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수필
화를 낼 만한 상황이면, 나 자신을 향한 의심이 많아진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옳을지 끊임없이 의심하는 편이다. 누군가에 의해 불쾌해질 때면 내가 너무 예민한 건 아닌지부터 의심하고, 나의 불쾌함을 표현하는 게 과연 옳은 선택일지부터 고민한다. 이때 나의 감정이나 시시비비는 중요하지 않게 여겨진다. 순간적인 감정보다 장기적인 타인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
당연하게도 화도 잘 못 낸다. 화라도 내면 싸우게 될까 봐. 싸우게 되면, 관계가 망가질까 봐.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내가 참고 넘어가자는 주의다. 화병 나기 적절한 성격이지. 인내심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참고, 참고, 끊임없이 참고. 다른 감정은 몰라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의 부정적인 감정만큼은 숨기려는 편이다. 아직은 이리도 몹쓸 감정의 풍파를 참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 하나 화내는 일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오래 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기도 하다.
모순적이게도, 나는 자기 방어적 성격이 강한 편이다. 웬만한 자극에 노출되기를 꺼리는 편이다. 보기 좋지 못한 것들을 멀리하고, 구태여 남이 저지른 불찰 곁에 서고 싶지 않은 유형의 인간. 불쾌한 상황에 직면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동시에 나는 타 인에게 미움받게 될까 봐 두려웠다. 나를 향한 타인의 비리에도 쉬이 솔직해질 수 없었다. 나는 나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만이 강했을 뿐, 실제로는 타인의 악행으로부터 나를 지키지 못하기 일쑤였다. 이 같은 모순은 우울증의 영향으로 더욱 짙어졌다. 나를 위해 용기 내는 일이 어려웠다. 나를 향한 학대, 방임과 다르지 않았다.
간혹 이렇게 살다가는 내가 다치겠다 싶은 순간이 곳곳에 깔려 있다. 더 나은 관계, 더 오랜 관계를 위해서는 내가 용기 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참다 참다 폭발하기보다는 미리미리 언질이라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라면 내가 용기 내려는 태도가 옳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나는 그게 여전히 어렵지만. 누구에게라도 언젠가 된통 당해봐야 바뀌게 될까.