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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여행자 Aug 12. 2017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의미를 찾을 뿐..

삶과 죽음 사이의 무수한 의미 부여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오늘의 저녁 메뉴 뿐..


"인생은 B(irth)와 D(eath) 사이의 C(hoice)다." 라고 샤르트르가 말했다. 철학자들은 말장난도 기품있게 한다. 그는 실존주의자 답게 인생의 본질을 선택의 연속이라 한다. 삶을 가장 실존적이고 구체적인 행위의 집합으로 본 것이다.


이 천재적인 언어유희 구조에 찬사를 보내지만 한 글자를, 나는 한 글자를 바꿔야겠다. 

Choice가 아닌 Conceptualization.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삶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게 사실 별로 없기 때문이다. 만약 아래 세 가지 물음에 답할 수만 있다면 당신은 샤르트르의 말장난을 진실로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1. 당신은 당신의 '탄생' 을 선택했는가? (혹은,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가?)

샤르트로도 B와 D 사이의 선택이라는 명제 속에도 이미 삶과 죽음의 비주체성을 인정했듯이, 탄생, 죽음(죽음은 어쨌든 피할 수 없다. '자살'이라는 예외는 단지 시간을 선택하는 것뿐 죽음에 대한 절대적 주체성이라 볼 수 없다) 은 우리가 결코 선택할 수 없다. 고유한 개인의 선택은 물론, 인류 공동체적 관점에서도 우리는 선택의 자율을 부정당하고 있다. 바야흐로 이성의 시대라고 하지만 '삶은 축복'이라는 얄팍한 '의미'를 만들어낼 뿐 끊임없이 종족 보존을 위해 열일하는 것은 우리의 이성이 아닌 어쩌면 우리의 DNA의 작용일지 모른다.


2. 당신은 당신의 '부모'를 선택했는가?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이고, 자율적인 존재라고 믿지만, 그것은 희망일 뿐, 인간은 자라나는 과정에서의 환경과 교육 앞에 한없이 작아진다. 근원적으로 혈육이란 우리가 선택할 수 없으며(특히 자식의 입장) 이 제한적인 조건 안에서 인간의 삶의 대부분이 이미 결정되어진다는 것은 매우 비참한 현실이다. 여기서 '부모'는 생물학적 파생력과 더불어 압도적인 사회적 영향력의 메타포이다. '국가', '제도', ''문화' 등 모든 것을 의미할 수 있다.


3. 당신은 당신의 '욕망'을 선택하는가?


라캉의 그 유명한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아도, 우리는 우리의 욕망이 순수하게 우리의 마음에서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을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엄마와 한 몸이었던 아이는 유착관계의 대체제로 타인의 인정과 욕망에 기대어 살아간다. 그나마 타인의 인정과 욕망을 욕망하는 자들은 사람 냄새라도 나지, 성기의 욕망에 주체성을 내어준 숱한 야만의 비율은 산업 문명의 성숙과 상관관계가 없어 보인다.



우리는 단 한 가지에도 Yes라고 말하지 못한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인간은 무력감을 느낀다. 무력한 개인은 '더 이상 살지 않을 권리'를 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 조차 택하지 못하고 그저 살아가는 게 삶의 지독한 패러독스다.


그래서 인간은 '의미'를 발명했다.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선택에 순종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동물과 구분되는 지점이다. 사유를 통해서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오직 자기만의 세계를 자유롭게 상상하고 창조한다.


무수한 관념세계, 모더니즘 구조주의 속에서 인간이 만들어놓은 커다란 사유의 성이 무너지는 광경을 비근하게 목도한 근대의 철학자들은 회의를 품게 되었다. 밀란 쿤데라의 작품 세계와 문학적 태도는 이러한 정신세계를 반영한다. 그의 최근작 <무의미의 축제>는 외려 '무의미' 속에서 '의미'를 찾음으로서 실존에 한걸음 다가서려 한다.


'무의미'라는 것은 인간이 구축해놓은 이성과 관념 세계라는 거대한 진지를 한번에 무너뜨리려는 시도에 가깝다. 그것을 회의하고 반목하여, 내가 살아 숨쉬는 이 순간을 그대로 수용하려는 태도이다.


인간은 탄생과 죽음은 물론이거니와, 삶의 대부분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없다. 그 부자유 속에서도 우리가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나의 고유성을 담보하는 세계를 제 멋대로 그려내는 일이다. 똑같은 밥을 먹고도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만찬을 즐기는 것이고, 똑같은 꽃을 보고도 들에 핀 희망이라 말하는 것이다.


그래, 유일한 선택은 나만의 '의미'를 선택하는 것이다. 오늘 당신은 어떤 '의미'를 선택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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