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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흣쨔 Jan 30. 2023

그를 기다려

책이 가득한 도서관


그는 차근차근 계단을 올랐다. 마지막 발까지 꾸욱 눌러 디뎠을 때, 다다른 곳은 도서관이었다. 늦은 시간임에도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책상마다 하나씩 자리 잡고 앉아 활자 속 세계에 빠져 있었다. 사락사락 종이 넘기는 소리만 들려온다. 어떤 책을 읽고 있을까.


그는 어딜 가나 책 읽는 사람을 발견하면, 힐끗힐끗 관찰하곤 했다. 그 사람이 무슨 책을 읽는지, 어떤 이야기에 그리 열중하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가끔가다 그가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읽는 사람을 발견하면. 말을 걸고 싶어 남몰래 신호를 보내곤 했다. 수줍은 성격 탓에 늘 신호만 보내긴 했지만.




살며시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구석진 도서 반납 기계로 갔다. 앞에 서서 가방 속 책을 꺼내려던 찰나, 기계는 반납하시겠습니까-하고 재빠르게 물어온다. 그는 2주간 함께 했던 책들을 스윽 한 번 쓸어준 뒤 네-를 누르고는 인사를 고한다.


흐음, 돌아서서 휴대폰을 꺼낸다. 그의 첫 번째 즐겨찾기는 단연 도서관 홈페이지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 생각나는 책을 검색한다. 아, 누군가 대출 중이다. 그렇담… 읽고 싶은 책 저장 페이지로 넘어가 휙휙 스크롤을 넘겨본다. 대출 중, 대출 중. 지금 당장 빌릴 수 있는 책을 찾아 휙휙.


‘더 이상 도토리는 없다’

813.6 돌44ㄷ


지난번 사서의 큐레이션 코너에 있던 책이다. 도서관이 배경인 소설을 모아둔 책이었다. 언젠가 읽어야지 하며 메모만 해두었던 그 책.


책장 사이를 두리번거리며 번호를 찾는다. 813..813.. 여기다! 813.6… 눈에 띄는 연둣빛의 책을 발견했다. 작은 희열을 느끼며 책을 꺼내 꼬옥 앉는다. 원래 그는 뒤표지의 글과 목차, 첫 번째 글을 읽고 책을 고르곤 하지만, 이번엔 그냥 빌려 보겠다고 다짐한다. 왠지 도서관이 배경인 소설이라서 맘에 든 듯 하다.


반대편으로 빙 돌아가 시집 코너를 살핀다. 침대 옆 스탠드 아래에 시집을 두면 가볍게 읽기 좋다. 잠들기 전에나, 눈을 떴을 때나. 하지만 그는 여전히 시집을 고를 줄 모른다고 했다. 이것저것 펼쳤다가 결국엔 제목이 마음에 드는 것을 골랐다. ‘당신이 오려면 여름이 필요해’ 이런 단어를 고른 작가라면 마음에 드는걸. 품속에 책 한권을 더 넣는다.




두 권을 품고 휘적휘적 걸어본다. 책 편식이 심한터라 이번에는 다양하게, 를 중얼거리며 괜히 관심 없는 코너에도 가본다. 제목을 후루룩 읽으며 이것도 재밌겠다, 저것도 재밌겠다 연신 외치지만, 결국은 두 권만 들고 종이의 숲에서 빠져나온다.




그는 도서관을 좋아한다. 도서관 고유의 냄새, 가끔 책 사이에서 발견되는 메모나 책갈피, 큰 책상과 큰 책장, 모두 좋아한다. 게다가 최근 이사 온 집이 도서관에서 10분 거리라는 것도, 그에게는 큰 매력으로 작용했다. 종이로 가득한 공간에서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끼는 그는 2주 뒤에 다시 여기, 도서관에 올 것이다. 나는 그를 기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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