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비누
붕어 똥처럼 달고 다니는 감정이 있다. 찝찝하다. 누군가에 대한 불편한 마음, 완성하지 못한 유효기한 지난 각오, 해야 할 일이지만 진심은 담고 싶지 않은 삐뚤어진 투덜거림. 손 씻고 보송한 수건에 물기를 닦는 것처럼 쉬운 일이면 좋으련만 쉽지 않다.
강력한 비누가 필요하다.
머릿속을 박박 씻어 햇빛에 바짝 말려 찌꺼기 하나 없는 마음이 갖고 싶다.
내 비누는 우주최강 고양이 '유자'다. 만지면 몰캉하고 따뜻해서 엎드려 안으면 '그래, 세상에 내가 너만 열심히 지키면 되지, 다른 근심이 뭐가 필요해.' 란 생각이 든다. 온수 매트 틀때만 다가와 안기는 녀석은 매트를 끄고 지내는 요즘 좀처럼 다가와 마음의 비누가 되어주지 않는다. 섭섭한 녀석.
다음 비누들을 꺼낸다.
읽을 때마다 두근거리는 부분이 달라서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손놓을 수 없는 책, 들으면 갑자기 은하수 아래 데려다 놓고 아는 바람과 공기로 가득 채우는 플레이리스트, 전화하면 '어! 강냉이!' 하며 반갑게 어릴 때 별명을 부르는 친구 목소리, 깊은 한숨을 연기 속에 숨겨주는 전자담배.
비누들로 씻고 나면 살 빠진 기분이다. 무균실 얇은 막이 온마음을 감싼다. 그리 오래가지 않지만, 그 순간만큼은 어디 도망가지 않아도 되고, 다가올 일이 불안하지 않다. 한 발짝 내딛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용기도 생긴다.
비누란게 한 번 씻는다고 영원한 청결을 보장해주지 않는 것처럼 주기적으로 씻고, 하나만 써서 닳아 없어지지 않도록 돌아가며 쓰고, 새로운 비누가 있는지 '내돈내산'으로 기웃거려 본다.
오늘도 잘 씻고 밖으로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