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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지영작가 Dec 20. 2019

나를 웃게 해줬던 사람

나는 매일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거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웃으면 행복하다 느꼈던 것 같다. 날 웃게 해준 사람들은 날 많이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들이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참 재밌었던 사람이 누구였을까를 떠올려보니 우리 아버지였다. 지금은 곁에 없지만 아버지를 떠올리면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아버지는 화를 내는 일이 거의 없었다. 어머니는 잔소리가 심했지만 그럴 때마다 화를 내기보다 농담을 던지셨다. 그러면 어머니는 더 이상 잔소리를 이어가지 못했다. 아버지의 유머러스한 성격으로 주위에 사람들이 많았다. 어딜 가나 감투를 꼭 쓰는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는 밖에서나 집에서나 같은 모습이어서 좋았다.


  아버지는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는 일 때문에 집을 오래 떠나계셔서 자주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랑 친근하게 지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아버지는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사람이었지만 돈복은 없었다. 사람이 좋아 주위 사람들의 부탁을 무시하지 못해 손해를 보는 경우도 많았고 악착같은 면은 없으셔서 크게 돈을 벌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특히 친구들을 좋아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는 아버지 친구 분들이 많이 오셨고 진심으로 마음아파 하셨다. 그때 한 분이 내게 하셨던 말이 생각난다.


  “아버지가 둘째 딸을 얼마나 자랑스러워했는데.”


  아버지는 삼남매 중 유일하게 아버지와 똑 닮은 나를 많이 좋아하셨다. 아버지와 함께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붕어빵이라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참 좋아하셨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매일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다니느라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학교에서는 의식적으로 허리를 꼿꼿하게 세워서 앉으려고 노력했고 길을 걸어갈 때도 가방 무게 때문에 허리가 굽어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아버지는 그런 내게 이런 말을 하셨다.


  “우리 둘째딸은 모델 하면 딱 이겠다. 자세가 딱 모델이야.”


  아버지의 그 말에 그날 고되고 힘들었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 나도 모르게 입이 찢어졌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그렇게 기분 좋은 말을 자주 해주셨다. 힘든 순간에 웃음이 나게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계셨다. 

  하루는 아버지가 친구 분들과 영화 ‘레옹’을 보고 오셨다. 마틸다를 보면서 둘째딸이 생각나더란다. 친구들에게 “우리 둘째딸이랑 똑같이 생겼네.” 이 말이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자랑 질 한다고 욕할까봐 말았다는 말을 내게 해주셨다. 아버지는 영화를 보면서도 둘째 딸을 생각하셨나보다. 


  어머니의 마흔 번째 생일날 아버지는 장미꽃 마흔 송이와 하얀색 반팔 니트를 사들고 오셨다. 손편지와 함께 어머니에게 줬는데 어머니는 버럭 화를 내셨다. 옷은 어머니 스타일이 아니고 어머니는 쓸데없이 꽃을 샀다고 나무라셨다. 그때 집안 형편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지를 읽으며 좋아하셨던 표정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그렇게 재밌으면서도 낭만적인 분이셨다. 내가 크면 아버지 같은 남자랑 꼭 결혼해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으니까. 


  원하지 않는 대학에 등록금을 내러 가던 날도 그랬다. 나는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이런 농담을 던졌다.


  “여기는 바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우리 둘째딸 아침에 학교 갈 때 긴 머리 휘날리면 남학생들이 다 넘어가겠는데? 인기 폭발이겠어.”


  그 말을 듣고 나는 또 속도 없이 그 장면을 잠깐 상상했다. 그리고 이내 웃음이 났다. 그렇게 아버지는 울어야 할 순간에도 웃음으로 넘길 수 있도록 해주셨다. 결국 집안 형편도 생각안하고 속상해하던 둘째딸한테 져주셨지만 그때 아버지의 농담이 나는 잊혀 지지 않는다. 아버지는 그렇게 고통도 슬픔도 모두 웃음 속에 감추며 살았다는 것을 나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깨달았다. 


  힘들 땐 능력 있는 아버지를 가진 친구들이 부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세상을 살면서 깨달은 게 있다. 돈 많은 아버지보다 능력 많은 아버지보다 나를 많이 아끼고 사랑하는 아버지가 더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는 것을. 곁에 없지만 이렇게 아버지를 떠올리며 웃을 수 있도록 큰 사랑을 주셨던 아버지를 사랑한다. 절망의 순간에도 나를 웃게 해주셨던 아버지를 나는 매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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