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없는 것과 아예 없는 것들의 사이에서
지난 주에 '베를린에 없는 것들 열 가지' (https://brunch.co.kr/@hurilly/17)를 쓰고나니, 오히려 없는 것들이 더 많이 생각이 나서 바로 두 번째 글을 쓰게 되었다.
왜 이렇게 빠뜨린 것들이 많았을까를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도 모르게 이 아이템들이 없는 상태에 너무 익숙해져서 이것이 없다는 생각조차 떠올리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초심으로 돌아가서 베를린에 (거의) 없는 또다른 열 가지 문물들을 소개한다.
1. 탁상달력
한국에는 연말 연시면 흔하디 흔한 아이템이 탁상달력이었다. 달력은 물론이고 질 좋은 플래너도 회사나 주거래 은행에서 손쉽게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독일에 오니 대형 서점을 아무리 뒤져도 탁상달력이 안 보이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달력은 벽걸이형이 디폴트였고, 탁상달력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Tischkalendar라고 치면 찾을 수는 있으나, 대중적인 포맷은 아니다.
2. 생크림 케이크
처음 유럽에 오는 한국 분들이 많이 착각(?)하는 것들 중 하나가, 유럽에는 생크림 케이크의 종류가 엄청나게 다양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일단 케이크의 종류는 다양한 것이 맞으나,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크림 케이크는 정말 드물다. 독일에서 먹는 케이크는 한국인의 입맛에는 딱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치즈케익도 산미가 강한 편이며, 케익의 탈을 쓴 빵도 많다. 생크림 케이크를 잘 하는 집을 가려면 한국식이나 일본식 베이커리/파티셰리를 따로 찾아가는 경우가 많다.
3. 노OO존
스페인에서 2년 반, 그리고 지금은 독일에서 거의 2년이 채 안 되게 살고 있지만, 유럽에서는 노OO존이라는 표현을 접한 적이 없다. 한국에서는 노키즈존, 노시니어존 등 계속해서 노OO존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 것 같은데, 마음이 아플 따름이다. 사회적으로 어떤 관습에 합의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아무래도 우리 사회가 단시간에 발전을 하다보니 그 과정에서 생긴 부작용이라고 본다.
4. 대실과 찜질방
한국에는 대실 문화가 있어서 차가 끊기거나 했을 때 몇 시간이라도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 있는데,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유럽에는 대실 문화가 없다. 객실 정리 및 관리 = 인간의 노동이 필요한 영역이라, 인건비가 저렴한 곳에서만 가능한 모델이 아닐까 싶다.
한국식 찜질방도 없다. 독일인들이 몸을 뜨뜻하게 데우고 싶을 때 가는 곳은 스파로, 혼성 나체 이용이 기본이다. 한국에서처럼 옷을 걸친 상태로 몸을 데울 수 있는 시설은 없다.
5. 폼클렌저
이것도 탁상달력과 비슷하게, 엄밀히 말하면 존재하지만 흔하지는 않아서 많은 한인들이 한국에서 공수해오는 아이템 중 하나다. 독일에도 클렌징 오일, 클렌징 폼 등 다양한 제형의 클렌징 제품들이 있긴 하지만 한국처럼 다양하지는 않다. (물에 개어서 쓰는 파우더형 제품도 보지 못했다)
한국의 올리브영의 클렌징 섹션의 크기와 다양성이 10이라면 독일의 드럭스토어인 DM이나 Rossmann의 해당 섹션 크기와 다양성은 3정도 된다고 보면 된다.
6. 차렵 이불 및 대용량 세탁기
내가 알기로 차렵 이불은 솜을 넣어서 누빔처리를 한 일체형 이불인데, 독일에서는 일체형 이불을 본 적이 없다. 때문에 많은 한국 분들이 한국에서 공수해오는 아이템 중 하나다. 또한 독일에서는 이불 속은 잘 빨지 않고 겉 커버만 빠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용량 세탁기도 없다.
7. 녹여서 쓰는 타입의 코팩
굉장히 지엽적이나, 나는 차앤박 코팩을 매우 애정한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DM, 로스만, 더글라스, 카데베, 어디를 가도 이런 식으로 피지를 녹여내는 코팩을 보지 못했다. 뜯어내는 형식의 코팩은 있으나 피지를 불려서 녹이는 타입의 코팩은 신문물인듯 하다. (적어도 독일에서는) 정식으로 수입이 될 때까지는 계속 한국에서 공수해서 사용할 생각이다.
8. 건강검진
사보험을 든 경우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공보험을 든 경우에는 건강검진이 없다. 한국에서는 회사에서 보조를 해줘서 매년 건강검진을 받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는데, 독일에서는 이런 종류의 건강검진이 회사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해주는 복지 개념에 들어가지 않는 것 같다. 공보험의 컨셉 자체가 "아프면 무상으로 치료해줄게"이기 때문에, 미리 예방을 해서 병을 키우지 않게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9. 알룰로스
지금도 유효한지는 모르겠으나, 어디서엔가 읽기로는 유럽에서 인증을 받지 못해서 시중에 없다고 들었다. 하지만 DM만 가도 Reissirup (쌀로 만든 시럽) 등이 있기 때문에 없어서 불편한 항목은 아니다.
10. 대형 마트의 넓은 해산물 코너
처음 독일에 왔을 때 가장 충격받았던 것 중 하나가 독일 사람들이 얼마나 일상 생활에서 해산물을 안 먹는지였다. 아무리 식문화가 발달하지 않았기로서니 명색이 바다를 접한 나라인데 이렇게까지 생선과 해산물을 안 먹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이것은 사실이었다.
식당을 가도 해산물을 취급하는 곳은 육류를 취급하는 곳보다 훨씬 찾기가 어려운 편이다.
며칠 전에 집 근처 대형 마트를 갔었는데, 그 마트에서 발견한 유일한 해산물 섹션이 바로 이 사진 속 모습이다. (냉동 해산물은 냉동 섹션에 따로 있다. 냉동 대구/연어/새우 등이 있다)
한국에서는 해산물 섹션이 육류 섹션만큼이나 크고, 넓게 깔린 얼음 위에 싱싱한 생선, 각종 조개류들이 즐비한데.... 독일, 그 중에서도 내륙에 위치한 베를린에서는 해산물 전문 매장을 가야지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다음에는 한국에는 없지만 베를린에는 있는 것들을 소개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