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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국가

윤석열 지지자끼리 모여서 나라를 만든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by 마머

어딘가에 영토를 얻어 분리독립한 그들. 윤석열을 지지하고 대한민국이 공산화될 위기라고 주장하던 모든 깨어있는 사람들이 그 나라의 국민이 됐다. 국호는 대한 자유민주주의 국민 공화국이라 했다. 줄여서 대한국국. 윤석열은 그들의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다. 윤통의 생일엔 경호실뿐만 아니라 대통령실 직원들도 두루 모여 즐겁게 윤비어천가를 부른다. “멸공!” “멸공!” 직원들끼리 마주치면 하는 인사는 기운찬 멸공소리.


나라의 기둥과 일꾼이 되어야 할 몇 안 되는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철저한 사상교육을 받고 씩씩하게 “멸공!”으로 인사한다. 학교마다 이승복 어린이의 동상이 우뚝 세워졌다. 새로운 육군사관학교에는 홍범도 동상이 없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멸공의 횃불을 합창하는 꼴을 보고 뒤늦게 아차 싶었던 사람들 몇몇이 대한국국을 탈출해 대한민국으로 귀환하고자 했지만, 충절을 중시하는 대한뀪의 국경정책은 "전 국민 출국금지"였다. 몰래 국경을 넘으려다 발각된 이들은 지하벙커로 잡혀가 행방도 생사도 묘연했다.


김건희는 국모로서 나라의 안녕을 위해 자주 굿판을 벌인다. 돼지머리를 잘라놓고 판을 벌이는데, 초대무당으로는 특별히 맥아더 장군을 모시는 무당이 모셔졌다. 가끔 무당에게 신이 제대로 내리면 맥아더 장군의 말씀이 전해지기도 하는데, 대한뀪의 언론들은 맥아더 장군의 저승으로부터의 메시지를 대서특필한다.


이런 세태에 다소간의 찜찜함을 느끼는 것은 간판상으로는 개신교 목사라는 전광훈이었는데, 지금까지 늘 하나님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목사 행세를 해온 터라 무당이 전하는 고 맥아더 장군의 메시지에 덮어놓고 장단을 맞춰주기엔 뭐했던 탓이다. 대한국국 인구의 상당수가 전광훈과 비슷한 정치성향을 띠는 개신교 교회의 신자들이었기에, 윤통도 전광훈이를 결코 무시할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그런 사정이 있어서 전 대한민국 국회의원, 현 대한뀪 대통령 비서실장 윤상현은 전광훈 목사님께 허리 굽히는 각도와 대통령 각하께 허리 굽히는 각도를 놓고 고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전광훈은 ‘내가 수틀리면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무속 통치를 참아주었고, 윤통은 개신교 지지세력을 고려해 개신교를 사실상의 국교로 밀어주었다. 대한뀪 개신교의 예배를 들여다보면 이들의 신은 아무래도 목사님과 대통령 각하인 것 같았다.


대한국국은 아무런 산업 역량이 없었다. 국민 대부분이 IT 역량을 최고조로 발휘해 봤자 할 수 있는 게 유튜브 시청과 인터넷 커뮤니티 이용이 거의 전부인 상황이었다. 왕년에 제조업 분야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노인들을 중심으로 공장이 몇 개 만들어졌지만 중국과의 제조업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윤통은 철저한 반공을 국시로 내세우며 공산화된 대한민국을 배척, 중국과 북한을 배척하고, 일본과 미국을 향해 양팔을 벌리며 도움을 청했지만, 일본도 딱히 받을 것이 없으니 시큰둥했고, 트럼프 치하의 미국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다만 일본은 ‘과거는 잊어야 한다, 일본이 조선을 발전시켰다, 독도 정도는 통 크게 양보해도 좋으며 따져보면 사실 원래 일본 땅이 맞다’는 대한뀪의 주장을 기쁘게 보도하며, ‘옆에 있는 뭐시기 나라랑은 달리 양심 있는 사람이 정권을 잡은 대한국국에서는 진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고 칭찬을 늘어놓았다. 딱히 돈이나 자원을 퍼주진 않았지만.


