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가득한 도서관
그는 차근차근 계단을 올랐다. 마지막 발까지 꾸욱 눌러 디뎠을 때, 다다른 곳은 도서관이었다. 늦은 시간임에도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책상마다 하나씩 자리 잡고 앉아 활자 속 세계에 빠져 있었다. 사락사락 종이 넘기는 소리만 들려온다. 어떤 책을 읽고 있을까.
그는 어딜 가나 책 읽는 사람을 발견하면, 힐끗힐끗 관찰하곤 했다. 그 사람이 무슨 책을 읽는지, 어떤 이야기에 그리 열중하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가끔가다 그가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읽는 사람을 발견하면. 말을 걸고 싶어 남몰래 신호를 보내곤 했다. 수줍은 성격 탓에 늘 신호만 보내긴 했지만.
살며시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구석진 도서 반납 기계로 갔다. 앞에 서서 가방 속 책을 꺼내려던 찰나, 기계는 반납하시겠습니까-하고 재빠르게 물어온다. 그는 2주간 함께 했던 책들을 스윽 한 번 쓸어준 뒤 네-를 누르고는 인사를 고한다.
흐음, 돌아서서 휴대폰을 꺼낸다. 그의 첫 번째 즐겨찾기는 단연 도서관 홈페이지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 생각나는 책을 검색한다. 아, 누군가 대출 중이다. 그렇담… 읽고 싶은 책 저장 페이지로 넘어가 휙휙 스크롤을 넘겨본다. 대출 중, 대출 중. 지금 당장 빌릴 수 있는 책을 찾아 휙휙.
‘더 이상 도토리는 없다’
813.6 돌44ㄷ
지난번 사서의 큐레이션 코너에 있던 책이다. 도서관이 배경인 소설을 모아둔 책이었다. 언젠가 읽어야지 하며 메모만 해두었던 그 책.
책장 사이를 두리번거리며 번호를 찾는다. 813..813.. 여기다! 813.6… 눈에 띄는 연둣빛의 책을 발견했다. 작은 희열을 느끼며 책을 꺼내 꼬옥 앉는다. 원래 그는 뒤표지의 글과 목차, 첫 번째 글을 읽고 책을 고르곤 하지만, 이번엔 그냥 빌려 보겠다고 다짐한다. 왠지 도서관이 배경인 소설이라서 맘에 든 듯 하다.
반대편으로 빙 돌아가 시집 코너를 살핀다. 침대 옆 스탠드 아래에 시집을 두면 가볍게 읽기 좋다. 잠들기 전에나, 눈을 떴을 때나. 하지만 그는 여전히 시집을 고를 줄 모른다고 했다. 이것저것 펼쳤다가 결국엔 제목이 마음에 드는 것을 골랐다. ‘당신이 오려면 여름이 필요해’ 이런 단어를 고른 작가라면 마음에 드는걸. 품속에 책 한권을 더 넣는다.
두 권을 품고 휘적휘적 걸어본다. 책 편식이 심한터라 이번에는 다양하게, 를 중얼거리며 괜히 관심 없는 코너에도 가본다. 제목을 후루룩 읽으며 이것도 재밌겠다, 저것도 재밌겠다 연신 외치지만, 결국은 두 권만 들고 종이의 숲에서 빠져나온다.
그는 도서관을 좋아한다. 도서관 고유의 냄새, 가끔 책 사이에서 발견되는 메모나 책갈피, 큰 책상과 큰 책장, 모두 좋아한다. 게다가 최근 이사 온 집이 도서관에서 10분 거리라는 것도, 그에게는 큰 매력으로 작용했다. 종이로 가득한 공간에서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끼는 그는 2주 뒤에 다시 여기, 도서관에 올 것이다. 나는 그를 기다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