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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룩 Jan 22. 2022

독일 정신과 병원의 업무

독일 정신과 입원병동이 어떻게 조직되고 운영되고 있는지 간략히 소개합니다

독일 정신과 병원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일하고 있는지 간략히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앞으로 나오게 될 직업/직급을 보기 좋게 정리해 두고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간호원
우리나라의 간호사 또는 간호조무사에 해당합니다. 독일의 간호원들은 대학을 나오지 않고, 3-4년 걸리는 직업교육을 통해 양성됩니다.

병동의사
가장 낮은 직급의 의사입니다.

상급의사
한 개의 병동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는 의사입니다.

과장의사
여러 병동을 아우르는 정신과 전체를 총괄하는 위치에 있는 의사입니다.

심리치료 수련생
대개 심리학 석사학위를 가진 심리학자이면서 심리치료 교육과정을 밟고있는 사람들로, 법에서 정하는 수련 과정의 일부인 정신과 병동 근무를 이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특수하게 고용되어 일합니다. 대개 급여가 열악한데, 근래에 법이 개정되어 한 달에 적어도 세전 130만원 가량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작용으로 자리 구하기가 더 힘들어졌습니다. 필자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공인심리치료사
대개 심리학 석사학위를 가진 심리학자로, 심리치료 교육과정을 마친 사람들입니다.

미술/에르고/운동/음악치료사
각각의 치료 영역에서 대학교육이나 직업교육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사회복지사
환자에게 요양보호사가 필요하다거나, 퇴원후 입소할 요양소, 또는 돌봄 서비스가 제공되는 특수 주거지가 필요할 경우 이를 알아봐 주는 일을 주로 맡습니다.




브레멘 동부병원 노인정신과에서 실습했을 때 , 쾰른 베아기쉬-글랃밯 기독병원 정신증-우울증 병동에서 실습했을 때, 그리고 지금 쾰른 성 아가타 병원 심인성(心因性) 질환 병동에서 일하면서 공통적으로 본 게 간호원들, 심리학자들, 의사들, 경우에 따라서 미술/음악/운동치료사 등이 모여서 의견을 나누는 모습이었는데요, 여기에 할애되는 시간의 양이 앞에 열거한 병원의 순서를 따라 뒤로 갈수록 컸습니다. 현재 일하는 병원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대화도 제일 활발하고 분위기도 퍽 수평적입니다.


브레멘 동부병원의 경우 미술/음악/운동치료사는 이런 회의에 아예 참여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들이 성의가 없는 게 아니라, 그냥 그들의 직장이 그렇게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시간제 근무로, 치료 시간에만 나타나서 한시간 진행하고 기록 작성하고 가는 식이었죠. 병동의 상급의사 — 한 개 병동을 책임지는 직급에 있는 의사가  환자 보는데 그다지 진심인 것 같지 않은 사람이었던 탓도 컸던 것 같습니다. 과장의사 — 여러 병동으로 돼 있는 정신과 전체를 책임지는 직급에 있는 의사가 참여하는 회진도 없었던 것 같고요. 간호원과 심리학자들, 병동의사, 상급의사가 모이는 미팅은 매일 아침에 있었고, 이 때 짤막하게 환자 상태 정보와 (특히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각자의 의견이 교환되었습니다. 오후에 간호원이 교대하면서 이루어지는 정보전달은 간호원들 끼리만 했습니다. 환자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50분의 개인 면담을 가졌는데,  20명의 환자를 병동의사 1, 공인심리치료사 1, 심리치료 수련생 (심리학자) 1, 이렇게 셋이서 나눠 맡아 개인면담을 진행했습니다.



