 됐을 무렵 위기가 찾아오더라고. 어느 순간 아늑하고 평안하던 집안이 감옥처럼 느껴지는 거야. 1년 정도면 어떤 결론이 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더 안갯속으로 들어가는 듯했어.  하루종일 읽고 쓰는 이 생활을 몇 년을 더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겠다 느끼는 순간 숨이 턱! 하고 막혀왔


그때 우연히 니체의 말을 알게 됐고 대책 없이 깊어지려던 좌절감에서 헤어 나올 한 가닥 동아줄을 잡은 듯했어. 크고 작은 불안과 불확실성은 여전하지만, 때 되면 찾아오는 감기처럼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할 수 있게 됐어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내면의 근육이 생기듯 부정적 감정을 그럭저럭 컨트롤할 수 있다는 자감도 부쩍 생겼지. 그 사이 소소한 성과도 있었고 성장의 본질인 '실력'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는 확신까지 더해지면서 나 자신은 더 단단해지고 있다고 믿게 됐어


결국 '회복탄력성'이었어. 내면세계의 건강함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 마스터가 되는 정에 반드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고난과 좌절, 실망감과 분노 따위를 어떻게 인지하고 극복할 것인지, 그것을 주기적으로 겪어내고 그 안에서 교훈을 찾고 학습하는 일의 중요성 말이야 




[드래곤볼]이라는 만화가 있어. X세대, M세대라면 모를 수가 없지. 시작은 중국 고대소설 '서유기'를 모티브로 한 코믹명랑만화였어. 7개를 다 모으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드래곤볼'찾아 나서는 손오공과 그 일행의 여정을 그렸지


불교 세계관인 원작 성격상 [드래곤볼] 역시 이승과 저승, 염라대왕 등이 등장하지만, 코믹만화답게 가볍고 재미위주로 그려질 뿐이야. 그런데 연재가 거듭되면서 어느 순간 코믹 명랑에서 액션, 전투 위주의 성인 만화로 그 성격이 바뀌고 이른바 '부활'과 관련한 설정은 조금 더 진지해지기 시작해


드래곤볼을 모아 소원을 빌면 죽은 사람도 살린다라는 설정에서 조금씩 발전해, 한번 먹으면 다 죽어가는 사람도 단숨에 살리는 '선두'라는 신비의 열매가 등장하고, 배경이 우주로 확대되면서 치유 능력을 가진 외계소년(나메크성인)도 존재해. 그중 가장 흥미로운 설정은 주인공 손오공이 사실은 외계종족이자 전투종족인 '사이어인'이었고, 그들은 죽음 직전에 되살아나면 전투력이 급격히 상승해 더 강해진다는 점이었어


어쩐지, 주인공 손오공이 순한 성격과 착한 마음씨에 비해 강한 적이 나타나면 흥분하고 호전적이 되면서 왜 그들과 겨루지 못해 안달이었는지 연결되는 지점이었지. 세계관이 우주로 확장되면서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강자들이 줄줄이 등장하는 만큼, 주인공의 급격한 성장을 위한 장치는 필수였을 테지


그 끝에 압도적 힘을 가진 우주 최강 끝판왕급 빌런인 '프리저'가 등장해. 요즘 빌런의 대명사격인 '타노스' 비교도 안될 정도의 포스를 내뿜는  장면은 경이롭기까지 했어. 이 대책 없는 괴물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극한의 공포감과 좌절감 속에 심어둔 한가닥 희망은 사이어인들 사이에 전설로 회자되는 '초사이어인'의 존재였어


아직 한 번도 본 적 없고 실제 존재하는지 여부도 모르지만 일단 나타나기만 한다면 '프리저' 따위는 상대도 안될 우주 최강의 전사라는 떡밥. 그 무시무시한 '프리저' 조차 전설을 두려워해 사이어인의 별을 멸망시켰지만, 유이하게 살아남은 손오공과 사이어인의 왕자이자 필생의 라이벌인 '베지터'를 등장시켜 그 둘 중 누군가는 '초사이어인'에 이를 것이라는 조마조마한 기대를 심어주었지


얼마 전 작고한 [드래곤볼] 작가 도리야마 아키라는 니체를 포함한 서양 철학과 불교를 중심으로 한 동양철학에도 통달한 사람이었음이 틀림없어. 특히 죽음 직전에 이르렀다 부활하면 전투력이 대폭 상승한다는 사이어인만의 독특한 설정은 '나를 죽이지 못하는 한, 그 고난은 나를 더 강하게 할 뿐'이라는 니체의 말을 '명징'하게 떠올리게 하니까 말이야


스포일러 일수 있겠지만 마침내 전설의 '초사이어인'이 되어 우주 최강 '프리더'를 물리치는 건 바로 주인공 손오공이야. 더 강해지고 싶은 열망, 제 실력에 대한 객관적 인식, 줄줄이 등장하는 강자들에 두려움을 느끼기는커녕 도전을 꺼리지 않는 그 용기는 끝없는 회복탄력성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대책 없는 무한긍정이 더 위험해

