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이사 준비를 하던 중 친구를 만났다. 임대아파트에 들어가게 된 사실과 가전제품을 살 거라는 이야기를 하던 중 친구가 혹시 청소기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LG 코드 제로를 생각하고 있다고 대답했고 친구는 로봇청소기를 추천한다고 했다.
사실 나는 로봇청소기에 대한 기억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 어릴 적 우리 집에 있던 로봇 청소기는 늘 턱에 걸려 허우적댔고 자리를 옮겨주어도 또 같은 턱에서 허우적댔다. 결국 아빠가 야심 차게 구입했던 로봇청소기는 더 이상의 만회할 기회를 얻지 못했고 창고로 밀려났다가 어느 순간 집에서 사라졌다.
내가 친구에게 로봇청소기에는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데 샤오미 무선청소기는 좋다고 들었다고 하자 친구는 청소기에 LG 코드 제로를 살 정도의 돈을 들일 생각이면 그 돈으로 샤오미 로봇청소기와 샤오미 무선청소기를 모두 살 수 있을 것 같아 하는 이야기라며 본인도 지금 샤오미 로봇청소기를 사용하고 있는데 굉장히 만족한다고 했다.
얼마 전 결혼해서 내가 가려는 아파트와 비슷한 구조의 아파트에서 고양이를 키우며 살고 있는 친구였기에 그 말에 조금 신뢰가 갔다. 또한 LG 코드 제로의 가격이 80만원대인 것을 감안하면 샤오미 로봇청소기가 40만원대, 샤오미 무선청소기가 10만원대이니 돈도 절약되는 셈이었다.
친구는 어플을 하나 켜서 로봇청소기가 그린 맵을 보여주었다. 어플로 맵을 직접 수정해서 들어가지 말아야 하는 영역을 설정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인터넷으로 움직이는 것이라서 사무실에서 원격으로 청소를 시키고 잘하고 있는지는 맵으로 지켜볼 수도 있고 예약을 걸어둘 수도 있어서 본인은 매일 아침 청소하는 것으로 예약을 해놓았고 고양이를 키우는데도 그 정도 청소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순간 아침에 일어날 때 청소기가 알아서 청소를 하고 있는 것을 상상하니 이게 바로 내가 꿈꾸던 여유로운 솔로-라이프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갑자기 설레기 시작했다.
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가서 나는 아빠에게 로봇청소기 이야기를 했다. 아빠는 예전 생각이 나셨는지 내가 로봇청소기라는 단어를 꺼내자마자 "놉"이라고 짧게 대답하셨다. 나는 "아니 아빠, 무조건 싫다고 하지 말고. 아빠, 예전의 그 로봇이 아니래. 나도 그 생각나서 안 믿었는데 내 친구 결혼하고 고양이고 키우는데 충분하대. 알아서 청소하고 가면 안 되는 부분 표시하면 알아서 피해 간대."라고 하며 아빠를 설득했지만 아빠는 계속 미심쩍은 표정이셨다. 아마 LG도 아니고 샤오미를 산다고 하는데 게다가 그게 로봇이라니 더더욱 신뢰가 가지 않으셨던 것 같다. 엄마가 샤오미 무선청소기가 싸고 좋다고 할 때에도 아빠는 "청소기는 무조건 LG 코드 제로야."라고 못 박으셨었으니까. 나는 엄마를 보며 "그리고 예전에 엄마가 샤오미 무선청소기 좋다고 들었다고 했잖아, 샤오미 무선청소기랑 같이 사도 LG 코드 제로보다 훨씬 싸. 로봇청소기랑 무선청소기 같이 사서 로봇이 잘 못하는 부분은 무선청소기 돌리면 돼." 라며 엄마의 효율주의를 공략했다. 엄마는 "샤오미 좋다고는 하더라. 그래 너 맘대로 해. 로봇도 사고 네가 원하는 대로 잘하면서 살아봐."라고 대답했다.
뭔가, 흔쾌하고 따뜻한 격려의 승낙이 아닌 어딘가 비꼬는 '그래 니 잘 먹고 잘살아라'에 가까운 승낙 같긴 했지만(근데 매번 느끼는 거지만 내 돈으로 사는 건데 왜 이렇게 허락받기가 어려운 걸까), 그래도 일단 허락을 받았으니 나는 샤오미 로봇청소기와 샤오미 무선청소기를 사기로 했다.
첫번째 사진은 청소중, 노란색 동그라미가 청소기 위치. 초록색 동그라미는 충전하는 곳. 나머지 두 사진은 타이머, 청소모드 설정
나는 로봇청소기에 이로봇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청소 주기를 2일에 한 번으로 해서 내가 퇴근할 즈음의 시간으로 예약을 걸어놓았다. 처음엔 아침에 눈을 뜰 때쯤 청소기가 도는 그림을 그렸지만 퇴근하고 왔을 때의 집이 갓 청소한 깨끗함인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 그랬더니 퇴근할 때가 되면 이로봇은 "예약 청소 가동. 제가 일을 시작했습니다!"라는 알림을 보내고 청소를 시작한다. 집에 들어오면서 맵을 통해 청소 루트를 보면 생각보다 청소를 꼼꼼하게 잘하고 있는 모습에 참 뿌듯하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면 청소가 거의 끝나 있다. 어딘가 굉장히 성공한 느낌이 드는 퇴근길이 되었다.
물걸레 기능까지 있어서 걸레를 달아주고 물걸레 모드를 실행하면 열심히 끌고 다니는데 사람이 힘으로 닦는 것보다야 덜하겠지만 그래도 걸레질이 끝나면 걸레가 시커멓게 되어 있는 것을 보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걸레질을 꽤 하는 것 같다.
거치대 조립 전, 후. 가운데사진은 손으로 나사를 조인 결과. 드라이버는 꼭 필요하다.
샤오미 무선청소기도 굉장히 만족스럽다. 무엇보다 디자인이 예쁘다. 그런데 거치대가 따로 없어서 벽에 못을 박아야 했는데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무선청소기용 거치대가 있었다. 보통 조립제품은 함께 배송되어 오는 육각렌치로 완성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거치대는 나사를 조여야 하는 제품이었다. 드라이버가 없어서 손으로 나사를 조이다가 중간에서 멈춰버렸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직장 동료에게 드라이버를 빌려서 완성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이사청소, 이사, 그리고 전 집주인에게 보증금 받기였다. 하나하나 다 쉬운 것들이 아니었지만 여기서 최종 빌런은 전 집주인이었다. 원룸 집주인은 계약할 때도 집이 멀어 영수증에 찍을 도장을 가져다주지 못하겠다는 등 이상한 생떼를 부려 나를 원룸에 사는 내내 나갈 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건 아닐까 불안하게 만들었었다. 결국 내 감은 적중했다.
원룸 집주인 덕에 이래서 사람들이 자기 집을 사고 싶어 하고, 이래서 엄마가 어떻게든 돈을 모아 빨리 전세를 벗어나라고 하셨던 것임을 뼈저리게 경험했고 다시는 전세로 살지 못할 것 같은 트라우마가 생겼다. 자세한 이야기는 따로 구성할 '나쁜 집주인'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