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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지영작가 Nov 28. 2019

내 마음 눌러 쓰기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오늘은 아침 일찍 집 근처 카페에 왔다. 노트북을 펼치고 글을 쓰는 대신, 원고지 노트에 글을 써본다. 어릴 적, 원고지에 독후감을 썼던 기억이 떠오른다. 한 칸에 한 글자씩 글씨를 쓰는데 기분이 묘했다. 글자 하나마다 내 마음을 눌러쓰는 기분이랄까.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에서 벗어나지 않고 제대로 자리 잡고 있는 글자들을 보니,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다.


 오랫동안 노트북을 펼쳐서 글을 써왔는데 종이에 쓰는 기분이 참 좋다. 연애편지를 쓰는 기분 같기도 하다. 어제, 오래 전 나의 손 편지를 발견해서일까? 나는 원고지 노트를 주문했고 오늘 일찍 도착해 카페에 들고 나올 수 있었다. 


 나는 늘 사람들에게 말한다. 나이와 상관없이 내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라고 말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마치 주인공이 된 것처럼 감정 이입을 심하게 하는 바람에 별거 아닌 장면에도 눈물이 많이 난다. 어쩔 때는 극장에서 영화가 끝나고 사람들이 실망했다는 말을 하고 있을 때조차 나는 혼자 눈이 퉁퉁 부어서 나오기도 했다. 정말이지  나는 떨어지는 낙엽 하나에도 많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오늘, 마음에 와 닿는 시가 있었다.


 내가 꽃피는 일이 당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면

 꽃은 피어서 무엇하리

     

 당신이 기쁨에 넘쳐 온누리 햇살에 둘리어 있을 때

 나는 꽃피어 또 무엇하리

     

 또한 내 그대를 사랑한다 함은

 당신의 가슴 한복판에 찬란히 꽃피는 일이 아니라

 눈두덩 찍어내며 그대 주저앉는 가을 산자락 후미진 곳에서

 그저 수줍은 듯 잠시 그대 눈망울에 머무는 일

 그렇게 나는 그대 슬픔의 산높이에서 핀다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복효근 詩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누군가를 향해 온 마음을 준 사람은 그 사랑에 실패했을 때, 다시 사랑할 수 없을까봐 두렵다. 하지만 아낌없는 사랑을 받은 쪽은 상대방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 슬플 때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언젠가 진심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랑을 만날 것이다. 적어도 이기적인 사랑의 후회는 남기지 않을 테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나는 학창시절 시를 참 사랑했다. 오래된 일기장에 좋아하는 시를 손 글씨로 써서 한 번씩 꺼내 읽곤 했다. 친구에게 편지를 보낼 때 친구가 좋아할 만한 시를 골라 함께 적어 보냈다. 바쁘게 살아오면서 어느 순간, 시를 멀리했지만 나는 요즘 다시 시를 읽는다. 매일 좋은 시를 읽으며 감성을 자극한다. 매일 심장을 깨운다. 왜냐면, 나는 평생 글을 쓸 사람이니까. 


 앞으로 원고지 노트와 친해질 생각이다. 편한 세상에 왜 고생을 사서 하냐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고생을 사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름길이 아니더라도 오래 사랑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싶었다. 고생을 사서 한다는 것이 늘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당장의 힘듦보다 먼 미래를 위해 선택하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결과가 늘 내편이었던 건 아니지만. 인생에 지름길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야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만이 존재하는 거겠지. 당장 편한 길에는 미래가 없을지도 모른다. 힘들어도 가는 길이 즐겁다면 나는 기꺼이 그 길을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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