시원찮은 산업 상황 때문에 윤통과 그 주변 사람들은 초조해져 갔다. 대한국국 전체의 부가 너무 쪼들리니 자기들이 차지할 몫도 얼마 안 됐기 때문이었다. 민주당이 자기 행보에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다고 욕을 퍼부으며 성질을 내던 대한민국 대통령 시절이 모든 사람이 자기를 왕처럼 모시는 대한뀪 대통령 때보다 해 먹을 게 많았다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김건희는 주가조작을 해 먹으려 해도 해 먹을 주식회사가 없지 않으냐며 볼멘소리를 했다. 윤통은 네가 가서 회사를 세우든지 하라고 소릴 빽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와중에 사업을 잘하고 있는 건 전광훈이었는데, 이미 탄핵반대 집회 때부터 자신이 주도하는 집회에 모여든 노인들을 대상으로 십일조 수금, 기부금 수금, 알뜰폰 사업, 애국보수우파의 정론직필지 "자유일보" 간행 사업, "선교카드"라는 이름의 신용카드 사업, "일천만방송"이라는 이름의 방송 사업 등을 벌여 주머니가 터지도록 돈을 쓸어 담고 있었다.


윤통은 대한민국 대통령 시절에도 기왕이면 국회 자체를 날려버리고 싶어 했던 만큼 대한뀪에는 쓰잘데기 없는 국회 따위는 만들지 않았다. 지지자들도 하는 일은 없고 세금만 축내는 밥벌레 같은 국회의원이 싹 사라지니 속이 시원하다고 환호했다. 사법부도 항상 '옳은' 판결, 즉, 윤석열과 그 패거리들이 원하는 판결만 내려줄 충직한 애국보수우파 판사들로 구성되었다.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은 내리는 판사는 종북 친중 좌파 빨갱이 판사이므로 당연히 있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대한뀪의 정부는 삼권분립의 구태에서 벗어나 순수한 자유민주주의 독재 체제로 이루어졌다.


그러다 보니 국회의원 선거도 없었고, 지자체장 선거도 사실 유명무실했다. 그냥 윤석열이 "김 아무개가 열심히 하던데, 이번에 거기 어디 아무개시 시장 자리 하나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겠나?"라고 하면 그것으로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근자에는 열병식 준비를 잘해서 윤통 마음에 든 자가 육군 참모총장으로 영전했다. 대한민국 대통령 시절에 했던 것과 비슷하게 열병식 마지막에 군인들이 크게 환호하며 윤석열 주위로 달려와 모여서 그의 이름을 연호하게 하였는데, 북한 방식을 벤치마킹한 그 이벤트가 이번에도 특히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없는 예산에 열병식을 준비하려다 보니 행진하는 군인들의 칼각으로 임팩트를 최대한 주려고 한 탓에 군인들은 행진 훈련에 초주검이 되도록 시달려야 했다.


윤석열이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의사들이 당장 국가의 -윤석열의- 명령을 받들어 복귀하지 않으면 "처단"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던 바, 대한국국 수립 시 대한민국을 떠나 대한국국 국민이 된 의사는 극히 소수였다. 그래서 대한뀪의 의료복지 수준은 바닥을 기었다. 여러 분야의 숙련된 전문의들과 경험 많은 수술 보조 간호팀이 함께해야 하는 어려운 수술 같은 건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대통령 내외, 그리고 그들과 특히 가까운 사람들은 해외에 검사 및 치료받으러 가는 호사를 누렸지만, 대다수의 대한국국 국민은 본인 신체의 면역력과 회복력에 의지하며 의사들이 하나같이 좌빨이라 다들 대한민국에 남아버렸다고 울화통을 터뜨릴 뿐이었다.


대한국국에서는 매일같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같이 흔드는 군중이 애국가나 옛 군가, 70년대 가요를 틀면서 거리를 행진하고, 전광훈이 하는 설교를 듣고 호응하며 동질감을 느꼈다. 그들은 어쩌면 유토피아 건설에 성공한 최초의 인류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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