제임스 스톡데일 소장은 베트남 전쟁 당시 포로가 된 미군 중 최고위급 장성이었어. 무려 8년에 걸친 포로생활 동안 스톡데일은 '누가 이 가혹한 환경에서 끝까지 살아남는가?'를 관찰했어. 마침내 포로생활에서 풀려나 고국으로 돌아온 스톡데일이 밝힌 경이로운 생존력의 비밀은 바로 '현실적인 긍정주의' 즉, 회복탄력성(Resilience)이었어


생존자들은 눈앞에 닥친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수용하며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 융통성 있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었어. 근거 없는 희망도, 대책 없는 절망도 아닌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그들은 놀라운 생명력으로 혹독한 포로생활을 견뎌냈어. 학자들은 이를 '스톡데일 패러독스'라고 이름 붙였지


생각보다 '내 인생에 고난 따위는 끼어들 틈이 없다' 믿는 사람들이 많아. 성격이 무던한가 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길수도 있겠지만, 객관적 자기 인식이 안되고 있다는 방증일 수도 있어. 혹은 현실을 직시할 용기가 없 도망가기로 일관하는 비겁자이거나


매일 맑은 날만 계속될 수는 없지. 자연계에 태풍이나 가뭄, 산불 등 재난이 끊임없이 생기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맑은 날만 계속된다면 이거야 말로 재앙이 아닐까?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야. 언제나 좋을 리가 없지. 그 크기와 정도 깊이는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나긴 인생에 역경, 고난, 실패 같은 문제적 상황을 피할 수는 없어. 기정사실이야. 현실자체를 부인하거나 못 본 체 하거나 타인, 환경 탓으로 돌리기에만 급급하다면 상황은 더 악화되고 꼬이게 될 뿐이야


그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범위는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고 내면의 상태를 점검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할 방법을 찾아 극복하려는 미래적 관점을 갖는 일뿐이야. 이는 곧 객관적 자기 인식으로부터 시작해. 


감성지능(EQ) 연구의 대가 다니엘 골먼은 감성지능이 높은 사람의 특징으로 다음과 같은 7가지를 들었어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동기 부여를 하고, 좌절에도 앞으로 나아갈 줄 알고, 만족을 뒤로 미루며 충동을 억제하고, 자기 기분을 통제하고, 걱정거리 때문에 사고력이 저하되지 않게 하며, 감정이입을 할 줄 알고, 희망을 품을 줄 아는

놀랍게도 7가지 특성 모두 '회복 탄력성'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 '회복 탄력성'은 곧 자기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 수 있지


자신만의 탈출구를 만들 것

인생이 언제나 좋을 수만은 없고, 언제 또 고난과 좌절, 실패가 나를 찾을지 모른다는 마음의 준비는 단단히 했어. 그럼 그걸로 끝일까? 막상 실제 그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성과는 다르게 감정적으로는 상처를 받고 그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야


수습은 수습이고 감정의 상처는 깊게 남아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그럴 때를 대비해 나만의 탈출구를 만들었어. 백팩에 노트북, 헤드폰 등을 때려 넣고 내가 어렸을 때 자랐던 동네, 초중고를 모두 나온 추억의 장소로 훌쩍 떠나는 일. 거창하게 떠난다고 표현했지만 전철로 고작 30분 거리야


초등학교 등굣길, 전철역, 어릴 적 살았던 집터, 100일 휴가 때 가족들과 함께 거닐었던 공원 등을 돌며 그 시절을 떠올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거든. 생각보다 그 효과는 크고 또 오래가더라고


토포필리아(Topophilia)장소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는데, 사람들은 저마다 강한 애착과 감정적인 유대감을 느끼는 특정 장소가 있음을 의미해. 특히,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장소에서 경험하는 긍정적인 감정과 편안함이 안정감을 주고 이는 정신적 치유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해


왜 답답할 때 나도 모르게 그 시절, 그 장소를 떠올리고 끌리듯 그곳을 찾아갔는지 그제야 이해가 되더라고


이외에도 자신의 취미, 적성, 관심사를 반영한 여러 방법론들이 있을 거야. 내 경우 품질 좋은 헤드폰을 구입해 마치 현실과 단절된다는 느낌으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볼륨을 높여 즐겨 듣던 음악을 들을 때도 정신적 피로감이나 압박감, 불안감이 해소되곤 하더라고


치유와 예방까지 사실은 마음만 먹으면 금세 할 수 있 일들많아. 보려 하고 생각하고 마음먹으려 하지 않을 뿐


극한 더위와 혹독한 추위를 겪을 때 열매는 더 달콤해진다고 하지. 고난과 좌절, 성공과 환희라는 양극단을 오가며 각각의 순간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경험하고 다지는 일에 익숙해진다면 내 내면의 건강은 물론 내분야에세 마스터가 되려는 지난한 여정을 묵묵히 견뎌낼 수 있으리라고 확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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