베아기쉬-글랃밯 기독병원의 경우 일주일에 한 번씩 과장의사가 참여하는 회진을 진행했는데, 이 때 상급의사, 병동의사, 간호원, 심리학자들, 미술/운동/에르고치료사 모두가 참여했습니다. 방 하나에 이 사람들이 모두 모여있고, 환자가 차례로 이 방에 오는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모두 빙 둘러서 원을 그리며 앉고, 환자도 이 원의 일부로 앉는 식입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많은 사람들이 내 상태를 살피고 있구나, 라고 실감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할 거라고 봅니다. 제 실습 기간 중에 과장의사가 휴가중이었어서 한 번밖에 경험하지 못했지만, 원래는 주당 한 번씩 있는 일이었습니다. 근데 과장의사가 멘탈리지어룽(영어: Mentalization) 이론으로 독일 내에서 권위있는 인물이었어서 그런지 약간 권위적인 분위기, 다른 사람들이 많이 삼가는 분위기가 좀 있었습니다. 상급의사, 병동의사, 심리학자, 간호원이 모이는 시간이 매일 아침 있었습니다. 오후에도 간호원이 교대하면서 정보 전달 시간이 있었는데, 여기에는 심리학자나 병동의사가 참여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했습니다. 20여명의 환자를 심리치료 수련생 3, 병동의사 1, 이렇게 넷이 나눠 맡아 주 1회 개인면담을 했는데, 제가 실습을 끝내기 조금 전에 병동의사 한 명이 충원되어 다섯 명이 20명을 나눠 맡게 되었었습니다.



지금 있는 성 아가타 병원에도 앞서 언급한 두 병원과 마찬가지로 심리학자, 간호원, 병동의사, 상급의사가 참여하는 매일 아침의 미팅이 있습니다. 낮에도 간호원 교대 시간에 미팅이 있는데, 여기에는 심리학자나 병동의사가 참여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합니다. 과장의사가 항상 참여하는 회진은 없습니다. 상급의사, 병동의사, 심리학자, 간호원이 참여하는 회진이 주 1회 있는데, 과장의사는 올 때도 있고 안 올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1주일에 한 번씩 있는 대형 팀 미팅때는 과장의사도 항상 참여하고, 여기엔 병동의 심리학자, 병동의사, 상급의사, 간호원, 음악/미술/운동치료사, 사회복지사가 모두 참여합니다. 시간도 넉넉히 2시간이나 잡아서 병동의 모든 논의사항들과 환자 전부는 아니지만 반수 정도, 의논거리가 있는 환자들에 대해 의견도 교환합니다. 이 대형 팀 미팅이 앞선 두 병원에는 없었던 특별한 것인데, 이야기 나누기가 편한 분위기입니다. 15명 정도 되는 환자들의 개인 면담을 (주 2회 각 25분 또는 주 1회 50분) 병동의사 2, 아직 수련이 다 끝나진 않았지만 정식으로 고용된 심리학자 2, 심리치료 수련생 2, 이렇게 여섯명이서 맡고 있었고, 여기에 제가 추가됐습니다. 인력이 많은 편이지요. 다만 정식으로 고용되었지만 아직 수련중인 심리학자 둘은 근무시간이 주 19시간으로, 심리치료 수련생보다도 짧긴 합니다.


세 병원 모두 2주에 한 번 정도 외부에서 경험많은 심리치료자가 와서 진행하는 슈퍼비전 (고참 치료자가 심리치료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조언을 주는 시간) 시간이 있었습니다. 브레멘 동부병원에서는 공인심리치료사의 방에 심리치료 수련생, 병동의사, 간호원, 그리고 나이 많은 정신분석가인 슈퍼바이저가 모여 앉아 진행했습니다. 베아기쉬-글랃밯 기독병원에서는 슈퍼비전을 원하는 의사나 심리치료자가 '이번 주차에는 내가 슈퍼비전을 받고 싶다' 고 하면 그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었습니다. 슈퍼바이저로 오는 사람 중에는 정신분석가도 있고 의사이면서 심리치료 교육도 받은 사람도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현재 다니는 성 아가타 병원에서는 2주에 한 번 병동의사, 미술/음악/운동치료사, 간호원에 더해 상급의사와 과장의사까지 다 참여하는 슈퍼비전이 정신분석가인 슈퍼바이저와 함께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 병원에서 또 한가지 앞선 두 병원과 다른 점은 심리치료 수련생을 위한 슈퍼비전 시간이 주 1회 정식으로 편성돼 있다는 점입니다. 상급의사가 심층심리학적 심리치료, 시스템심리치료 분야에서 교육받은 사람이라서 상급의사가 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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