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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준상 Aug 23. 2018

운명이다

북리뷰-자서전

#운명이다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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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9년 봄 교양수업을 빠지고 친구들과 서울역 광장으로 갔다. 인파가 셀 수 없었고 노란 종이모자의 물결로 서울역 앞부터 시청가는 길 전체가 가득차 있었다. 당시 나는 정치나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도 없었다. 그저 인간적이고 친근했던 전직 대통령이 서거했구나하는 마음에, 그 곳에 있던 많은 사람들과 같이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나에게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던, 위대하거나 무능한 대통령이라기보다는 세상에게 온갖 욕을 먹으면서도 농담 잘 하는, 옆집 아저씨같이 소박해보이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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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책은 아마 자서전 중 가장 슬픈 자서전이 아닐까 싶다. 출생부터 서거까지 담담하게 자신의 삶과 공과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읽는 내내 쓸쓸한 냄새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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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후에 발간된 자서전이기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이 쓴 글과 여러 자료들을 토대로 유시민 작가가 정리한 책이다. 두 분 모두 미사여구를 잘 안쓰는 분이라 전반적으로 담백하게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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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노무현 정권 당시에 나는 중고등학생이었고, 서거 이후에 노무현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게되었다. 여전히 나는 그를 친근하고, 권위주의적이지 않은 대통령 정도로만 생각했다.

_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야 그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도 그가 추진했던 정책과 방향에 대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지 못했다.

_지금 우리는 비로소 노무현의 시대에 살고있다. 대북대미관계, 검찰개혁과 공수처, 언론권력 등 그가 던졌던 담론과 의제들이 10년간 묻혀있다가 다시 떠오른 상태다. 공도 있고 과도 있겠지만 방법이 틀렸을지언정 그 방향성에 대해서는 노무현 이후 10년을 통해 증명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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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때나 지금이나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보다도 인간 노무현에게 매력을 더 느끼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대권의 야망을 품으면서도 어떻게 권위주의를 버릴 수 있었을까. 어떻게 제왕적 권한을 가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각 부처와 관료들에게 권한을 나눠주고 자신을 모욕하는 사람들과 싸울지언정 대화를 하고 그들을 힘으로 누르지 않을 수 있었을까. 과연 그런 사람에게 순수성을 의심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땐 모두가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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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책에는 잘한 점에 대해서도 많이 나와있지만 자서전치고는 잘못에 대해서 인정하는 부분이 많았다. "내가 너무 낭만적이고 이상주의적이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이 내 책임이었다. 대통령을 하려고 한 것이 분수에 넘치는 욕심이었다."

_안타까웠다. 그는 부끄러움을 많이 느꼈다. 정치를 시작한 이유도 그랬고, 마지막도 그랬다. 자신을 따랐던 사람들을 탓하고 버리면서 스스로를 지키는 사람에 비해 그는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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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노무현 대통령은 에필로그에 유시민 작가가 말하듯 "그는 그가 하는 일에 힘을 보태지 않고는 부끄러움을 면할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의 삶은 비극적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책을 접하게 된다면 좌우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의 그의 순수성과 그가 느꼈던 부끄러움을 느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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