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미송 엄마 손맛 , 김칫국 밥
“당신 김치국밥 먹어본 적 있어요?”
“응”
“점심 김치국밥 한 그릇 할까요?”
“으.. 응”먹자고 하는 남편의 대답이 영 시원찮다. 그 이유를 안다. 말복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대프리카의 위엄을 양껏 드러낸 8월이다. 또한 김치국밥 따위를 돈을 내고 사 먹는다니.. 남편의 사고로서는 선득 납득하기 어려울 거다.
그럼에도 난 앞서 기억을 더듬어 남산동 골목을 향했다. 분명 이 근처였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게 이름으로서는 도저히 기억해 낼 수가 없다. 앉은자리만은 분명하건만 왜 이다지도 이름에 약한지.. 가게가 앉았던 자리만을 더듬어 문을 열었다. 맞다. 7년 전 비 오던 날. 모 권사님과 함께 왔던 가게가 맞다.
“이모, 김치국밥 될까요?”
“아이고 비도 안 오는데 무슨 김치국밥? 어제 한잔했는가 보네. 만들어줄게.”
마른날. 삼복더위가 가시지 않은 이 땡볕에 뜨거운 김치국밥 2그릇을 주문했다.
30분은 족히 기다려 김치국밥이 놓였다. 그 옛날 먹었던 김치국밥에 비하면 너무 정갈한 일품요리가 되어 내 앞에 앉았다. 차가운 에어컨 바람에 그릇에서 피어난 연기가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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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렸는지 습기 머금은 바람이 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먼 하늘에서부터 소리가 인다. 갑자기 어두워진 하늘에 강한 빛줄기가 내린다. ‘후드득’ 지붕을 때리는 굵은 빗줄기. 요란한 소리만큼 나무들의 흔들림도 커진다. 짙은 흙냄새. 그 흙냄새 뒤에는 비릿한 바다내음이 따라온다.
“멸치 대가리 따고 똥 빼라.”
엄마는 중지보다도 큰 멸치 한 그릇을 내민다. 여린 손끝을 찌를 만큼 뼈가 굵은 놈들이다. 손이 아프다고 엄살을 떤다. 엄마는 빙긋 한 번 웃으며 멸치를 빠른 속도로 다듬는다. 엄마는 다듬은 멸치를 냄비에 넣고 육수를 낸다. 내 손에 다시금 건네진 건 콩나물 한 소쿠리.
“대가리는 떼지 말고 꼬리만 자르고 골라라.”
오늘 안에 끝날 것 같지 않은 콩나물 다듬기. 지루한 장마의 시작. 더 지루한 콩나물 다듬기. 게으름이 묻은 느려 터진 손놀림 사이로 마지막 남은 김장김치의 시큼한 내음과 거드는 엄마의 손이 따라온다.
“또 김치국밥이야?”
“여름에 이만한 보신이 없다.”
“난 싫은데....”
엄마는 내가 싫은 것과는 상관없다. 짙은 멸치육수에 김치 한쪽을 썰어 폭폭 끓인다. 거기에 밥을 넣고 콩나물을 넣는다. 그리고 푼 계란을 넣는다. 그릇에 담아서 마지막으로 참기름 한 방울. 고소한 향기가 김치의 시큼함을 누르고 온 방을 채운다. 참기름 승리. 그렇게 장마가 시작되고 장마가 끝나기까지 몇 차례나 물리도록 김치국밥을 먹어야 했다.
엄마가 여름 보신으로 내어 놓는 김치국밥은 내게는 ‘꿀꿀이 죽’으로 보여 먹기가 싫었다. 손가락 아리게 다듬던 멸치도, 반복되는 지겨움에 치를 떤 콩나물 다듬기도 절대 절대 먹지 않을 거라 다짐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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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을 하면서 힘든 일 가운데 하나가 잦은 이별이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었던 사역지라도 안 아픈 이별이 없다. 그만큼 마음과 애정을 쏟은 까닭이겠지만 첫 사역지에서의 이별이 가장 힘들었다. 첫 사역이었던 만큼 열정이 컸다. 그 열정이 좋은 역할을 할 때도 있었지만 지나친 열정이 일을 그르칠 때도 있었다. 교사들은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셨고, 약점보다는 강점을 바라봐주셨다. 무엇보다 한 사람의 사역자로 설 수 있도록 설교에 관하여 자신감을 심어주셨다. 친정 같았던 첫 사역지. 사역하다 힘들면 언제든 돌아오면 받아준다고 말씀해 주셨던 부장님. 내리던 눈이 비로 바뀌어 유난히 추웠던 날. 부장님은 맛있는 것을 대접하고 싶다며 날 불러 내셨다.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말해보라고 하셨는데 권사님 모습에서 엄마의 모습을 떠 올린 것일까? 난 잊고 있었던 “김치국밥”이 떠올랐다. 권사님은 한참을 웃으시며 거듭 물으셨다. 진짜 그게 먹고 싶으냐고. 우산을 토닥 거리는 빗방울이 권사님의 웃음을 따라 땅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찾게 된 남산동 골목의 한 식당. 온몸에 김치 냄새가 배이도록 국밥을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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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이만큼 먹은 어느 날. 몸이 몹시도 아리고 아팠다. 비를 맞은 탓인지 몸도 마음도 한기가 들어 여름임에도 보일러를 틀었다. 그래도 따뜻해지지 않는 그 무엇. 그때 엄마의 김치국밥이 떠올랐던 것은 우연이었을까?
멸치를 끓이는 수고도 없이, 여름 다되도록 버틴 김장김치도 아닌 덜 여문 김치로, 난 국밥을 끓였다. 여전히 다듬기 귀찮아 콩나물도 넣지 않았다. 엄마가 끓여준 김칫국 밥보다 가볍고 엷은 맛의 국물을, 빨간 김치 국물이 밴 밥알을 호호 불며 남기지 않고 먹었다. 딸에게 조금이라도 영양을 더하기 위해 멸치 배를 따고, 콩나물을 다듬고 일부러 터트리지 않은 계란 한 개를 온전히 얹어 거기에 참기름을 둘러준 엄마. 시큼시큼한 삶을 살아가며 기운 잃지 말라고 엄마는 따뜻하고 고소한 김치국밥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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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뜨며 김치국밥에 얽힌 이야기를 한다. 남편은 맛있다며 숟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인다. 그러면서 하는 말.
“당신이 나이를 먹긴 했나 보다. 나이를 먹으면 추억으로 음식을 먹는다잖아.”
추억이다. 그리움이다. 고향이다. 김치국밥은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