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독일에는 있지만 한국에는 없는 것들 열한가지

by 허일리

지난 번에 "한국에는 있지만 독일에 없는 열가지"를 2회에 걸쳐서 다루었었고, 오늘은 이에 이어서 정반대 주제를 잡아보았다.


1. 트램

70년대에는 서울에도 전차가 있었다고 하는데, 왜인지 역사 속으로 사라져서 안타까운 교통 수단이다. 나는 트램을 정말 좋아하는데, 버스처럼 답답하지 않으면서, 승하차가 간편해서다 (독일에서는 모든 버스가 저상버스라서 계단이 없기는 하지만서도). 마치 시내용 기차를 탄 느낌이랄까?

단, 뚜벅이로서는 트램이 정말 좋으나, 내가 운전을 하는 입장이 되면 트램이 두려울 것 같다. 베를린은 차+트램+버스+자전거 도로+보행자가 모두 있는 환경이기 때문에 룰을 숙지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2. 자전거 전용 도로

한국에도 자전거 전용 도로가 부분적으로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독일의 자전거 도로는 어나더 레벨이다. 자동차와 거의 대등한 포지셔닝이고, 시내 어디든 자전거 전용 도로가 깔려있다. 자전거 이용자들은 수신호로 방향 전환을 나타내는 등, 엄격한 룰이 적용된다. 그냥 취미로 재미로 타보기엔 아주 본격적인 인프라와 문화가 갖추어져 있다.


3. 지하 벙커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핵전쟁을 대비해서 만든 지하 벙커들이 시내 여기 저기에 흩어져있다. Unterwelten 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지하 벙커 체험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작년에 프랑스 친구가 베를린에 놀러와서 같이 가봤었는데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공식 홈페이지: https://www.berliner-unterwelten.de/en) 불과 100년도 지나지 않은 역사적 마일스톤의 한가운데에 있는 느낌이 아주 묘했다. 역사 덕후들에게 특히 더 추천한다.


4. 베를린의 클럽 문화

베를린의 클럽 문화는 다른 곳의 클럽 문화와 구별될 정도로 독자적인 것이여서, 유네스코에서 무형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을 정도이다. 베어크하인, 시지포스, 워터게이트 등 좋은 클럽들이 많이 있다. (워터게이트는 24년 12월 31일에 영업을 종료했다) 클럽마다 영업일이 상이하니, 홈페이지를 보고 마음에 드는 DJ가 오는 날에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한국처럼 그냥 줄을 서서 입장료를 낸다고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열심히 검색해보고, 장소에 맞는 옷을 갖춰입고 도전하는 것을 추천한다. 무엇을 상상했든 상상 그 이상의 세계가 열린다.


5. 비어가든

독일의 비어가든은 식당과는 다른 별개의 카테고리이다. 실내 공간이 겸해져 있지 않은 경우 여름에만 영업을 하는 경우가 많고 (6월부터 9/10월 사이 정도) 맥주와 각종 독일 음식을 즐길 수 있다. 테이블 서비스는 없고, 푸드코트처럼 지정된 곳에서 주문, 계산, 픽업이 이루어진다. 분위기는 어떨까. 식당처럼 테이블들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길다란 식탁이 연속적으로 놓여져 있어서 더 festive하게 느껴진다. 베를린에서 가볼만한 비어가든으로는 Cafe am Neuensee, Prater Biergarten 등을 추천한다.


6. 판트 제도

독일에는 판트(Pfand) 라고 하는 공병 수거제도가 있다. 수퍼에서 파는 물이나 음료수, 혹은 맥주 뒷편에 아래 이미지와 같은 표시가 있으면 판트의 대상이다. 캔일 수도 있고 플라스틱 병일 수도 있다. 영수증에도 보면 0.25 유로가 추가로 차지가 된 것을 볼 수 있다. 이 병들은 모았다가 아무 수퍼에 가서 환급을 받을 수 있다. (반드시 그 음료를 샀던 곳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환급을 받는 방식은 매우 간단하다.

pfand.png 출처: 크라우드픽


1. 병을 모아서 아무 수퍼에 간다.

2. 판트 기계에 (보통 수퍼 입구에 있다) 병을 순서대로 넣는다.

3. 넣은 병의 갯수만큼 돈으로 환산된 금액이 적힌 종이가 나온다.

4. 받은 종이는 해당 수퍼에서 쓸 수 있는 바우처 개념이라, 계산할 때 올려놓으면 계산원이 알아서 적용해준다.


이런 제도가 있기 때문에 지하철역 같은 곳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는 노숙인들도 볼 수 있고, 일부러 그런 이들을 위해서 병을 쓰레기통 안에 넣지 않고, 노숙인이 쉽게 가져갈 수 있게끔 쓰레기통 옆에 버리는 이들도 볼 수 있다.


7. 슈파겔

슈파겔은 3월부터 5월 사이에 나오는 독일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봄철 음식이다. 하얀 아스파라거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래 이미지에서처럼 홀렌다이즈 소스랑 같이 곁들여 먹는 방법이 가장 흔하고, 수프로도 만들어 먹는다.


