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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우카 Sep 23. 2020

목포의 맛 - 미추리 빵

수수하지만 굉장해. 못난이 도넛츠.

아이들 간식이 도넛이라니.. 도넛으로 유명한 던x도넛 아니다. 크리스 x도 아니다. 택배 상자를 연상시키는 박스 안에 하얀 종이 하나가 깔려 있고 그 안에 일렬로 설탕이 뿌려진 도넛이 들어있다. 마음의 놀람을 뒤로하고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선생님. 애들이 이런 거 먹나요? 어른들이라면 모를까?"

"잘 먹어요. 전도사님도 하나 잡사봐요. 맛나부러."

권하는 손에 못 이겨 한입 베어 문다. '엥? 뭐지'

속에 든 게 아무것도 없다. 그냥 밀가루 튀김에 하얀 설탕이다. 그런데 "맛있다." 연이어 찹쌀도넛을 집어 입에 넣는다. 역시 앙금은 찾을 수 없다. 입안에 남는 쫀득함. "맛있다. 정말 맛있다."


미추리 빵은 밀가루, 기름. 설탕이 전부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 밀가루는 담백하고 튀겨낸 기름이 역겹지 않고 고소하다. 찹쌀 도넛 역시 찹쌀이 전부다.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씹는 이에 저항하는 힘이 상당하다. 쫀득쫀득함과 찹쌀이 주는 따뜻한 식감이 포만감을 부른다. 어디서 이런 맛이 나오는 것일까? 한 개가 어른 손바닥만 하니 큼직하다.  질릴 만도 한데 손이 자꾸 간다. 선생님들 말로는 며칠이 지나고나면 은근히 생각나는 중독성 있는 맛이라고 한다. 목포 사람이라면 안 먹어본 사람이 없다. 아이 때부터 먹고 자라 여자들은 임신하면 생각이 나 찾아가 먹게 되어,  대(代 ) 물려가는 "맛"이라고 한다. 과히 목포 명물이 아닐 수 없다. 1972년 문을 연 이래도 맛이 변함이 없다. 가격 또한 착하디 착해 한 개 500원인 것은 10년 전 가격 그대로다. 미추리는 전라도 방언으로 "못났다"라는 뜻이란다. 과연 모양은 못났다. 그럼에도 맛만큼은 매력적이다. 자극적이거나 인위적이지 않은 소박한 미추리 빵을 먹고 있자니 작년에 보았던   "地味にすごい" - 수수하지만 굉장해-라는  일본 드라마가 떠올랐다.


이 드라마는  화려한 패션 잡지의 기자가 되고 싶었지만 교정부 말단 직원으로 들어가게 된 한 여자의 생각의 전환을 그리고 있다.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어 놓기 위해서는 보이는 작가, 편집장. 그리고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뒤에 숨은 많은 수고하는 손길이 있다. 이 드라마에서 소개되는 "교정부"의 역할 또한 그러하다. 작가의 작품이 아무리 소설일지라도 사실을 바탕으로 개연성 있게 전개되기 위해서 교정부에서 작가를 돕는 여러 가지 자료와 확인 작업을 거친다. 그  도움으로 작가의 작품의 기반을 탄탄히 세워주고 세상의 빛을 보게 한다. 하지만 교정부는 일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숨은 곳에서의 작업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 뒤에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누릴 수 있도록, 당연한 것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의 수고가 있다는 것을 드라마를 보는 이들은 깨달아간다. 누구나 눈에 띄고, 칭찬받고 싶고, 빛나는 자리에 있고 싶어 한다 하지만 눈에 띄지 않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일은 누군가를 지탱해주는 일이며, 그 빛나는 자리를 전력으로 지원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일을 하지만 빛나고 있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드라마화한 것이 "수수하지만 굉장해"이다. 이 드라마의 마지막 내레이션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꿈을 이루었든, 꿈을 이루어가는 도중이든, 꿈을 이루지 못했든. 어떤 마음으로 하더라도, 어떤 일을 하고 있더라도, 눈 앞에 있는 일에 전력으로 임하는 것이 자칫 평범하게 반복되는 매일을 의미 있는 둘도 없는 매일로 바꾸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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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리빵집에 관하여 정보를 모으던 중 미추리빵집을 소개한 방송을 보게 되었다. 그 방송에서 주인장은 이렇게 말한다. "처음부터 이런 맛을 낸 것은 아니다." 많은 실패와 실수가 있었다. 더 힘들고 어려운 것은 "그 맛을 지금까지 유지해나가는 것." 멋을 부리고 싶고 다른 것들을 첨가하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는 것이다. "가장 기본에 충실하는 것." 반죽하고 발효시키고 기름에 튀겨내는 단순한 반복이 오늘의 미추리 빵을 만든 것이라고 말한다. 못난 미추리면 어떠랴. 서민들의 주린 배를 채우고 주전부리로 입의 궁함을 면하게 해 주니 맛만큼은 고와도 이만큼 고울 수가 없다. 수수하지만 굉장한 빵. 그것이 바로 목포사람들의 간식을 책임져 온 미추리 빵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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