이 시기에는 독일 음식을 취급하는 식당이면 어디든 Spargel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몇 번 도전해봤지만 그렇게까지 맛있는 슈파겔 요리를 먹어본 적이 없어서, 나에게는 슈파겔 = 봄이 왔다는 신호에 더 가깝다.

spargel.jpg 출처: Maltes Kitchen

올해는 맛있는 슈파겔 요리를 먹어보기를 고대한다.


8. 라우겐OOO 빵

Laugen 빵과 나의 인연은 내가 베를린에 처음 놀러왔던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연히 라우겐에케(Laugenecke)라는 삼각형 모양의 빵을 먹게 되었는데,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맛있는 게 아닌가? 나는 한국에서도 알아주는 빵순이였고, 파리에서도 맛있는 빵들을 많이 먹어봐서 꽤나 스탠다드가 높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빵은 처음이었다. 프레첼과 크로아상이 결혼을 해서 낳은 자식 같은 미각적 혁명을 느꼈다. 나중에 돌아와서 더 서치를 해보니 Laugen이 독일에서 빵을 처리하는 특수한 방식이라 라우겐에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라우겐 프레첼, 라우겐 슈탕에, 라우겐 브뢰첸, 라우겐 크로아상 등등 다양한 베리에이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통 갈색빛을 띄고 짭짤한 것이 특징이다. 라우겐 빵은 독일 전역에 있으니 꼭 시도해보시는 것을 추천한다.


9. 마지판

마지판은 아몬드에 설탕 등을 넣어서 가공한 반죽으로, 독일에서는 초콜릿이나 디저트 등에 아-주 흔하게 쓰이는 식재료이다. 수퍼에서 마지판만 따로 팔기도 할 정도이다.

내가 처음 마지판을 접하게 된 건 대학교 2학년 때 빈에 여행을 가서 모차르트 초콜릿을 처음 먹었을 때였다. 살짝 서걱거리는 떡 같은 식감이 너무 매력적이라서 당시에 일기에 써놨을 정도인데, 나중에 많은 한국 사람들이 마지판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therefore, 모차르트 초콜릿도) 혼자서 충격에 휩싸였던 기억이 있다.

독일 수퍼든 면세점이든 초콜릿 섹션은 꼭 있고, 그 중에 Marzipan이 들어간 상품도 반드시 있게 마련이니, 아직 시도를 해보지 않은 분들이 계시다면 꼭 한 번 권하고 싶다. 크리스마스 때 특히 많이 먹는다.

*지금 서칭하다가 알게 되었는데, 독일에서만 먹는 것은 아니고 북유럽, 스페인, 이탈리아에서도 먹는다고 한다.


10. 페더바이서

페더바이서 (Federweißer)라고 부르는 이 햇와인은 초기 발표 단계의 와인으로 달달한 탄 맛이 특징이다. 작년에 8월 중순에서 10월 첫째주정도까지 수퍼에서 봤다. 한 병에 3유로 후반대에서 7유로 사이로 가격도 정말 좋다. 종류는 화이트, 레드, 로제 이렇게 세 가지가 있는데 화이트가 제일 맛있었다. 수퍼에서 살 때 주의할 점은, 병마개가 완벽하게 닫혀있지 않아서 (발효 중이라서 병마개를 완벽히 닫으면 폭발하니까) 절대 눕히면 안 되고, 세워서 집까지 잘 모셔와야 한다는 점이다. 페더바이서 덕분에 작년에 에코백 몇 개를 버렸는지 모른다.

독일에서는 Zwiebelkuchen (양파케이크라고 번역되나, 사실상 양파 키쉬에 더 가까움)이랑 페어링해서 먹는다. 독일에서 지금까지 먹은 것 중 제일 맛있는 것 중 하나이다. 나에게는 가을이 온 것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한다.


11. 변호 보험

아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독일은 보험의 나라다. 생활하며 겪는 모든 것에 필요한 보험이 다 있다. 그 중에서도 내가 설명을 듣자마자 무릎을 친 보험이 있었는데, 바로 레흐트슈츠페어지허룽(Rechtschutzversicherung)이다. 영어로는 Legal insurance라고 하고, 한국어로 굳이 해석하자면 변호 보험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보험은, 분쟁이 생겼을 때 추가 비용 없이 변호사와 상담 및 소송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더 자세히 설명하면, 단순히 변호사 상담뿐만 아니라 소송 비용, 법원 비용, 변호사 비용 등을 보장한다. 물론 상품마다 커버리지는 다르겠지만, 기본적인 컨셉은 이렇다.


나는 집주인이 (=개인이 아니라 부동산 회사) 너무 월세를 자주 올리려고 해서 이 보험에 가입했다. 주변 지인들 말로는, 내가 개인적으로 항의하는 것은 귓등으로도 안 들어도, 변호사가 레터하나만 보내면 ("이번 월세 인상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바로 수그러든다고 해서 가입했다.

물론 아예 이 보험을 쓸 일이 없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가입을 한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요새 세상이 워낙 흉흉하다보니 살면서 이런 저런 이슈들이 많은데 (집 관련 분쟁, 직장에서의 분쟁 등) 한국에도 이 변호 보험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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